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다. 나는 한 장소에서 기간을 정해놓고 기도한 적이 있다. 사람들 발걸음이 뜸한 시각에 신발에 이슬을 묻히며 그 장소로 올라가 아내와 함께 두 손을 모았다. 한여름 날 옥잠화 꽃이 필 때 시작해서 추석 무렵 금목서 꽃이 필 때까지 기도했다. 그런 이유에선지 옥잠화나 금목서 꽃향기를 맡을 때마다 그 기도가 떠오른다. 가을이 사뭇 깊어진 지금까지도 금목서 꽃향기가 바람결에 창턱을 넘어오고 있다. 올해 맡는 마지막 향기일 것 같다. 멀리 가는 향기라 하여 만리향(萬里香)이라고도 불리는 금목서 꽃나무의 절절한 향기다. 꽃은 결코 자신을 숨기는 일이 없고 향기는 조금도 남김없이 다 주고 간다. 자신의 전존재를 다 회향하는 온전한 삶이다. 무정물(無情物)이지만 부처님이나 노자와 장자 등 깨달은 이의 삶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금목서 꽃향기로 마음이 충만했던 그 해에 써둔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기도하는 이여, 오직 정성만 쏟을 뿐 요행을 바라지 말라

나는 이른 아침마다 내 산방 사립문을 열고 쌍봉사로 내려가 철감 도윤선사 사리탑을 한 바퀴 돌고 온다. 철감 도윤선사는 당나라로 건너가 남전선사 회상에서 조주선사의 후배가 되어 함께 정진한 뒤, 귀국하여 신라 선문 가운데 사자산문(獅子山門)의 머릿돌을 놓은 분이다.

합장하고 사리탑을 참배하는데 그냥 내려오지는 않는다. 기도하면서 탑돌이를 한다. 내 기도는 ‘무엇을 해주십시오.’가 아니다. ‘무엇을 하겠습니다.’이다. 기원이 아닌 발원인 셈이다. 기원은 불보살님에게 의지하여 구원을 바라는 것이고, 발원은 불보살님께 자신이 세운 서원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는 약속이 아닐까 싶다.

불교의례를 벗어난 기도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탑을 돌면서 ‘무엇을 하겠습니다.’ 하고 약속보다 강한 맹세를 한다. 용기를 내어 공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생에 묵은 빚을 갚겠습니다.’
‘좋은 글을 써 세상을 이롭게 하겠습니다.’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겠습니다.’

전생에 묵은 빚을 갚겠다고 참회하는 까닭은 지금 내 행동을 보면 지난 생에서도 허물을 무겁게 짓고 남에게 신세를 많이 졌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법화경>에서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고 있다.

전생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받는 이것이다.
내생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하는 이것이다.
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

좋은 글을 써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는 당연한 이유(當爲)가 되는 것이니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기도이고, 아내를 사랑하겠다고 기도하는 것은 부끄럽지만 미안하고 고마운 내 마음의 고백이다.

한동안은 쌀을 몇 되씩 배낭에 넣고 가 기도한 뒤, 그 쌀이 한 가마니가 되자 읍내에서 봉사 활동하는 분을 통해 외로운 할머니에게 돌아가도록 했다. 전생 빚을 갚겠다고 말로만 기도하는 것이 미안해서였다.

기도를 해서 하루의 시작이 행복하다면 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을까? 이러한 맑은 기쁨을 우리 불가에서는 정복(淨福)이라고 부르는데, 기도란 나름대로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해야 이루기 쉽고, 결코 요행수를 바라서는 안 될 것 같다.

일타스님도 기도하는 사람은 정성만 쏟을 일이지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신 적이 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수십 년 절에 다닌 신도들조차 요행수를 바라며 기도하는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기도에는 요행수가 통하지 않는다. 태양이 어느 곳에나 평등하게 빛을 비추듯이 불보살의 광명정대한 자비는 언제나 중생들의 정성과 함께 할 뿐, 요행을 바라는 마음과는 결코 함께 하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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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깨달은 곳, 마하보디 사원에서 만난 수행자. 사진=아일선

기도는 부처님이 깨달은 인과법 속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부처님도 <잡아함경>에서 날란다 마을의 한 촌장에게 요행은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짓는 업에 따라 과보를 받는다고 말씀했다. 날란다의 빠와리까의 망고나무 숲에 계실 때였다. 촌장이 물었다.

“부처님이시여, 서쪽 마을에 사는 바라문들은 물풀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몸을 강물에 담가 청정하게 하고 불을 섬깁니다. 이 바라문들은 죽은 사람을 들어 올려 이름을 부르며 천상으로 인도한다고 합니다.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이이시여, 부처님도 세상 사람이 죽었을 때 하늘에 태어나게 할 수 있습니까?”

“촌장이여, 내가 질문할 테니 대답해 주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살생하고, 훔치고,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악담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욕을 부리고, 악의를 지니고, 틀린 견해로 가득 차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다가와 기도하고, 주문을 외우고, 합장하며 돌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에 태어나게 해주소서.’라고 한다면, 촌장이여 이 사람이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에 태어나겠습니까?”

“부처님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촌장이여, 어떤 사람이 커다란 돌을 깊은 연못에 던졌다고 합시다. 그런데 사람들이 연못가에 다가와 기도하고, 주문을 외우고, 합장하며 돌면서 말하기를 ‘착한 돌아 떠올라라. 착한 돌아 연못가로 나와라.’라고 한다면, 커다란 돌이 연못 위로 솟아올라 연못가로 나오겠습니까?”

