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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게 주는 만큼 내 것이 된다”

정찬주 | ibuljae@naver.com | 2012-10-07 (일) 23:26

<미디어붓다>는 불교문학을 대표하는 불교전문작가 정찬주 선생의 새연재 '정찬주의 불교이야기- 부처님처럼 살아라'를 연재합니다. 소설 <산은 산 물은 물>, <소설 무소유> 등 수많은 불교작품으로 이름이 높은 정찬주 작가가 쓰는 불교 에세이 '부처님처럼 살아라'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참 지혜를 제공해드릴 것입니다. 에세이는 매주 월요일에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부처님은 보통사람들에게 삶의 관점을 바꿔주려고 헌신했던 분

인도에 가면 어디서든 잎들이 새떼처럼 무성하게 앉은 듯한 핍팔라나무 노거수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동네 초입에 당산목(堂山木)으로 서 있는 느티나무처럼 자애로운 모습의 나무다. 인도여행 중에 라지기르에 사는 한 청년에게 들은 얘기다. 핍팔라나무는 밤에 이산화탄소를 뱉어내는 다른 나무와 달리 하루 종일 신선한 산소를 내뿜는 나무라고 한다. 그래서 인도 수행자들이 핍팔라나무 그늘에 앉기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 청년의 설명이 맞는지는 더 확인해봐야겠다.

핍팔라나무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장소에 있었다고 해서 우리에게 보리수로 더 잘 알려진 나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자 시작한 극단의 고행을 버리고 네란자라강을 건너 보드가야 언덕으로 가게 되는데, 그때 부처님의 정각을 고요하게 지켜본 나무가 핍팔라나무였던 것이다. 보리수 그늘 아래서 마침내 진리를 깨달으신 부처님께서는 사르나트까지 맨발로 걸어간다. 공동묘지 위에 있는 유영굴에서 6년 동안 고행할 때 뒷바라지해주었던 다섯 명의 수행자에게 당신이 깨달은 진리를 설법하기 위해서였다.

부처님이 한 청년에게 ‘보시하며 살아라’고 간곡하게 타이르신 것은 사르나트의 녹야원에서 다섯 명의 수행자들에게 첫 설법을 하시고 난 뒤였다. 보시란 ‘나누다’ ‘주다’ ‘베풀다’ 등등 여러 의미가 담긴 낱말이다. 부처님이 깨달은 연기(緣起)라는 진리로 얘기하자면 나와 세상이 한 뿌리로 연결되었다는 연대의식 속에서 서로의 행복을 위해 실천하는 삶의 기술 중에 하나이다.

이른 새벽이었다. 카시국의 수도 바라나시에 사는 대부호의 아들 야사가 녹야원을 찾아와 여자와 술과 음악 등의 쾌락으로도 만족할 수 없어서 술이 덜 깬 채 자학하듯 “허망하고 괴롭다!”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야사와 그를 찾으러 온 그의 아버지에게 보시와 지계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다. 보통사람으로서 보시를 널리 하고 다섯 가지 계만 지킨다면 천상에 태어날 거라는 이른바 시계천(施戒天)의 가르침이었다. 그런 뒤 그들에게 사성제와 팔정도까지 설해주었고, 부처님께서는 그의 집을 방문하여 야사의 어머니에게도 똑같이 설하신 뒤 그녀의 귀의를 받았다. 그래서 야사는 다섯 명의 수행자에 이어 여섯 번째로 귀의한 수행자가 되었고, 그의 부모는 최초로 남성신도(우바새), 여성신도(우바이)가 되었다.

보통사람은 돈, 명예, 권력 등을 갖고자 소유 지향적으로 산다. 자신이 획득한 재화를 세상에 돌려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사르나트의 대부호의 아들 야사에게 나눌 줄 알아야 천상에 태어난다고 설했다. 진정한 행복은 나눔에서 비롯되고 이뤄지는 절대충분조건이라고 타일렀다. 천상이란 죽은 뒤의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이 아니라 ‘더 없는 행복’을 청년 야사가 알아듣기 쉽고 실감나게 비유한 낱말이었을 터이다. 보통사람은 소유하고자 살기에 괴롭지만 부처님은 무엇이든 나누고 비우며 살았기에 천상에 있는 듯 행복했던 것이다. 야사 가족에게 설법했던 예처럼 보통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관점을 바꾸어주려고 헌신했던 분이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새벽의 강가강에서 꽃등 파는 아이. 사진=아일선


