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늘의 저녁 메뉴를, 내일 입고 나갈 외출복을,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갈등을 고민할 때, 미얀마의 무슬림 소녀는 테러의 공포에 떨며 9일간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의 청년은 민족 갈등 해소를 위해 피켓을 들고 거리를 전전했고, 천혜의 자연에서 뛰놀던 인도 북부 라다크의 젊은이들은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태국의 평범한 가정은 국토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채 눈물지었다.

누구랄 것은 없다. 그것이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가 아닌 이상, 내 몫이 아닌 종교 갈등과 환경 파괴는 오늘의 점심 메뉴와 입을 옷보다 사소한 문제가 된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는 그것이 그들만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모아 그 문제들을 함께 직시해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이 꿈틀거린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2시간여 떨어진 한적한 마을 빠잠에 국적과 언어, 생김새와 배경이 다른 17개국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삶의 형태와 관심사가 각기 다른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함께 고민하고 고뇌하고, 그러나 같이 웃었다. 10월 27일부터 31일, 빠잠에서는 평화를 지향하는 어린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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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말레이시아 한적한 마을 빠잠에 언어와 생김새가 다른 17개국 청년들이 모여 정의, 평화, 지속가능한 삶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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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비전, 탄생, 기꺼이… 각자 하나씩 선택한 낱말카드가 청년 캠프의 시작을 축하했다.

정의로운 사회와 평화,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Interfaith Awareness Youth Camp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종교와 사회 문제에 참여하고 있는 참여불교국제연대(International Network of Engaged Buddhists)와 국제생태마을네트워크(Global Ecovillage Network Oceania&Asia), 넥스트젠(Next Gen), 탄 히시앙(THAN HSIANG)은 2013년 가을, 정의로운 사회와 평화,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청년 역량강화 캠프를 마련했다.

캠프에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인도, 네팔, 부탄, 태국,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한국, 폴란드, 필리핀, 호주, 일본,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청년들이 초청됐다. 불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등 그 종교도 다양한 청년들은 4박 5일간 한 곳에서 자고 먹고 활동하며 각 나라가 처한 문제적 상황과 지구라는 거대한 공동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째 날, 청년들은 서로를 소개하고 공동체 의식을 형성했다. 둘째 날은 자연과의 교감을 체험했고, 셋째 날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에 대해 이야기 했다. 넷째 날은 앞으로의 비전과 청년들이 현재 행동하고 있는 활동상을 소개했으며 마지막 날은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며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프로그램은 재미와 의미를 함께 잡을 수 있는 놀이 활동과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토론 활동으로 구성됐다. 중학교 수련회에서 체험했을 법한 미션은 다소 유치할 수 있었으나, 청년들의 원초적인 승부욕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참가자 모두가 영어에 능통한 것은 아니었지만 개인의 생각을 표현하고 공감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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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최연소 참가자인 인도네시아 소녀 비카와 인도에서 온 꾸미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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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D For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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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원초적인 승부욕을 자극하는 놀이 활동. 미얀마에서 온 스님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열악하지만 긍정적으로…젊음의 힘!

강행군이었다. 일정은 촘촘히 짜였다. 청년들은 매일 아침 7시에 기상해 1시간 동안 요가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식사를 마친 오전 9시부터는 오전 프로그램 2개를 소화하고, 점심식사를 마친 오후 1시 30분부터 오후 프로그램 2개를 더, 저녁식사를 마친 오후 7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는 저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하루 일정이 끝나는 오후 9시쯤 되면 청년들의 눈꺼풀은 천근이나 되는 듯 무거워졌다. 베개에 머리를 대기 무섭게 잠들곤 했다.

캠프의 주 무대인 탄 히시앙 칼라야나 미트라 센터 역시 열악한 축에 속했다. 도심과 떨어진 빠잠 지역은 고요했으나 타국의 청년들에게 말레이시아의 현재를 보여주기에는 부족했고, 센터는 아기자기했으나 낡은 기숙형 잠자리나 부족한 샤워시설 등에서 생활의 불편함을 야기했다.

센터에 도착한 청년들은 낡은 매트리스와 쾌쾌한 냄새를 풍기는 침구를 배정받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젊은이들 특유의 긍정이 그렇듯 이내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았고 하수구는 자주 막혔으며 꼭두새벽부터 샤워 차례를 기다려야 했지만 청년들은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었고 서로의 이름을 상냥하게 불렀다. 편치 않은 환경이 오히려 참가자들로부터 배려와 인내, 우정을 유도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