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정찬주 장편소설 <금강산 붉은 승려>

“순간 두군혜가 엘레나로 보였다”<br>정찬주 장편 ‘금강산 붉은 승려’19

정찬주 | ibuljae@naver.com | 2013-05-07 (화) 09:54

금강산 붉은 승려 <19>


중산대학 인연


중산대학은 조선인 청년들에게 학비 전액면제와 기숙사를 제공했다. 파격적인 혜택이었다. 1926년도 조선인 입학생은 50여 명이나 되었다. 김성숙, 장지락도 북경에서 공부했던 자신의 전공과목을 계속 공부할 수 있었다. 광주로 온 조선의열단원들 중에는 황포군관학교로 간 사람도 있었고, 중산대학에 입학한 사람도 있었다. 의열단의 간부급이었던 강세우, 정유린(鄭有麟), 30대 중반의 나이로 이과에 입학한 평북 벽동 출신의 이영준(李英駿), 최원(崔圓), 서의준(徐義駿) 등이었다. 북경에서 밀양출신인 윤세주의 권유로 의열단원이 된 이활(李活; 이육사)은 1년 뒤 의과에 입학했다. 물론 의열단원은 아니지만 항일의 뜻을 두고 활동해 온 마준(馬駿, 김동주(金東洲), 김원식(金元植) 등의 입학생들도 있었다.

중산대학의 조선인 기숙사는 밤마다 삼삼오오 모여 토론하는 장소로 변했다. 주제는 대부분 항일투쟁의 방법론이었다. 강세우는 토론하기 전에 늘 항일투쟁의 소식을 전했다. 그날도 기숙사를 처음 방문한 조선인이 서너 명 있었으므로 작년에 결성된 <피압박민족연합회> 소식부터 전했다.

“작년 7월 9일에 저와 조선 항일투사 동지들이 중국, 월남, 인도 등의 혁명투사들과 만나 <피압박민족연합회>를 창립한 바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중국인민들이 살상당한 상해참변이 일어난 뒤라서 일제와 영국제국주의에 대한 중국인민들의 분노가 극도로 들끓었던 때였지요. 올해 1월 16일에는 국민당 제 2차 전국대표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때 여운형 동지께서는 조선대표로서 ‘중국국민혁명의 전세계적 사명’이라는 주제로 연설하셨습니다. 제국주의가 타도될 때 약소민족이 모두 해방될 것인바 약소민족은 전력을 다하여 중국의 혁명을 도와야 하고 중국혁명이 성공하면 약소민족도 모두 해방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인 사람들이 여운형의 연설 소식을 듣고는 박수를 쳤다. 강세우는 얘기를 잠시 멈추었다가 두 달 전 여월한인회 소식까지 마저 했다.

“지난 3월 1일 혜주회관에서 가졌던 감격스러웠던 소식도 전해 드리겠습니다. 여월한인회 36명 전원이 혜주회관에 모여서 독립선언을 낭독했습니다. 특히 요중개 지도자의 미망인 하향응 여사와 중산대학의 동자군(童子軍), 월남동지회 회원 13명 등 1백여 명이 참석하여 조선혁명과 중국혁명 그리고 세계혁명의 성공을 기원했습니다.”

혜주회관은 손문의 국민정부가 중앙사무국으로 사용했던 건물이었다. 또한 손문이 서거한 뒤 좌파 지도자 요중개와 군권을 장악한 우파 장개석이 권력투쟁을 벌였는데 요중개가 국민당 중앙집행회의에 참석하려고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5, 6명의 우파 저격수들에게 피살당했던 곳이기도 했다.

보름달이 뜨는 날은 주강 강변이나 72열사공원으로 나가 토론회를 갖기도 했다. 김성숙은 그런 날에는 꼭 차응준과 윤종묵을 불렀다. 두 사람은 금강산 유점사에서 북경으로 김성숙과 함께 온 승려였는데, 다시 김성숙을 따라서 광주까지 온 동지들이었다. 승복을 입은 승려이기 때문인지 황포군관학교나 중산대학에 입학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면서 윤종묵은 육조 혜능대사가 삭발 수계한 광효사에, 차응준은 육조 혜능대사가 단경을 설한 대감사에 머물고 있었다. 두 절 모두 광주시내 한복판에 있으므로 의열단원과 연락을 주고받기에 용이했다.