부처님 법은 21세기 현대인들의 문명병을 치유할 유일한 대안

야사의 아버지는 요즘 말로 하면 재벌 총수쯤 된다. 장사를 잘하여 남의 재산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수완가로서 평생 치부하며 살아왔던 그가 부처님 한 마디에 고생하며 모은 자신의 재산을 이웃에게 나눠주고 다섯 가지 계를 지켜 몸과 마음을 맑게 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보면 조금 의아해지기도 한다. 하루아침에 자기 분신과도 같은 재산을 나눠주고 거짓말하지 않고 술 마시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험담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사의 아버지가 얼마나 비상한 재주를 가졌는지를 알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는 바라나시 최고 장사꾼으로서 상대편 마음을 읽는데 남다른 재주를 가졌던 비범한 사람이었다. 야사의 아버지는 자신을 대하는 부처님의 진실하고 맑은 마음을 보았기 때문에 보시함으로써 천상에 태어난다는, 즉 몸은 현실 속에 있더라도 마음은 늘 천상에 있는 것처럼 행복할 것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마도 천부적인 장사꾼이었으므로 부처님 말씀을 자신의 저울대에 올려놓고 무엇이 더 마음의 안락과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지 번개처럼 빠르게 계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조차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야사의 아버지야말로 멋들어진 장사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진국에서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자신이 가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인들이 많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예가 없다. 야사의 아버지처럼 삶의 관점을 바꿔버린 멋들어진 장사꾼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후 부처님은 전법의 길에서 다른 제자들에게 좀 더 자상하게 보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신다.

음식을 보시하는 사람은 남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며
의복을 보시하는 사람은 남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사람이며
탈것을 보시하는 사람은 남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며
등불을 보시하는 사람은 남에게 밝은 눈을 주는 사람이며
집을 보시하는 사람은 남에게 모든 것을 주는 사람이며
부처님 법을 보시하는 사람은 남에게 윤회를 끊어주는 사람이니라.

‘보시하면 무슨 공덕이 있습니까?’ 하고 제자들이 묻자, 부처님께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설하시기도 했다. 무엇을 주면 그것이 메아리가 되어 내게 돌아온다는 데에 부처님 법의 오의가(奧義)가 있다. 부처님 법의 오묘함을 즐기는 일처럼 오롯한 기쁨이 또 어디 있을까? 남에게 힘을 주면 내게 힘이 생기고, 남에게 아름다움을 주면 내가 아름다워지고, 남에게 밝은 눈을 주면 내 눈이 밝아지고, 남에게 윤회를 끊어주면 내 윤회가 끊어지는 바, 부처님 법의 보시는 이웃에게 주는 만큼 내 것이 된다는 역설의 인과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현대인들의 문명병인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대체적으로 의식주를 보시하는 것은 재가신도의 몫이고 부처님 법을 보시하는 것은 출가자의 의무인데, 법시(法施)를 늘 맨 나중에 설하신 까닭도 분명 있을 법하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마음을 안락하게 하는 법시, 즉 부처님 법을 알려주는 복덕이 물질적인 재시(財施)의 복덕보다 크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의 사구게(四句偈)만이라도 받아 지녀서 남을 위하여 설해준다면, 그 복덕은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울 만큼의 칠보로써 보시하는 복덕보다 더 뛰어나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여,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이 모두 이 경에서 나오기 때문이니라.’

뿐만 아니라 부처님 법이 담긴 책을 나눠주는 법보시도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시와 맥을 같이하니 그것의 복덕은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그런데 보시란 야사의 부모처럼 부자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조금 있어도 베푸는 보시는 천배의 가치가 있다.’고 하시며 ‘주기 어려운 것을 주는 사람들과 하기 어려운 것을 하는 사람들은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하셨다.

