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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



“싸오쩡(小鄭)이라 부르겠어요.”

“전 누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잉.”

싸오쩡이란 ‘젊은 정씨’라는 귀여운 말이었다. 의열단 단원들이 대부분 30대, 40대인데 성악을 배우고 있는 정율성은 20대 초반으로서 풋풋한 젊은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율성은 음악공부만 하러 중국에 온 젊은이는 아니었다. 남경에 있는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즉 의열단간부학교 2기 졸업생으로 현재는 비밀리에 남경 고루(鼓樓)전화국에 침투하여 상해와 남경에 사는 일인들의 전화통화를 도청하여 첩보를 입수하는 의열단 단원이었다. 의열단간부학교는 2기생부터 의열단에 가입해야만 입학을 허락했던 것이다.

모처럼 김성숙 방은 장미꽃과 백합꽃 향기가 진동했다. 두군혜가 화병 두 개를 가지고 와 꽃을 꽂았다. 그런 뒤 한 개는 살림방에, 또 한 개는 김성숙의 서재라고 할 수 있는 골방으로 가져갔다. 골방은 살림방 바로 옆에 창고처럼 붙어 있었다.

활발한 성격의 정율성과 달리 말수가 적은 정봉은이 말했다.

“율성아, 여그는 우리 친척들만 사는 전라도 능주가 아니랑께. 항상 조심해라잉.”

“아따, 나는 중국 새 누님도 사귀고 그랑께 좋아불그만요.”

“그라믄 나는 헌 누님이다냐? 작년에 니 형 의은이가 잡혀간 거 보았음시롱도 그러냐. 여그는 왜놈들이 우릴 잡아불라고 눈을 부라리고 다닌단 말이여.”

정율성의 누나 정봉은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제는 정율성도 일경의 감시를 받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정율성이 1933년 봄에 셋째형 정의은을 따라서 큰형(鄭孝龍)의 아들 정국훈(鄭國勳)과 함께 조선을 떠나 중국에 온 내력은 이러했다.

정의은이 의열단간부학교 생도를 모집하러 국내로 들어왔는데, 정의은은 전라도 지방의 모집책이었고, 중산대학를 중퇴한 뒤 의열단간부학교 1기생인 이활(이육사)은 경상도 지방의 모집책이었던 것이다. 정의은이 전라도에서 모집한 청년은 동생 정율성과 조카 정국훈, 그리고 담양의 김승곤 김일곤 사촌형제, 뒷날 해공 신익희 사위가 되는 김재호와 최명선 등 모두 6명이었다.

정율성이 셋째형 정의은과 함께 목포항에서 여객선 헤이안마루(平安丸)를 탔던 때는 1933년 5월 8일 아침이었다. 정율성은 중국에 가면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셋째형의 말에 별 고민 없이 따라나선 길이었다. 셋째형이 말하는 학교는 의열단간부학교를 뜻했다. 독립투사를 양성하는 군사학교였다. 그때 정율성은 낡은 바이올린을 지니고 있었다. 일찍이 독립운동에 눈떴던 둘째형 정충룡(鄭忠龍)이 중국으로 떠나면서 물려준 바이올린이었다.

정율성이 음악과 친숙해지게 된 때는 유년시절을 보낸 능주 시절부터였다. 친지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능주는 판소리 명창들이 많았다. 지석강변의 영벽정에서는 명절 때마다 능주의 명창들이 모여 소리판을 벌였다. 소리꾼들이 모여 연습하는 객사(客舍)가 능주초등학교 옆에 있었으므로 정율성은 등하굣길에 늘 판소리나 민요를 접할 수 있었고, 광주로 전학한 뒤로는 큰외삼촌이자 목사인 최홍종 집에 있는 축음기로 서양음악과 찬송가를 자주 들었기 때문이었다.

목포항을 떠난 헤이안마루는 부산항을 경유했다. 부산항에서도 경상도에서 모집된 의열단간부학교 후보생도들이 몇 명 탔다. 배는 다시 일본 나가사키항으로 갔다가 상해로 떠났다. 배는 5일 만인 1933년 5월 13일 아침에 상해 푸동항에 도착했다. 푸동항은 일경의 감시가 몹시 심했다. 1년 전 일인들의 거주지 휴식처인 상해의 홍구(虹口)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폭탄투척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여객선 헤이안마루에서 내린 조선 청년들은 서너 명씩 짜놓은 조(組)대로 인력거를 타고 정의은을 뒤따랐다. 조선 청년들이 인력거에서 내린 곳은 일경의 감시가 미치지 못하는 프랑스인들의 거주지에 있는 여관이었다. 여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조선 청년들은 자신의 이름부터 위장했다. 최악의 경우 국내에 있는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정율성은 가명을 유대진(劉大振)이라고 지었다.

