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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는 집안에 있다”
정찬주 ibuljae@naver.com 2012-11-19 (월) 13:38
내 서재에는 관세음보살님이 한 분 계신다. 오랫동안 모셔온 우윳빛 관세음보살상이 그것이다. 이십여 년 전쯤 불심이 돈독한 후배가 중국을 간다기에 상호가 원만한 관세음보살상을 구해 달라고 하여 모시게 된 불상이다. 후배는 약속을 지켰다. 코끼리뼈로 조각한 불상으로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정교하여 첫눈에 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서재에 모시기 전에 물을 떠다놓고 관욕을 시켜드렸다. 중국의 골통품 가게에 진열된 불상이라 먼지가 끼고 중국인 특유의 향냄새가 배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관욕을 하고 나자 맑은 우윳빛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고 희미하게 미소가 살아났다.
정병을 든 보살은 우리가 어떤 혼란 속에서 지혜를 구할 때는 ‘관자재보살’이 되고, 힘들고 외로운 이가 대자대비를 구할 때는 ‘관세음보살’이 된다. 그리고 두 가지를 다 구할 때는 ‘관세음자재보살’로 변한다. 물론 서지학적으로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아발로키테슈바라 보디사트바(Avalokitesvara bodhisattva)를 한자나 우리말로 옮기면서 역자에 따라 세 가지로 달라진 줄 알지만 말이다.
우리들의 어머니가 바로 부처이다
나는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남도산중으로 내려와 한때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중국에서 온 관세음보살상은 나와 알게 모르게 멀어지고, 어느 날 홀연히 어머니가 바로 생불(生佛)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만히 회상해 보면 성철 큰스님의 속가 딸이자 해인사 금강굴 암주인 불필스님이 내게 들려준 얘기도 중국의 관세음보살상과 소원해지게 된 계기가 됐던 듯싶다.
성철 큰스님이 살아 계실 때였다. 불필스님이 중국순례 도중 상하이에 들러 코끼리뼈로 조각한 관세음보살상을 선물로 사가지고 와 큰스님께 드렸는데, 그때 큰스님께서 불필스님으로부터 코끼리뼈로 만든 귀한 불상이라는 설명을 들은 뒤 바로 ‘코끼리를 죽여 만든 불상에 어찌 자비가 있겠는가?’라고 말씀하면서 받지 않으셨다는 얘기였다.
지금도 성철 큰스님의 서릿발 같은 마음이 전해와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 같고, 속가의 인연이지만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스님에게도 어머니는 생불이었을 터이다. 성철 큰스님께서 금강산을 찾아온 어머니를 일주일 동안 업고 다니면서 구경시켜 드렸다는 얘기는 불가에 전설처럼 전해져오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생불이라는 생각이 들자, 내가 머물고 있는 산방이 법당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책을 읽다가 당나라 때 살았던 양보거사(楊補居士)의 일화를 보고는 무릎을 치면서 성인동화 한 편을 쓰기까지 했다. <어머니>란 제목의 그 성인동화 일부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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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마야부인에게 설법한 후 도리천에서 내려오시는 석가모니부처님.
어느 날 문득 청년 양보는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부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것일까?’
소년은 자신도 부처가 되고 싶었다. 마침 천리 너머 사천성 깊은 산에 부처의 경지에 오른 무제보살(無除菩薩)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양보는 보자기를 펴서 짐을 꾸렸다. 무제보살을 만나면 자신도 부처가 될 것이고, 일찍이 스님이 되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꿈도 자연히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다. 양보의 어머니는 양보가 부처가 되려고 집을 나선다는 말을 듣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제야 네가 어미의 소망을 이루어 주려고 하는구나. 아들아, 고맙다.”
“부처가 되어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어머니는 허리춤에서 삯바느질로 모은 동전 꾸러미를 건네주었다. 그 돈이면 무제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천리 너머의 사천성까지 갈 수 있는 비용이었다. 양보는 보자기를 둘러메고 길을 떠났다.
양보는 쉬지 않고 무제보살이 사는 사천성을 향해서 걸었다. 목이 마르면 개울물에 목을 적셨고 해가 지면 주막에 들어 잠을 청했다. 가도 가도 사천성은 멀었다. 양보는 발바닥이 아파서 처음으로 찻집에 들렀다. 찻집에는 길손들이 몇 명 더 있었다.
주인은 그곳에서만 평생 찻집을 해온 사람이었다. 주인이 양보에게 넌지시 물었다.
“젊은이. 어디로 가는가?”
“사천성에 계시는 무제보살님을 뵈러 갑니다.”
“그 먼 길을 간다는 것인가?”
“보살의 제자가 되어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그제야 찻집 주인은 양보가 아직 철부지라는 것을 알았다.
“부처가 되어 무엇 하려고.”
양보는 대답을 못했다. 찻집 주인이 훈계하듯 말했다.
“부처가 되려면 부처를 만나야지, 왜 보살을 만나려고 하는가?”
“무제보살님은 부처의 경지에 오른 분이 아닌가요.”