내 주위에도 그런 분들이 많다. 한 중년불자는 광주 원각사에서 나의 강연을 들은 뒤에도 산중의 내 산방(山房)을 찾아와 의문 나는 것을 묻곤 하는데, 결코 가진 것이 많아서 베풀고 사는 분이 아니다. 자신이 줄 것을 애쓰고 힘들여 만들어서 남모르게 보시하는 거사이다. 귀밑머리가 희끗해질 무렵이면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고 안주하는 나이지만 그 분의 선행은 그렇지 않다. 직장에서 받은 월급은 살림하는 아내에게 맡기고 자신은 이른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여 보시할 정재(淨財)를 마련하는 것이다.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까 봐 마스크를 하고 모자를 눌러 쓴 채 몇 년 동안 신문배달을 하면서 받은 급료를 전부 사회봉사단체에 기부해 왔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한 인과의 도리대로 ‘죽은 이들 가운데 죽지 않는 이’가 바로 그 거사일 것 같고, 야사의 아버지와 같이 천상에 태어나는 공덕을 이미 짓고 있지 않나 싶다.

보시란 나와 세상이 한 몸이 되는 성불의 지름길

그런데 재물이 있어야만 보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은 <무량수경>에서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하고 말을 부드럽게 하는 화안애어(和顔愛語)를 말씀하셨다. 웃는 얼굴과 부드러운 말도 큰 보시가 된다는 말씀인 바, 불가에 널리 암송되고 있는 문수동자의 게송도 같은 의미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面上無瞋供養具
口裡無嗔吐妙香
心裡無嗔是眞實
無染無垢是眞常

서울 길상사 공덕주 길상화보살도 아무런 조건 없이 당시 1천억 원의 땅과 집을 보시한 분이다.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으나 길상화보살이 보시하려고 마음을 내어 결실을 맺는 두 장면은 내가 법정스님 곁에서 지켜보아 조금은 알고 있다.

한번은 법정스님이 상도동 약수암으로 법문하시려고 오셨다기에 뵈러 갔는데, 그 자리에 나로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와 있었다. 암자 큰방에는 법정스님과 요정을 운영하여 재산을 크게 모은 길상화보살, 그리고 감색 양복을 입은 중년신사 두어 명이 앉아서 담소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길상화보살이 법정스님에게 성북동 대원각을 기부는 하겠지만 자신의 재산이 뜻대로 잘 운영되는지 지켜볼 감사를 한 명 두자는 안을 가지고 온 자리였다고 한다.

그때 법정스님은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고승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그분들을 찾아 시주하십시오.” 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다. 일이 틀어지자, 가장 당황했던 사람은 길상화보살이었다. 보살을 잘 아는 변호사가 조언해주어 제안하였는데, 뜻밖의 결과가 났기 때문이었다.

법정스님의 의지는 단호했다. 할 수 없이 보살은 그날 이후부터 전국의 고승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미 자신의 재산을 절로 만드는데 시주할 결심을 굳혔기 때문에 다른 용도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2년 후, 길상화보살은 어찌 보면 고승들 가운데서 자신에게 가장 불친절했던 법정스님을 다시 찾아와 요정 대원각을 아무런 조건 없이 보시했다. 길상사가 개원되는 날 그녀는 수천 명의 신도 앞에서 말했다.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저는 불교를 모릅니다. 제 소망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었던 저 팔각정에 범종을 달아 한 번 쳐보는 것입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을 비롯하여 여러 고승대덕의 법문이 길게 이어졌지만 내가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길상화보살의 단 세 구절뿐이다. 그러자 법정스님은 길상화보살 목에 염주를 걸어주었다. 염주를 선물한 까닭은 부처님 가르침을 늘 잊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법정스님이 처음에 길상화보살의 시주를 받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길상화보살이 보시한다는 상(相)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시한다는 생각 없이 보시해야 하는데 보시한 이후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준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보시라야 복덕이 크다고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그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해야 하나니, 이른바 모양에 얽매임 없이 보시를 해야 하며,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감촉이나 생각에 얽매임 없이 보시를 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하여 어떠한 상에도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하느니.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에 집착을 하지 않고 보시를 하면 그 복덕이 가히 헤아릴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보시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했다. 무주상보시를 실천하다 보면 ‘가히 헤아릴 수 없는 복덕’을 받는다고 했는데 그것의 진경(眞景)은 무엇일까. 초기경전인 <아함경>에서는 좋은 곳 즉 천상에 태어난다고 했고, 대승경전인 <금강경>에서는 ‘위없는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다 했으니 ‘내 것’이라는 상(相)을 지우고 아낌없이 보시하는 것이야말로 나와 이웃, 더 나아가 세상과 한 덩어리라는 연대의식을 자각케 하는 성불의 지름길이라고 확신해도 좋을 듯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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