조선 청년들은 다시 정의은을 따라서 상해역으로 가 남경으로 가는 3등 열차를 탔다. 몇 시간 뒤 남경역에 내리자 의열단 간부들이 마중 나와서 그들을 맞았다. 그들 중에는 김승곤의 삼촌 김용제도 있었다. 김용제는 의열단간부학교 전술학 교관이었던 것이다. 또 다시 조선 청년들은 마차 두 대로 나눠 타고 어느 여관으로 가 열흘쯤 대기했다. 그 사이에 정의은과 정국훈은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여관에서 흉흉한 단독주택으로 옮긴 조선 청년들은 두 달 동안 무료하게 생활하면서 간단한 중국어를 익혔다. 단독주택은 중국인들에게 흉가로 알려져 3년 동안 비어 있다가 의열단에서 사들인 아지트였다.

정율성은 또 다시 손문 묘 부근에 있는 빈 절로 갔다. 그곳 빈 절은 의열단 후보생도 대기소인 셈이었다. 이처럼 바로 의열단간부학교로 가지 않고 여러 곳을 거치는 이유는 일경의 첩자를 걸러내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중국으로 건너온 지 4개월 만인 9월 초에 정율성을 비롯한 조선 청년들은 차를 타고 남경에서 70여 리 떨어진 강소성 강녕진(江寧鎭) 증조사(曾祖寺)로 이동했다. 증조사가 바로 의열단간부학교 생도들이 군사훈련을 받는 학교였다. 입학식에 북양대학 교수 김규식(金奎植), 의열단 단장 김원봉, 의열단간부학교 고문 강택(康澤) 등이 참석하여 입학생들을 격려했다. 특히 미국과 소련 등에서 활동하여 국제정세에 밝은 김규식이 <세계정세와 민족혁명의 앞날>이라는 주제로 중국과 조선의 협력, 조선독립의 필연성 등을 역설했다. 1기 교관이었던 박건웅도 참석하여 김규식의 강연을 들었다. 김규식이 정율성의 누나인 정부은을 자신에게 소개하여 부부의 인연을 맺어준 일도 있었던 것이다.

의열단간부학교 수업기간은 6개월이었다. 김구가 찾아와 조국광복을 위해 최후 1인까지 투쟁하자는 취지로 격려한 뒤 2기생 생도들 전원에게 태극기 문양이 그려진 만년필을 한 개씩 선물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2기를 졸업한 생도 대부분은 국내로 잠입하여 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일어에 능통한 정율성은 남경고루전화국에 들어가 남경과 상해에 거주하는 일인들의 전화통화를 도청하여 첩보를 입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경에 남았다.

음악을 좋아하는 정율성으로는 행운이었다. 남경 화로강(花露岡) 부근에 머물면서 장지락의 소개로 중국인 공산당 지도자 나청(羅靑)을 만났고, 또 젊은 음악가 두시갑(杜矢甲)을 사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시갑은 정율성이 켜는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는 반하여 음악공부를 정식으로 해보라고 크리노와 교수를 소개해 주었던 것이다. 음악공부를 하게 된 그는 얼마나 기뻤던지 가명인 유대진을 버리고 아예 정율성이라고 개명을 해버렸다. 기필코 ‘인민혁명을 위해 아름다운 선율을 이루고 말겠다’며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것이다.

정율성은 성격도 밝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에게 금세 호감을 샀다. 김성숙은 정율성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말할 때마다 미소를 지었고, 두군혜도 역시 그가 켜는 바이올린 연주에 반했다. 박건웅이 모임이 있다며 자리를 먼저 뜨려 하자 정율성이 붙잡았다.

“매형,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육자배기 한 번 들어보랑께요.”

“처남, 너무 까불대지 말게. 내 머릿속에는 총과 탄약밖에 들어 있지 않으니까.”

그러자 김성숙이 반박했다.

“박 동지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이구만. 그러나 음악이 혁명하는 인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오.”

김성숙의 칭찬에 정율성이 신이 난 듯 이번에는 바이올린으로 <아리랑>을 연주했다. 그러자 박건웅은 할 말이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두군혜가 연신 ‘싸오쩡 최고!’라며 박수를 쳤다. 정율성은 김성숙 부부와 첫 만남부터 가까워져 그날 이후부터 아무 때나 찾아와서 김성숙의 골방에서 이삼일씩 자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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