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강에 비친 달 <14>

야다시(夜茶時)

희우는 사헌부 일과가 시작하는 아침이 가장 바빴다. 물론 차아궁이에 불을 들이고 차솥에 서 끓인 찻물을 내오는 일은 어린 구실아치가 보조했지만 혼자서 조심스럽게 여섯 명 분의 차를 우려내고 따르는 일은 수월치 않았다. 보통 때는 정 5품 이상의 대관(臺官)들이 일과를 시작하면서 차를 마셨지만 어떤 날은 사간원에서 온 간관(諫官)들과 합석하기도 했다. 그런 날은 다기를 잡은 손바닥에서 진땀이 났다.

희우가 우려내온 차를 대간들은 희우차라고 했다. 세종이 양주로 강무를 나갔을 때 ‘희우차’라고 단 한번 격려했던 말이 사헌부 안에서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까다롭고 자존심이 센 대관들도 희우차는 인정해 주었다. 희우는 분주한 오전 일과가 끝나면 오후에는 다시청 뒤편의 수양버드나무 그늘로 갔다. 버들잎은 어느새 세필의 붓털 크기만큼 날렵하게 자라 있었다. 희우는 흐르는 개울물을 보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겼다.

‘관음사 지장전 지붕에 기왓장이 올라가고 있을까.’

작년 가을에 상량식까지 했는데 기와를 시주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한겨울을 방치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대들보 위에 임시방편으로 거적을 씌워두었지만 눈비를 맞은 기둥들은 차츰 썩기 마련일 터이므로 올봄 장마철이 더 걱정이었다.

‘관음사에 계시는 어머님의 아픈 다리는 나았을까.’

어머니 혼자서 관음사에 딸린 논밭은 물론이고 오두막 밭뙈기 농사까지 관리하다 보니 농번기가 되는 봄만 되면 무릎에 고질병이 도지곤 했다. 사헌부 다시청 뒤편으로 개울이 있다는 것은 희우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흘러가는 개울물을 보고 있으면 무심코 잡념이 씻어졌다. 빨래한 것처럼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개울물에 드리운 버들잎 그림자가 마치 송사리 떼처럼 어른거렸다. 그런가 하면 잔물결이 햇살에 반사되어 언뜻언뜻 쌀뜨물 같은 빛깔로 반짝였다.

“여기 있었구나. 뭔 일이 있느냐. 정신 나간 사람 같구나.”

정 6품의 감찰 정현이었다. 정현은 희우를 찾아서 여기 저기 다닌 듯 질책하듯 말했다.

“나으리, 봄바람을 좀 쐬고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바쁘지 않으니까 누가 너를 뭐라고 책하겠느냐.”

“급한 일이 생긴 것이옵니까?”

“오후에 다시청에서 대간(臺諫) 모임이 있다는 전갈을 받지 못했느냐?.”

대간이란 사헌부의 대관과 사간원의 간관들을 합해 부르는 이름이었다. 대간이 모인다면 위중한 사건을 다룰 게 분명했다. 불시에 이뤄지는 대간회의는 임금에게 사전보고를 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처리하는 사건을 다뤘다.

“야다시(夜茶時)가 있을 것이다.”

“야다시가 무엇이옵니까?”

“대간들이 조사해온 곳을 불시에 들이닥쳐 풍속을 단속하는 것이다. 짐작컨대 진관사 중들의 음행을 단속할 것 같다.”

야다시란 다시(茶時)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아무 때나 범행 현장을 급습하는 것을 뜻했다. 다시 종이를 들고 있으면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삼정승이라 하더라도 대간들의 업무를 저지하지 못했다. 그만큼 다시 종이를 든 대간들의 특권은 무소불위였는데 그 기능은 훗날 어사의 마패와 흡사했다.

그런데 세종 때 대간들의 야다시는 유독 승려를 표적으로 삼았다. 세종이 불교를 감싸고도는 것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특히 세종이 침전으로 가끔 이용하는 동별궁에 함허가 드나든다는 소문이 대간들 사이에 퍼져 있었는데, 승려들의 파계를 집요하게 조사하여 야다시를 집행하는 것은 실제로는 세종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간원에서 나오는 좌사간 유계문(柳季聞)은 조심해야 할 벼슬아치니라. 백성들의 공물을 수탈하다가 한때 파면되기도 했던 인물이니라. 그런 자들이 꼭 여색을 밝혀 평지풍파를 일으키곤 했느니라. 더구나 관운이 좋기로 소문난 유관(柳寬) 대감이 부친인데 부자가 다 승도(僧徒)를 배척하는데 앞장서고 있느니라.”

“나으리, 조심하겠사옵니다.”

