필자가 받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 있다. 우리나라 문화유산 중 가장 좋은 곳(것), 꼭 가봐야 할 곳을 추천해달라는 것이다. 이럴 땐 무척이나 난감해 진다.

문화유산이 국보, 보물에 따라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정되지 않은 것도 다 같이 소중하다고 설득하면서 여러 가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덤으로 한다.

반가사유상은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우둔함을 알려주고 선계와 지상에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외줄타기의 긴장감을 주고 있으며, 특히 우리 한옥이 주는 자연과 인공미의 조화가 좋다고 전해준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미운사람이나 다 같이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으니, 그곳은 다름아닌 “폐사지” 이다.

아무 때나 좋다. 이른 새벽은 태초의 모습과 선계에 계시는 부처님을 뵈올것 같고, 무더운 여름은 수행 증진하는 맹렬함을 느낄 수 있고, 비가 오면 빗소리가 목탁소리다.

무엇보다 한 겨울 늦은 오후에 폐사지에 던져져 보라. 인생의 황량함과 인간의 탐욕이 비워져가는 칼날같은 시려움이 몰려올 것이다.

왕흥사!

왕흥사는 600년(무왕 1)부터 634년(무왕 35)에 걸쳐 지은 법보백제의 대원찰이다. 백제가 멸망하면서 이 절에 남아 있던 백제 병사 700여 명이 신라의 태종무열왕에 의해 무참히 죽음을 당하면서 역사의 폐허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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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이 동맹을 깨고 한강지역 전체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드러내자 성왕은 스스로 앞에 서서 신라를 친다. 554년, 양국은 국가의 운명을 건 관산성 전투를 전개한다. 성왕은 매복해 있던 신라군에 포로로 잡힌 뒤 사망하고 백제는 3만여 명의 병사를 잃으면서 참패를 당한다.

백제 중흥 군주였던 성왕의 아들인 창.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창은 왕위를 승계하지 않고 왕좌를 비워둔다. 그는 갑자기 스님이 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성왕은 불법(佛法)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아 백제를 중흥시키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창은 그런 아버지의 소망을 스스로 스님이 돼 이루려 했던 것이다. 결국 왕위에 올라 위덕왕이 된 창은 관산성 전투 이후 혼란에 빠졌던 백제의 민심을 추스르고 다시 국력을 모아 나간다.

아마도 불교유산의 극치이며 백제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금동 대향로에는 아버지 성왕이 못다 이룬 불교 이상국가의 꿈을 실현하려는 위덕왕의 노력이 담겨 있을 것이다.

왕흥사는 1930년 홍수로 그 모습이 보였다. 1982년 8월 충청남도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2월 5일 사적 제427호로 변경되었다.

절터에서는 ‘왕흥(王興)’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으며, 토기 조각을 비롯한 백제의 유물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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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다시 발굴 조사를 한 결과 청동사리함 등 찬란한 불교유산이 새로이 발굴되었고, 577년부터 이 사찰의 공사가 시작되었다는 명문 초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왕흥사는 백제의 사찰이기 이전에 부처님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한 백제의 영혼이 담겨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이 한반도운하로 수몰위기에 처했다.

아! 왕흥사여!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