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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님을 건드리면 누구든…”<br>정찬주 장편 ‘천강에 비친 달’-33

정찬주 | ibuljae@naver.com | 2014-07-03 (목) 14:48

천강에 비친 달 〈33〉


진흙탕 연꽃


동궁에 급히 세자와 수양, 안평이 모였다. 내금위장(內禁衛將)의 보고를 듣기 위해서였다. 내금위장은 대조회를 마치고 바로 왔는지 흰 철갑을 두르고 있었다. 병조의 소관인 내금위(內禁衛) 임무는 임금을 지근거리에서 밤낮으로 호위하는 일이었다. 내금위 군사들은 조회 때만 갑옷을 입고 평소에는 가벼운 복장에 환도만 차고 다녔다. 병조에서 선발한 숫자에다 수양이 지략과 무예가 뛰어난 이를 발견할 때마다 추천하다보니 내금위 군사는 어느새 200명이나 되었다. 60명이 3교대로 임금을 호위할 수 있는데도 많은 군사들이 별로 하는 일 없이 봉급을 받았다.

그런데 수양의 생각은 달랐다. 임금뿐만 아니라 세자와 왕자들도 호위무사의 경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남아도는 내금위 군사를 왕실에서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양의 이런 생각은 병조의 관원들에게 알게 모르게 견제를 받았다. 실제로 병조에서 내금위 군사를 현실에 맞게 줄이자고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동궁 임시모임은 수양이 주관했다. 수양이 뚱뚱한 내금위장의 흰 갑옷을 보고 말했다.

갑옷이 무겁지요?”

수양대군마마, 대조회를 마치고 황급히 달려오느라 옷을 바꿔 입지 못했사옵니다.”

내금위장은 비지땀을 흘렸다. 동궁의 방안은 공기 소통이 원활치 못해 후텁지근했다. 간밤에 불을 들인 듯 방바닥은 미지근했다. 그렇다고 창이나 방문을 열어젖힐 수는 없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하였다.

대사님께 보낸 군사는 어찌 되었소?”

대사님은 무사하십니다. 무재(武才)가 뛰어난 내금위 군사 몇 명을 보내 자객을 물리쳤습니다.”

사간원 자객이 도망쳤다는 말이오?”

두 놈 다 숨통을 끊어놓았습니다.”

시신은?”

대군마마 지시대로 사간원 문 앞에 던졌습니다.”

안평이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형님. 시신을 감쪽같이 처리한 것이 더 좋지 않았겠습니까?”

이에 세자가 말했다.

안평 얘기가 옳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습니다, 형님. 사건이 일파만파 확대되어 조정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칠 수 있습니다.”

조정이 흔들리면 아바마마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어.”

그러나 수양은 사건의 결말을 확신하듯 반대 의견을 냈다.

관원들이 대사님을 제거한 뒤 석교의 싹을 자르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는 대사님을 곁에 두려는 아바마마의 존엄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관원들에게 충격을 주어 엄중하게 경고하자는 것입니다. 결국 아무 일 없을 것입니다.”

세자가 수양의 말에도 수긍했다.

수양 얘기도 옳아. 그래서 시신 처리를 그렇게 했다는 말이군.”

형님, 시신을 사간원 앞에 두라고 한 것은 제가 내금위장에게 부탁했습니다.”

내금위장은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내금위장이 앞으로 고꾸라질 듯 상채를 숙이며 말했다.

세자 저하, 소신도 수양대군마마와 같이 사건이 확대되지 않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이유가 무엇이오?”

살인사건을 조사하게 되면 사간원 관원들의 음모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피바람이 조정에 어디로 회오리칠지 모릅니다. 그러니 사간원 관원들은 조사하는 척하다가 전하의 심기를 살피면서 유야무야 덮어버릴 것이옵니다.”

비로소 세자가 안도하며 수양에게 말했다.

수양 동생이 끝까지 사건을 잘 마무리 지어 주게.”

형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사건은 곧 조용해질 것입니다. 내금위장 말대로 살인사건 조사는 확대되지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사님을 제거하려는 대관들의 기세는 차츰 꺾이고 말 것입니다. 누구라도 대사님을 건드리면 살아남지 못하리라고 경고한 까닭입니다.”

수양이 내금위장에게 작은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사님을 지켜내셨으니 받으십시오. 제가 마련한 마음의 선물입니다. 거절하지 마시오.”

수양대군마마. 황공하옵니다.”

수양이 내놓은 선물은 왜국의 사신이 가져온 은제 단검이었다. 세자가 말했다.

내금위장. 상자를 열어보시오.”

세자 저하, 그리 하겠습니다.”

상자를 열자 끝이 뾰쪽한 은제 단검이 드러났다. 단검 손잡이에는 매화가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었다. 내금위장이 매우 흡족해하자 수양이 또 말했다.

앞으로는 대사님이 내불당에 계신다고 하니 그곳에도 내금위 군사들을 보내주시오.”

수양대군마마. 반드시 내불당을 지키겠습니다.”