크게보기

희우는 다시청 뒷문으로 들어와 어린 구실아치들에게 찻물을 끓이게 하고 자신은 청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걸레 빠는 물을 긷는 등 힘쓰는 일은 솟을대문을 지키는 문지기 군사가 군말 없이 도와주었다.

청소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간관들이 사헌부 마당에 들어와 뒷짐을 진 채 얘기를 주고받으며 서성거렸다. 사헌부에서 여섯 명, 사간원에서 네 명이 오기로 돼 있었다. 사간원 참석 자는 두 명의 집의(執義)와 정언(正言) 두 명만 참석하기 때문에 모두 네 명이었던 것이다. 좌장은 종 2품의 대사헌 하연이 맡았으므로 사간원에서는 일부러 정 3품의 대사간이 오지 않았다. 누가 다시청에 모이는지는 대단히 중요했다. 의자 숫자와 자리배치를 잘해야 됐고 실수할 경우에는 구실아치들이 곤장을 맞는 등 벌을 받았다. 좌장과 벼슬아치들은 품계에 따라 앉는 자리가 달랐다. 나이순이 아니었다. 희우는 대간들의 품계를 자꾸 들었지만 잘 외우지 못했다. 사간(司諫), 집의. 장령(掌令), 지평(持平), 정언 등의 품계가 잘 외워지지 않아서 누가 어디에 앉는지 헷갈렸던 것이다.

정현이 말한 유계문은 종 3품의 좌사간이니 정 3품의 대사헌 하연과 품계가 엇비슷한 셈이었다. 희우는 다시 한 번 그가 앉을 의자를 꼼꼼히 살폈다. 등받이를 잡고서 흔들어보기도 했다. 혹시라도 다리가 하나 부실하다면 무슨 탈이 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희우가 다탁에 찻사발 열개를 다 준비해 놓은 뒤에야 대간들이 하나둘 들어와 착석했다. 유계문은 뒤늦게 나타났다. 30대 후반의 나이지만 배를 내밀고 갈지자로 들어오는 걸음걸이는 늙은이 같았다. 때를 맞추어 감찰 정현이 눈치를 보내자 사헌부 서리(書吏)가 다시청을 나가더니 잠시 후 하연을 모시고 들어왔다.

회의는 차를 마시는 순서부터 시작했다. 희우가 우려낸 차를 모두가 쉬지 않고 세 사발씩 마셨다. 그러고 난 후에야 하연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 태종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이셨소. 간사한 것을 버리시되 의심이 없었소. 절과 불당을 없앴으니 진실로 옛날에 없는 성군이셨소. 허나 아직도 석교(釋敎; 불교)로 인한 폐단을 혁파하지 못하고 있소.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구습이오.”

하연이 짧게 말하고는 두 손으로 찻사발을 들었다. 그러자 사간원 대표로 나온 유계문이 부처(佛)에 씨(氏) 자를 붙여 비아냥대듯 말했다.

“불씨(佛氏)의 도를 뿌리 뽑고 불상을 녹여 돈을 만들고 중은 머리를 길러 군병에 충당하는 것이 가할 것입니다. 다만 불씨의 도를 행하는 중이 많으므로 갑자기 다 도태시킬 수 없으니 문제입니다. 이미 오교양종(五敎兩宗)을 선교양종으로 줄였지만 그래도 절에 지급한 전답과 노비가 지극히 후합니다. 사정이 이런즉 양종을 마저 혁파하고 선직(選職)을 폐지하며 마흔 살이 넘은 중은 산으로 쫓아버려야 합니다. 또한 절에 딸린 전답을 삭감하여 군수(軍需)에 충당하고 절의 노비를 빼앗아 역(驛)에 예속시켜야 합니다.”

하연이 찻사발에 남은 차를 다 마시자마자 말했다.

“유대감의 말이 옳소. 백성들이 흉년이 들어 굶는 것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놀고먹는 중들에게 무엇 때문에 전하께서 전답을 더 내리어 절을 풍족하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소. 영통사의 밭이 2백결인데 살고 있는 중의 숫자는 겨우 일곱 명이요, 운암사의 밭이 2백결인데 살고 있는 중의 숫자는 겨우 네 명이요, 흥덕사의 밭이 2백50결인데 살고 있는 중의 숫자가 겨우 20명이오. 이로 본다면 다른 사사(寺社)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유대감의 말대로 전답을 삭감하여 군수에 충당하는 것이 마땅하오.”

하연과 유계문의 얘기를 듣고만 있던 사헌부 젊은 지평이 말했다.

“어버이가 죽으면 크게 불공을 베풀고서 매양 죄 없는 부모를 죄가 있는 것처럼 부처와 시왕(十王)에게 고하고 죄를 면하기를 바라니 그 불효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설사 부처와 시왕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 한 그릇 밥의 공양으로 죄 있는 사람을 용서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이에 유계문이 대답했다.

