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야심경>을 큰소리로 앵무새처럼 외우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 깊은 뜻은 잘 모른다. 하늘의 뜻을 절로 안다는 나이를 감안해 볼 때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혼자 있을 때는 총알처럼 빠르게 <반야심경>을 외지만 그 뜻을 얘기하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반야심경>의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뒤엉켜 버린다.

<반야심경>을 잘 알고 싶어 대학시절부터 법문도 적잖게 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이해해온 지식의 울타리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젊은 날에 동국대학교 대강당에서 머리카락이 허연 이기영 박사의 강의를 들은 것이 처음이었다.

바라밀다는 범어 파라미타(paramita)의 음역이다. 그 의미는 피안에 도달한(parami) 상태(ta)이니 ’지혜의 완성’이다. 한역 소본 <반야심경>은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오온이 모두 공함을 밝혀 보아 일체 고액을 넘는다.’ 고 번역을 시작하지만 산스크리트어 소본 <반야심경>은 ‘구도자이신 거룩한 관음은 심원한 지혜의 완성을 실천하고 있을 때에 존재에는 다섯 가지 구성 요소가 있음을 간파했다. 그리고 보살은 이러한 구성 요소가 그 본성에서 말하면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깨달았다.’고 번역한다.

그때 이기영 박사는 한문으로 된 <반야심경>을 수지 독송하기만 해도 공덕이 있지만, 불자들이 그 의미를 모르고 오랫동안 독송해온 바, 참으로 반성할 때라고 일갈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 의미를 잘 모르고 독송하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다. <반야심경>을 줄줄 외운다고 해서 그 의미를 깨달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천이 없는 이해는 지식일 뿐이지 지혜는 아니다.

크게보기

카메라는 반야심경이었다. 고정관념 없이 조작 없이 여여하게 대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내 눈앞의 것들이 혹은 내 안의 것들이 실체가 없는 공한 존재라고 여기며 살고 있는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 어리석게도 공한 존재라고 보지 않으니 순간순간 집착과 욕심이 생기고, 시비 분별에 사로잡히게 된다. 어떤 때는 섭섭해서 분노하게 된다.

나는 부끄럽게도 집착과 욕심의 울타리를 벗어나 걸림 없이 살아본 적이 거의 없다. 살면서 소유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고,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더 탐내는 것이 제법 있었다. 시비와 분별의 칼날을 놓아버리지도 못했다. 그 칼날에 상처받은 사람도 더러 있다. 미안하고 죄송해서 참회한 적도 있다. 최근에야 나는 삼독(三毒)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살맛이 난다. 수행의 결과라기보다는 산중에 귀의하면서 자연을 보고 닮아가는 것이 좀 있다.

어느 지인에게 먹물빛깔의 새 좌복을 선물 받았다. 내가 돌아갈 곳은 바로 그곳이란 생각이 든다. 가장 작은 공간에 앉아 드넓은 우주와 소통할 수 있으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내 인생을 회향해야 할 곳이 바로 그 좌복이고, 고요한 그 좌복 한 장이야말로 달마대사가 9년 면벽한 동굴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 나는 지금껏 보지 못한 <반야심경>을 발견을 했다. 내 카메라가 <반야심경>이 된 것이다. ‘몰록’이란 국어사전에 없는 단어다. 깨달은 자만이 알 수 있는 찰나의 시간과 실존의 공간이 결합된 선가의 단어다. 나의 발견도 무의식 저편에서 몰록 다가왔다.

디지털 카메라가 나온 뒤부터 흥미를 잃었지만 예전에 나는 늘 카메라를 즐겨 들고 다녔었다. 수동카메라 ‘니콘 에프엠2’부터 시작해서 몇 년 전 벽장 속으로 들어가 버린 ‘케논 이오에스’ 기종까지 카메라는 나의 필수품이었다. 그러나 온 국민이 너도나도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른바 ‘디카’ 시대를 맞이하여 나는 카메라와 결별해버렸다.

내가 카메라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카메라에게는 고정관념이나 선입관이 없다는 것이다. 한 생각을 더럽히는 집착과 욕심도 없다. 번뇌의 불을 일으키는 시비와 분별도 하지 않는다. 여여하게 드러난 존재를 있는 그대로 옮겨줄 뿐이다. 어떤 피사체이건 간에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표준렌즈를 투과하는 피사체는 무엇이나 황금비율 그대로 자연스럽다. 피사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인간의 조작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산을 산으로 본다. 물도 물로 본다. 그렇다고 카메라가 법집(法執)에 사로잡혀 ‘오온이 공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진공묘유(眞空妙有)를 드러낼 뿐이기에 나는 ‘카메라는 내 <반야심경>이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조작이 없는 모든 피사체가 왜 아름다운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