내금위장이 나가고 나자 수양이 어금니를 물며 말했다.

형님. 자애로운 아바마마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신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감찰 김종서 같은 이는 아바마마의 총애를 받고 있으면서도 은혜를 모른 채 젊은 유생들 앞장이가 되어 무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아바마마께서 백성을 위해 우리 글자를 만드는 일인데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겠습니까?”

성리학의 나라가 되었으니 그 흐름을 어찌 거스르겠는가. 흐름을 따르는 것이 순리일 터. 아바마마께서도 유신들을 달래가며 정사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네.”

신미대사님은 진흙탕 속에서 살고 계신 생불입니다. 대사님마저 안 계신다면 누가 아바마마의 대업을 받들고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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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이 물었다
.

수양 형님. 진흙탕이라 함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는 승도와 이미 세력을 잃은 승도마저도 철저하게 짓밟으려는 유생들의 기고만장을 보고 있잖은가.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세상의 진흙탕 수렁이 아닌가.”

아바마마와 대사님이 세상에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완성해가고 있는 우리 글자야말로 진흙탕 속에서 핀 연꽃입니다.”

세자가 한 마디 했다.

아바마마의 뜻대로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우리 글자는 창제되고 말 것이네. 유불(儒佛) 싸움의 진흙탕 속에서 불()이 살아남아 남긴 우리 글자이기도 하겠군.”

형님. 그렇게도 볼 수 있겠습니다.”

수양과 안평이 약속한 듯이 함께 맞장구쳤다. 내금위장이 나간 지 한참 뒤에도 세 사람은 돌아가지 않고 세종을 기다렸다. 신하들이 퇴궐한 뒤 동궁 침전으로 오겠다며 내시 김용기를 보냈던 것이다. 세종이 동궁으로 온다면 아마도 내불당에 주석하게 된 신미를 도와 우리 글자를 만드는데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를 내릴 것이 분명했다.

수양, 차라리 대사님이 내불당에 계시는 것이 잘된 일이네. 무엇보다 궁중이니 안전하지 않은가. 그러니 아바마마의 대업에만 전념할 수 있으실 것이네.”

다행입니다. 형님.”

안평도 말했다.

아바마마께서 대사님을 내불당으로 불러들이신 뜻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이제 우리 글자를 만드는 비밀이 밖으로 새어나갈 일은 없을 것이네.”

실제로 세종은 글자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밀이 유신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몹시 염려했다. 명나라 글자로 된 고급한 성리학이 퇴조할 것이며 황제의 나라인 명나라에 대한 불경(不敬)이라며 유생들이 극렬하게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세종을 도와온 신미는 임금을 현혹하였으며 백성을 혹세무민한 대역죄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신미가 사는 방법은 세종의 그림자가 되는 것밖에 없었다. 우리 글자가 완성되는 날에도 세종은 신미의 이름을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신미를 죽이는 일이었다. 세종이 신미를 살리는 일은 신미의 이름을 지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미는 부질없는 공명심에 이미 초탈하여 개의치 않았다. 일찍이 <</SPAN>금강경오가해설의>를 집필할 때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而生其心)’라는 구절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해인사 대장경판을 지켜내고 흥천사 사리전을 중건했으며 일찍이 신미 자신을 진실로 알아준 세종을 위해 오직 지엄한 명을 이행할 뿐, 무엇을 도왔다는 마음에 집착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정찬주 작가의 장편소설 '천강에 비친 달'은 한글창제의 주역 신미대사가 한양에 올라왔을 때 자주 주석했던 고찰, 정릉 흥천사가 협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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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청현 2014-07-03 16: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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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신미를 살리는 일은 신미의 이름을 지우는 것이었다.'
불교 배척에 따른 불리한 환경이 신미스님의 명성을 후대가 알기 어려운 지경으로 몰아갔음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왕자들과 세종의 헌신과 인내, 노력은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사대부와 성리학이 존중되고 이를 무시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는 살벌한 개국 초에 두 얼굴을 하고 있어야 했으니......
명경대 2014-07-04 11: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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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리 한글이 연꽃이었습니다. 우리 한글이 연꽃이었음을 선생님의 글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안담 2014-07-04 11: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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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보면 성리학의 나라에서 거의 꺼져 가는 불교의 힘에
의존하여 위대한 우리글이 만들어졌음은 기적입니다.
거듭 생각해 봅니다. 만약 한글이 창제되지 못 했다면
오늘의 이 민족은 입으로는 한국말을 하면서 글자는 여전히
한자를 사용했거나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남미 국가들처럼
언어 침략을 당했을 것입니다.
은행나무꽃 2014-07-07 12: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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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름을 마음대로 드러내놓을 수 없는 아픔
큰 스님이 아니고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 아닐까요?
신미대사님의 넉넉한 마음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오늘날 논공행상에 날 세는 줄 모르는
우리네 중생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무진 2014-07-25 15: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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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단심 만백성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하여
먼 노정의 고된 연옥 속에서도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피어나는 찬란한 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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