“부처님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촌장이여, 어떤 사람이 살생하고, 훔치고,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악담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욕을 부리고, 악의를 지니고, 틀린 견해로 가득 차 있다면, 그는 죽은 뒤 나쁜 곳인 지옥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촌장이여, 어떤 사람이 생명을 죽이지 않고, 훔치지 않고, 음행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이간질을 하지 않고, 악담을 하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탐욕을 부리지 않고, 악의를 지니지 않고, 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다가와 기도하고, 주문을 외우고, 합장하며 돌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죽은 뒤 고통스럽고 나쁜 곳인 지옥에 태어나게 해주십시오.’라고 한다면, 그가 죽은 뒤 고통스럽고 나쁜 곳인 지옥에 태어나겠습니까?”

“부처님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촌장이여, 어떤 사람이 한 단지의 기름을 깊은 연못에 넣은 뒤, 그 단지를 깨뜨렸다고 합시다. 깨진 단지는 가라앉을 것이고 기름은 물 위로 뜰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연못가로 다가와 기도하고, 주문을 외우고, 합장하며 돌면서 말하기를 ‘착한 기름아 가라앉아라. 착한 기름아 아래로 내려가거라.’라고 한다면, 그 기름이 아래로 가라앉든지 내려가겠습니까?”

“부처님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촌장이여, 어떤 사람이 생명을 죽이지 않고, 훔치지 않고, 음행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이간질을 하지 않고, 악담을 하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탐욕을 부리지 않고, 악의를 지니지 않고, 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다가와 기도하고, 주문을 외우고, 합장하며 돌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죽은 뒤 고통스럽고 나쁜 곳인 지옥에 태어나게 해주십시오.’라고 한다 해도, 그는 좋은 곳인 천상에 태어날 것입니다.”

여기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촌장 아시반까뿟따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재가신도가 되었다고 한다. 큰 돌을 연못에 던지면 물속에 가라앉고, 기름을 연못에 넣으면 물 위에 뜬다는 부처님의 비유는 인과법을 설하시기 위한 것이지만, 바라문의 잘못된 기도를 보시고 기도하는 이의 올바른 태도를 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이기도 하다. 기도한다고 해서 인과를 벗어나 악업이 선업으로 바뀌고 지은 죄가 용서되는 것은 부처님 법이 아니다. 누군가 혹은 절대자가 죄를 용서했다고 믿는 것은 진통제 같은 자기 위안이요, 수면제처럼 잠시 잠들게 하는 자기 합리화다. 죄를 지었으면 빚 갚는다는 마음으로 흔쾌하게 받는 것이 부처님이 깨달은 인과법이다. 악업을 지은 만큼 참회하고 청정한 마음자리로 돌아가고자 스스로 분투하는 것 이 부처님 법으로 살아가는 능동적인 삶의 기술이다.

부처님 가피란 ‘본래의 나’에게 있는 영원생명과 무한능력이다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지 않고서는 그 어떤 기도도 감응이 없을 터이다. 그래서 참회가 필요한 것이다. 몸과 마음을 맑히는데 참회만한 것이 없다 했으니 참회는 기도의 절대조건인 셈이다. 또한 기도는 오직 행할 뿐 머릿속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일타스님은 기도를 행하는데 유독 간절함을 강조하셨다.

“기도 성취의 비결은 ‘간절 절(切)’에 있고, 간절 절(切)은 일념삼매로 통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여 잠깐이라도 일념삼매를 이루게 되면 불보살의 가피가 저절로 찾아들게 되어 있다.

불보살께서 우리를 보호함은 물론,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 영원생명과 무한능력이 개발되고, 내가 서 있는 이곳 또한 사바세계가 아닌 불국토로 바뀌게 된다.”

어느 해의 일이다. 내 이웃인 쌍봉사에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로 보아 나이 드신 분인데, 나를 만나고 싶어 주지스님에게 물었더니 바로 쌍봉사 위 골짜기에 살고 있다고 알려 주어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나이 드신 분에 대한 예의일 것 같아 전화를 받은 나는 주지채로 내려갔다. 그 분은 내 <암자로 가는 길>의 애독자였고 모 건설회사 회장님이었다. 주지스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그분은 내게 쌍봉사 극락전에서 한 달 동안 기도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회사가 자꾸 어려워져 마지막으로 부처님께 매달렸다는 것이다. 기도한 결과 회사는 계속 일취월장하여 자본금이 몇 조원으로 늘어났고, 지금은 본사를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옮겼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나를 만나고 싶었던 까닭은 따로 있었다. 원찰(願刹)을 짓고 싶으니 절터를 하나 잡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 몫이 아닌 것 같아 거절하고 내 산방으로 올라왔지만 그분이 받은 ‘부처님 가피’에 대해서만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부처님 가피란 무엇일까?’

부처님의 가피란 본래 나에게 있는 영원생명과 무한능력을 일념삼매 속에서 만나는 것이 아닐까? 또한 그것을 되찾는 것이 기도삼매가 아닐까? 영원생명이란 현실 속에서 애쓰는 나를 넘어선 영원한 생명이고, 무한능력이란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한 보석의 광맥과도 같은 무한한 잠재능력일 것이다.

내 안에서 영원생명과 무한능력을 만나는 통로는 여러 갈래다. 염불도 있고, 진언도 있고, 삼천배도 있고, 독경도 있고, 사경도 있다. 무엇을 하든 어느 순간 나라는 현실존재는 사라지고 홀연히 허공 같은 마음만 남아 있게 되는데 바로 그때가 영원생명과 무한능력을 절감하는 ‘본래의 나’를 만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