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좋은 땅 과천 !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고장을 묻는 설문에서 당당히 1위에 선정된 곳이 경기도 과천이다. 옛날처럼 산수 좋고 인심 좋은 기준이 아니라, 교통이나 쇼핑 등의 생활편리성과 청정도, 그리고 경제적 수준의 보편성 등을 감안한 삶의 쾌적성에서 다른 도시민보다 우월한 평가를 받은 결과다.

그래서일까? 안정적이고 평안한 과천지역민들이 내 고장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서 점차 주변에 소개된 문화재가 홍촌 마애승용군이다.

과천시는 알다시피 정부의 청사가 들어서 행정도시화 되면서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계획된 도시이듯 넓은 도로와 다소 경직되고 개성 없는 관공서 건물의 나열에서 건조한 느낌을 주는 고장이기도 하다. 물론 관악산이라는 명산과 연주암이라는 걸출한 명찰이 있으나 과천 전체적으로는 이렇다 할 문화유적은 드문 편이다.

과천방향으로 향하는 관악산 자락의 발끝은 온통 상자곽 같은 공공건물로 무겁게 눌려있어 산의 정기가 비집고 나올 틈도 없다. 한국기술표준원 건물과 중소기업청 건물 사이에 오솔길보다도 못한 하수도 길을 옹색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지나고 나면 드디어 ‘마애승용군’을 만날 수 있다.

크게 주목받는 성보가 아님에도 마애승용군이 지닌 의미는, 마애불이 통상 부처님이나 보살상을 새겨 넣는 반면 매우 이례적으로 스님의 얼굴을 조각했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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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촌 마애승용(僧容)군! 즉 남양 홍씨의 집성촌에 스님 얼굴 여럿을 새겨놓은 바위이다.

용운암 마애승용군이라는 호칭도 있지만, 고려시대에 있었다는 용운암은 현재 흔적도 없다. 인근에 백운사라는 작은 절이 있을 뿐이며 마애승용군에서 산을 오르노라면 폐사된 일명사지가 있지만 어느 사찰에 관련성이 있는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근대에 작은 시멘트건물이 있어서 기도공간으로 활용된 적이 있으나 그나마도 1972년에 철거하였기에 더 더욱 관련 자료를 찾기 힘들다.

다만 정부부처의 엄청난 건물들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크레인에 휘둘렸거나, 불도우저의 굉음에 노출되었으면서도 이 난관 견뎌내면서 바위가 손상되지 않고 버텨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대규모 건물 군으로부터 마애승용군까지는 불과 40 미터정도의 거리이니 말이다.

마애승용군은 주변에 이렇다 할 불적은 따로이 없고 평범하고 크지 않은 바위덩이 몇몇 중 한쪽 면에 새겨있는데 어른 키만한 바위에 다섯 분의 스님얼굴이 올망졸망 새겨있다. 이들은 한 결 같이 해맑게 웃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셋은 얼굴 전면이고 둘은 측면으로 새겨있지만 다섯 분의 스님이 누구인지, 왜 저런 배치로 새겼는지, 전신이 아닌 얼굴만을 새긴 이유는 뭔지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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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너무도 편안한 미소를 보다보면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같이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이 있고, 앙증맞은 볼은 살짝 찔러보고픈 충동까지 느끼게 된다.

하단부에 있는 조각은 뱀이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는 묘한 문양이 새겨있는데, 스님의 얼굴을 소재로 조성한 바위에 어울리지 않는 뱀의 형상이기보다는 씨를 품고 있는 꽃봉오리의 모습이라 하겠다.

전체적으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비눗방울 놀이처럼 꽃봉오리로부터 방울방울 환하게 웃는 스님의 얼굴이 하늘을 향해 날라 가는 듯하니 언뜻 스님들의 얼굴이 그려진 풍선꾸러미를 손에서 놓친 듯 재미있는 모습이다. 스님상의 생김새도 투박한 시골농군의 얼굴보다는 현시대의 만화영화 캐릭터 같은 장난꾸러기 상이다.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 거룩한 경배의 대상이자, 지고한 신심을 쏟는 부처님이라면 이곳 승용군에서 손을 모으고 절하는 불자들은 경건하기보다는 함께 웃음 짓기도 하고 고민을 털어 놓기도 하는 푸근한 정경이 연출된다.

