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산중으로 내려온 뒤부터 매년 인도를 갔지만 또 떠나고 싶다. 실제로 내년 1월 8일에 남인도와 아소까대왕 유적지를 순례하기로 지인들과 약속해 놓은 상태다. 맨 처음 인도로 가 부처님 성지를 순례할 때는 감동에 휩싸여 부처님 유적을 살피는 데만 급급했지만, 나중에는 부처님의 십대 제자들의 흔적까지 만날 수 있어 신심이 몹시 솟구쳤다. 특히 초기교단의 중심적인 인물이었던 사리불과 목련존자의 고향을 지나칠 때는 코끝이 찡했다.

라지기르는 사리불과 목련존자가 부처님을 만난 땅

죽림정사가 자리한 라지기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날란다불교대학 터에는 지금도 사리불의 스투파(탑)가 남아 있었다. 지금의 라지기르는 빔비사라왕이 통치하던 마가다국일 때는 라가가하 즉 왕사성(王舍城)으로 불렸다. 참고로 부처님보다 다섯 살 아래인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에게 귀의하여 설법을 듣고자 친히 영취산을 오르내렸던 인물이다. 아직도 영취산 초입에는 빔비사라왕이 마차에서 내린 뒤 걸어 올라갔던 지점에 스투파 흔적이 있다. 부처님을 존경하여 마차를 타지 않고 맨발로 걸었던 것이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뒤에 제자들을 데리고 왕사성으로 간 이유는 빔비사라왕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사문 시절에 영취산 산자락 동굴에서 빔비사라왕을 만났을 때, 왕이 왕사성에 머물러 주기를 간청했지만 부처님께서는 거절하면서 성도한 뒤 반드시 돌아와 왕을 위해 설법해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왕사성은 사리불이 태어난 고향이자 부처님을 만난 곳이기도 했다. 사리불의 탑이 왕사성 날란다마을에 세워진 것은 사리불이 그곳에서 입적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야심경>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사리자(舍利子)가 바로 사리불이다. 인도 말로는 사리뿟따이다. 사리불은 부처님 십대 제자 중에서 지혜제일(智慧第一)이었다.

내가 사리불과 목련존자에게 감동한 까닭은 두 사람의 절절한 우정이 부러워서였다. 무엇이 진정한 도반(道伴)인지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이웃마을에서 살던 그들은 출가도 함께 하여 부처님의 수승한 제자가 됐고, 입적도 부처님의 허락을 받은 뒤 같이 했다. 생사를 함께 할 정도는 돼야 진정한 도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처님은 현명한 도반이 아니라면 차라리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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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란다 대학 터에 있는 사리불의 스투파에 참배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는 티베트 스님들 모습.

사리불은 왕사성에서 멀지 않은 날란다마을에서 부유한 바라문의 큰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이름은 우빠띠샤였으나 어머니 이름인 사리를 따서 사리불(舍利弗)로 불렸다. 사리불은 여덟 형제 중에서 가장 총명했다. 인도 고대 성전인 네 가지 베다를 모두 익혔고, 예술적 재능도 빼어났다.

그런데 사리불이 살던 이웃마을인 꼬리까마을에 꼬리따 소년이 있었는데, 그도 역시 여러 학문에 통달하여 사리불만큼이나 어른들의 칭찬을 받았다. 훗날 꼬리따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신통제일(神通第一) 목련이라고 불렸다.

어린 사리불과 목련은 친구로 지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왕사성 근교의 산에서 지내는 바라문교의 산정제(山頂祭)를 구경했다. 사람들은 밤새 노래하고 광란의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에 따라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어떤 사람은 춤과 노래에 취해서 정신을 놓아버리기도 했다. 어린 사리불과 목련도 처음에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렸으나 나중에는 시들해져 고개를 저었다.

광란에 가까운 산정제는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제사가 절정에 달하자 모든 사람들이 미친 듯 날뛰며 춤을 추었다. 사리불은 혼자 중얼거렸다.

‘지금 미친 듯 날뛰며 춤추고 있는 저 사람들이 백년 후에도 과연 살아남아 저럴 수 있을까.’

사람들이 당장 죽을지도 모르고 등불 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보였다. 백 년 후에는 아무도 살아남아 있지 않을 텐데, 사람들은 백년을 살 것처럼 미친 듯 광란의 춤을 추고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어린 목련도 친구인 사리불처럼 같은 생각을 했다. 정신없이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상함을 느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아무리 즐겁더라도 지금 이 순간뿐이 아닌가. 저것은 무상할 뿐 영원한 행복이 아니다. 변함없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출가하여 수행하는 것밖에는 없지 않을까.’

두 사람은 출가하기로 맹세하고 헤어졌다. 사리불은 집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그러나 부모는 단번에 거절했다.