찻집 주인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왜 천리 먼 길을 가려는가 말이네. 부처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데.”
양보는 벼락을 맞은 듯 놀랐다.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리며 일어섰다. 찻잔이 땅바닥에 나동그라지면서 깨졌다.
“부처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십시오.”
“지금 어서 자네 집으로 가게. 가서 보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달려 나와 자네를 맞이하는 사람이 있을 걸세. 그분이 바로 자네가 찾던 부처이네.”
양보는 부지런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집에는 며칠 후 한밤중에야 도착했다. 양보는 문밖에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제가 왔습니다.”
과연 찻집 주인 말대로 그의 집에서는 신발을 거꾸로 신은 사람이 달려 나오고 있었다. 양보의 어머니였다.
이후 양보는 어머니를 부처로 알고 집을 절 삼아 수행했다. 훗날 양보는 사람들에게 ‘부처는 집안에 있다(佛在家中)’이란 말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의 아내와 자식까지도 그가 진정으로 섬겨야 할 부처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보, 고생이 많았소. 당신부터 삼배를 받으시오.”
그러자 아내와 자식들이 자신들은 부처가 아니라며 혼비백산했다. 시인은 아내와 자식들이 잠든 한밤중에 일어나 목욕한 다음 아내에게 삼배를 먼저 하고, 자식 방으로 가 자식들에게 삼배를 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진정한 복전은 어디에 있는가?
어머니를 부처라고 여기니 용돈을 드릴 때도 기분이 더 좋다. 어머니가 복전이 되기 때문이다. 복전이란 행운을 일구는 밭이 아닌가. 복과 인연을 짓는 발복(發福)하는 공간이 복전인 것이다. 복을 달라고 비는 기복(祈福)의 기도가 아니므로 무주상(無住相)의 용돈이기도 하다.
사실 절대적인 행복이나 복은 밖에서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다. 복은 내 안에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내 안에 무진장 쌓여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래서 옛 선사들은 내 안의 ‘마음부처’를 보물창고라고 했을 터이다.
나는 절에 가서도 복전에 시주하면서 빌지 않는다. 자신이 보물창고인데 거기서 찾지 않고 어디에 한눈을 판단 말인가. 외람된 느낌도 들지만 부처님에게 용돈을 드렸다는 생각뿐이고 자신과 약속하고 돌아온다. 마음의 심지를 돋우고 법당 문을 나선다. 자신과의 약속을 부처님이 증명하신 셈이니 마음은 한결 엄정해진다. 처음에는 젊은 시절부터 해온 습관을 고치는 데 애를 먹었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부처님 용돈’ 하고 내민다. 사람들에게 내 방식을 권유하지만 웃고 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강요하지는 않는다.
복전은 어머니뿐만 아니다. 아내도 복전이고 자식도 복전이다. 무엇을 기대하지 않고 복(행운)이 꽃처럼 뭉게뭉게 피어나라고 줄 뿐이다. 아내에게 살림을 잘하라고 생활비를 주는 것과 부처님에게 용돈 드리는 마음으로 주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자식에게 공부 잘하라고 용돈 주는 것과 복전으로 알고 주는 것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에게까지 동체대비의 심정으로 다가선다면 더 큰 복전을 발견할 것이다. 엊그제 서울에 올라가 범어사 주지이자 안국선원 선원장이신 수불스님을 만났다. 수불스님이 간화선 수행법을 알리고자 미국에 갔다가 오셨다는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원래는 부산에서 뵈려고 했는데 스님께서 서울에서 만나는 게 편하다고 해서 급히 서울로 갔다.
안사람은 수불스님의 부탁을 받고 연꽃연적 15점을 만들어 보냈으므로 작품을 받은 미국인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몹시 궁금해 했다. 소장자 중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숙 유엔대사도 있었지만 대부분 뉴햄프셔대 총장, 스미스대 총장, 유씨엘에이대 총장, 세계적인 불교학자인 피셔 박사와 로버트 버스월 교수 등등 미국인이었다고 한다.
연꽃연적은 장작가마에서 무박 2일 동안 1300도의 환원불로 제작한 작품이었는데 안사람은 가마를 열고나서는 탈진하여 3일 동안 드러누워 버렸다. 연꽃연적에 자신의 혼을 다 빼앗긴 것 같았다고 한다. 물론 수불스님의 제자이기도 한 안사람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직 스님의 미국방문이 원만하게 회향되기만을 기도하며 만들었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 놀라운 일이 생겼다. 스님을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였다. 스님이 안사람에게 결코 연꽃연적 값이 아니라면서 상당한 액수의 후원비를 내놓으신 것이다. 마침 영국으로 유학 가 있는 둘째딸에게 세 달 동안의 생활비를 보내줘야 할 시점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바로 그 부분을 해결해 주신 셈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스님도 복전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부처는 집안에 있다’는 얘기가 ‘진정한 복전은 어디에 있는가?’로 흘렀지만 그렇게 빗나간 얘기는 아니라고 본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인과(因果)의 씨줄과 날줄로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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