이 조각은 누가 새겼을까? 과연 스님이 새겼을까? 신도가 새겼을까?

내겐 20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계셨다. 별세하실 당시 연세가 이미 팔십 중반이셨는데도 그 시절의 보통노인들과 달리 언문을 익히신 상태여서 늘 불경을 펼쳐놓고 신행생활이 깊으셨다. 심지어 TV 화면에서 부처님이 나오고 스님이 등장하기만 해도 공손히 손을 모으고 고개 숙이던 분이셨다.

갓 대학을 입학했을 무렵, 나는 불교의 기초교리나 들쳐보았음에도 하늘을 찌르는 건방짐을 품고 기성 불자들의 신행에 대해 ‘치마불교니 기복불교니’ 하며 폄하하기 일쑤였다.

노 할머니께서 보시는 두꺼운 불경의 안표지에 00 신님, 00 신님의 스님연락처가 메모된 것을 보았을 때 크게 비웃으며 스님을 신님으로 표시한, 혹은 신님이라 여기시는 할머니의 그릇된(?) 신심에 대해 주절주절 내 주장을 펼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의지하고 따르는 불법에 대해 실생활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할머니의 신행을 지켜보면서 나의 오만과 얇은 불심에 부끄러움을 느낄 즈음 할머니는 이생을 마감하셨다. “나 죽거든 네가 이 책들을 보거라” 하신 말씀이 있었지만 손 때 묻은 유품에, 차마 따르지 못하고 늘 옆에 두고 펼치시던 불경은 떠나시는 길에 함께 들려드렸다.

마애승용군을 친견하고 나서는 길이다. 과천 정부종합청사와 감색 양복차림의 공직자들을 바라보면서 새삼 생각에 잠긴다. 서슬이 푸른 이곳의 수장들도 상당한 학업 성취와 사회적 성공가도에 다다른 분들이겠지만, 임명 당시엔 지나온 삶의 족적을 혹독히 검증받고, 때로는 청문회 끝에 낙마의 고비를 맞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도 고시촌에 가면 전도양양한 이 땅의 젊은이들이 화려한 비상을 꿈꾸며 고시공부에 열중이며, 고시준비생이 아니더라도 그 밖에도 많은 분야에서 인생역전 내지는 비상을 꿈꾸며, 미래를 향해 노력하는 청춘들의 모습은 즐비하니 과정을 불문하고 그들의 노력은 인정할 만하다.

집을 떠나 머리를 깎고 잿빛 승복을 입는 순간!

범부는 신님(神)이 된다. 행자생활을 거치고 계를 받으면 평생 ‘신’님으로 승보의 일원이 되는것이다. 고관대작이 대단하다하나 어찌 신에 견줄 수 있겠는가?

마애승용군은 거룩한 부처님 대신 굳이 스님의 얼굴을 소재삼아 조성하였다.

너무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운 우리 스님을 바위에 새겨 넣고 또 스님을 부처님과 대등하게 예경하였던 옛 사람들이 정겹고 부럽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 주변에도 믿음직하고 본받아 마지않을 수 있는 훌륭한 스님들이 그득하고 여기저기 후광 밝히는 온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과천시에서는 홍촌 마애승용군을 고려시대 제작된 것이라 우기지만, 일각에서는 구한말 정도에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다소 박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조성 기법으로 보나 마모의 정도를 감안한 셈법이지만 천년과 백년의 차이는 참 크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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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보기하지만 희소성을 감안하더라도 문화재적 가치가 얼마나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도 이처럼 스님들을 사표(師表)로 삼는 풍토가 일어났으면 좋겠고, 좀 더 발전적이고 성숙한 승가와 재가의 관계성이 형성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부청사의 엄중한 펜스 사이를 지나서 또다시 좁은 하수틀 길을 밟고 나서는 걸음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표정만큼은 다섯 분 스님의 얼굴을 떠올리면 이내 마냥 안색이 밝아진다.

내 얼굴은 이 다섯 분들 가운데 어느 분과 닮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