“너는 우리 바라문 가문을 이어갈 장남이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야 할 책임도 있다. 그러니 너는 출가를 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사리불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방문을 잠그고 단식을 하면서 호소했다. 칠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간청하자 부모는 출가를 허락하고 말았다. 이웃 마을에 살던 목련도 사리불처럼 부모를 설득하여 출가했다.

사리불과 목련, 부처님 제자가 되어 우정을 완성하다

두 사람은 왕사성에서 가장 유명한 스승인 산자야 문하로 들어가 수행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칠일 만에 산자야가 가르치는 경지에 도달했다. 산자야의 오백 명 제자들 중에서 절반 정도나 두 사람을 흠모하는 무리가 생길 정도로 산자야에게 더 배울 것이 없어져버렸다. 이윽고 두 사람은 ‘완전한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더 뛰어난 스승을 찾아 나섰다.

결국 사리불은 부처님의 첫 제자들인 다섯 비구 가운데 한 사람인 앗사지(馬勝)를 만났다. 앗사지는 전법하라는 부처님의 지시를 받고 왕사성으로 먼저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사리불은 탁발하는 앗사지의 모습이 매우 위엄이 있어 보였으므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수행자여, 당신의 스승은 어떤 분이십니까?”

“부처님이시지요.”

“부처님은 무엇을 가르치십니까?”

“부처님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 나의 눈을 뜨게 해주었던 가르침은 이와 같은 말씀이었소.”

앗사지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웠다.

여래는 설하셨네.

모든 존재는 원인에서 생긴다고.

위대한 사문은 설하셨네.

모든 존재가 소멸하는 법을.

사리불은 앗사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듣고 나서 번갯불이 번쩍하는 것 같은 찰나에 연기(緣起)의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 사리불은 곧 부처님을 친견하고 싶어 물었다.

“수행자여, 부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죽림정사에 계신다오.”

사리불은 목련을 만나 앗사지에게 들었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목련도 눈이 열렸다. 진리를 볼 수 있는 법안(法眼)이 생겼던 것이다. 두 사람은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로 했다. 두 사람은 산자야에게 가 그를 설득했으나 실패했다. 다만 산자야 제자 중에서 그들을 따르던 250명만 데리고 죽림정사로 가 부처님에게 귀의했다. 그때 이미 죽림정사에는 1천 명의 수행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귀의한 가섭 삼형제의 제자들이었다. 순식간에 부처님의 제자들은 1250명이 돼버렸고 큰 교단이 형성되었다.

사리불과 목련에 대한 부처님의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데와닷따를 따르는 여러 무리들이 박해를 가해왔을 때 잠시 흔들리는 교단을 지켜낸 이도 그들이었다. 그밖에도 왕사성에는 집장외도(執杖外道)가 있었는데, 그들 무리는 부처님의 교단을 음해하고 어떤 경우에는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였다.

어느 날 목련도 그들에게 붙잡히어 몽둥이로 맞았다.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떨어져나갔다. 사리불이 죽어가는 목련에게 달려가 말했다.

“벗이여, 그대는 신통을 부릴 줄 알면서도 왜 그 자리를 피하지 않았는가?”

“걱정하지 말게. 나는 전생에 부모를 괴롭힌 적이 있다네. 지금 그 과보를 받고 있을 뿐이라네.”

전생의 과보를 받는다는 대답에 사리불은 할 말을 잃었다. 사리불은 목련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목련이 있으므로 자신이 있었고, 목련이 없다면 자신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리불과 목련은 생사를 함께 하는 특별한 인연이었다. 사리불이 목련을 위로했다.

“우리는 함께 출가하여 세존의 제자가 되었군 그래. 모두가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제 함께 죽어도 좋겠군. 벗이여, 세존께 허락을 받아오겠네.”

사리불은 죽림정사로 돌아가 부처님의 허락을 받아냈다. 두 제자를 보낸다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지혜의 눈으로 보니 그들은 이미 세상의 인연이 끝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입적은 사리불이 먼저 맞이했다.

사리불은 고향 날란다마을로 돌아가 친지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목련 또한 사리불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고향 꼬리까마을로 돌아가 고향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한 뒤 눈을 감았다.

그들은 출가는 물론 입적까지도 부처님의 허락을 받았던 제자들이었다. 불교 교단이 형성된 이후 최초의 일이었다. 아난이 그들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런 점이었다. 그렇다고 아난에게 제자로서 자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제자보다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들었고,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난은 부처님 십대제자 중에서 ‘다문제일(多聞第一)’로 불렸던 것이다.

자신의 죽음까지도 스승에게 허락을 받았던 제자들, 너무도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까지도 함께 했던 사리불과 목련의 우정. 부처님께서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서 유독 사리불에게 <반야심경>을 설한 까닭도 그의 지고지순한 마음을 보고, 그것에 대한 보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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