“지각없는 백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작년에 돌아가신 성석린(成石璘) 대감마저 중들의 속임과 꼬임에 미혹되어 부처에게 아첨하였으니 진실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소.”

유계문의 대답에 사간원에서 나온 가장 낮은 품계의 정언이 경상도 사투리로 부처를 탐관오리로 비유해서 동조했다.

“돌아가신 대감을 비난하고 싶지만 않지만 불공비용을 극도로 갖추어 남의 눈에 자랑 삼아 과시하는 자가 있십니더. 허나 어찌 그것이 존망(存亡)에 이익이 있는 일이겠십니꺼. 부처에게 신령이 있어서 사람이 주는 밥을 먹고 사람의 죄를 구원해준다면 이것은 필시 벼슬을 팔고 감옥을 파는 탐관오리의 일이 아니겠십니꺼.”

하연이 결론을 유도했다.

“방금 거론한 얘기들은 대간들이 합동으로 상소하기로 하지요. 다만 오늘 우리가 모인 까닭은 중들의 파계가 심한 절 가운데 하나를 탄핵해보자는 것이오. 이번에 나는 흥천사 중을 불러 문초해 보았소.”
“흥천사 중들의 행실은 어떠했습니까?”

“중들이 행사 때 감히 유밀과(油密果)를 사용하였으며 또 어떤 중은 금령을 범하여 술을 마셨으며 문초를 받을 때는 중답지 않게 서로 해치기를 꾀하고 그들의 우두머리를 헐뜯었소.”

유밀과란 꿀을 바른 과자를 말했다. 흉년이 들면 호사음식이라 하여 꿀을 바른 과자까지 금했던 것이다. 유계문이 말했다.

“대감, 그 정도야 우리도 제사 때 유밀과를 올리고 술을 마시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 안의 사찰 진관사의 방탕한 중들이 문제입니다. 태종 전하 때도 간사한 중들의 타락이 심하여 죄를 준 적이 있지만 아직도 일부 중들이 파계를 일삼고 있으니 큰일입니다. 사찰에서 배불리 먹고 시정의 여염집을 왕래하면서 늘 여색과 더불어 거처하고 있으니 중들이 난잡해진 것입니다. 더 이상 탄핵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어디 여염집만 왕래합니까? 이제는 전하의 침전까지 드나든다 하지 않습니까? 이번에 불벼락을 내려야 두려워서 행실을 삼갈 것입니다.”

출입을 막고자 문에 가시나무를 걸치는 야다시 대상의 절은 쉽게 정해졌다. 태조 때부터 왕실의 지원을 받아 해마다 수륙재를 지내온 진관사가 표적이 되었다. 대간회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정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간들이 다시청을 다 나간 뒤 찻사발을 씻고 있는 희우에게 다가가 가만히 말했다.

“다모처자, 대간들이 흥천사로 먼저 가지 않는 것이 다행이야!”

“무슨 말씀이옵니까?”

“흥천사에는 신미스님이 있느니라.”

희우는 깜짝 놀랐다. 찻사발끼리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신미스님을 아느냐?”

“양주 집에서 뵌 적이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더욱 잘 됐다. 나는 대간들을 따라 진관사를 갈 터인즉 너는 문지기 군사를 길잡이로 붙여줄 테니 오늘밤 흥천사로 가 신미스님을 만나거든 현등사로 피신하시라고 전하거라. 성안 절들은 모두 위험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스님을 밀고할 수도 있느니라.”

“신미스님이 무슨 죄를 졌사옵니까?”

“스님을 뵙거든 내가 보냈다고 하고 내 말만 그대로 전하거라.”

정현은 신미가 흥천사 골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신미는 함허의 지시를 받아 은밀하게 무지렁이 백성들이 한자로 된 불경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자를 궁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미의 작업은 이심전심으로 세종이 원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자를 대신하는 글자를 만든다는 것은 죄의 크기로 보아 대역죄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한자로 된 사서오경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대간들에게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정현이 희우를 급히 신미에게 보내려 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정현은 바로 진관사를 떠났고 곧 눈썹 같이 생긴 초승달이 떴다. 초승달은 서쪽하늘에서 잠시 하얗게 떠 있다가 재빠르게 금가락지처럼 빛났다. 희우는 더 기다리지 않고 사헌부 솟을대문을 나와 어둑한 육조거리를 걸었다. 흥천사는 사헌부에서 오 리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길잡이를 하는 군사 한 명이 앞장서니 희우는 마치 절에 불공하러 가는 궁녀 같았다.

*정찬주 작가의 장편소설 '천강에 비친 달'은 한글창제의 주역 신미대사가 한양에 올라왔을 때 자주 주석했던 고찰, 정릉 흥천사가 협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