6월 하순 무렵이었다. 보름달빛이 쏟아지는 주강은 한 편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다. 고기잡이 밤배가 서너 척 떠 있고 강물은 금빛으로 넘실거렸다. 강변에는 어느 새 이십여 명도 넘게 중산대학과 황포군관학교에 적을 둔 조선인 청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장개석 교장의 부관 손두환과 황포군관학교 4기생인 김원봉, 박건웅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박건웅 옆에는 애인 정봉은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전남 광주 출신의 정봉은(鄭鳳恩)은 수피아여고에서 음악교사를 하다가 중국으로 건너와 항일운동을 하는 오빠들을 뒷바라지 하고 있었다. 큰오빠 정효룡(鄭孝龍)은 3.1운동 후 형기를 마치고 상해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을 하고 있었고, 둘째오빠 정충룡(鄭忠龍)은 운남강무학교를 졸업하고 국민혁명군 제 24군 중좌로 복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제들이 모두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셈이었는데, 몇 년 뒤 동생 정의은(鄭義恩)과 정율성(鄭律成)도 중국으로 건너와 항일운동을 하였으며 특히 정율성은 중국의 국가행사에 공식적으로 연주되는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여 전중국인민의 사랑을 받는 혁명음악가가 되었다.

차응준은 순서에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대금을 꺼내 <아리랑>을 연주하며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날 밤 모임은 김성숙과 김원봉, 장지락이 주도했다. 김성숙이 강변 둑 위로 올라가 먼저 보고 형식으로 얘기했다.

“용감하고 애국심이 어느 민족보다 투철한 우리 조선 항일투사들이 황포군관학교와 중산대학에서, 혹은 승려신분으로, 혹은 각자의 노선대로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러시아에서, 만주에서, 일본에서, 조선에서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기 위해 광주로 와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투쟁의 성과를 극대화할 때입니다. 모든 조선인들이 하나로 뭉치어 일제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이는 제 열망이기도 하고 광주의 모든 동지들 뜻이기도 합니다. 서서히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황포군관학교 생도가 중심이 되어 120명의 조선혁명군인회가 조직되었습니다. 조직이 더 커지면 조선군단이라는 전투부대를 만들어 일제와 투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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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주에 소재한 중산대. 중산대는 조선 항일투쟁의 중심지였다. 사진의 장면은 설립자 손문의 동상. 사진출처=중산대 홈페이지


바람이 강물의 온기를 훈훈하게 전했다. 하루 종일 햇볕을 받은 강물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변화무쌍한 기후 때문에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는 날이 많은데 넉넉한 보름달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빛에 드러난 조선인들의 표정은 한껏 여유로웠다. 전장에 나가는 사람처럼 비장한 얼굴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강에 뱃놀이를 나온 연인처럼 행복하고 편안한 얼굴들이었다. 이제 그들에게 항일투쟁은 일상이 돼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언제 영원히 헤어질지 모르므로 그들은 만날 때마다 마지막이듯 반갑고 유쾌하게 시간을 보냈다. 장난을 치거나 농담하며 매순간을 즐겼다. 김성숙의 얘기에도 전혀 선동적인 구석이 없었다. 조선독립이라는 달콤한 꿈에 젖어 얘기를 이어갔다.

“이제 우리에게 분파는 없어졌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조국해방일 뿐입니다. 김원봉 동지와 장지락 동지, 그리고 저 세 명은 손두환 동지를 회장으로 유월한인동지회를 먼저 창립한 뒤 광주에서 활동하는 각 노선의 대표 분들을 만나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광주의 모든 항일단체를 하나로 묶는 조선혁명청년연맹을 결성하게 됐습니다.”

김성숙이 타고난 정치력을 발휘하고 의열단 의백 김원봉과 장지락이 여러 분파들의 대표를 만나 협조를 구해서 얻어 낸 성과였다. 광주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의 숫자가 8백여 명 되는데, 연맹을 창립하기 전인데도 3백 명의 회원을 확보했던 것이다.

조선혁명청년연맹에서 김성숙과 김원봉은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김성숙이 지금 보고 형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도 중앙위원으로서 첫 발언인 셈이었다. 그런데 김성숙의 특장은 언변 말고도 탁월한 사회주의 이론과 논문이었다. 김성숙은 자신의 특장을 발휘하기 위해 조선혁명청년연맹의 기관지 <혁명운동>을 창간하고 자신은 주필을, 장지락은 부주필을 맡았다.

중산대학 학생들 중에서 김성숙과 장지락의 인기는 대단했다. <혁명운동>을 발간할 때마다 잡지를 구하려고 학생들이 연줄을 댔다. 뿐만 아니라 김성숙은 일어에 능통했으므로 특히 중국여학생들이 그에게 일어강습 모임을 만들자고 제의해 왔다. 김성숙은 여러 단체에서 밤낮으로 불려 다녔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지만 보름마다 한 번씩 중국여학생들을 상대로 일어를 강의하기로 했다.

김성숙과 같은 학년의 중국인 여대생들은 모두 7명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미모가 뛰어난 여대생은 광동 불산 출신의 멋쟁이 진철군(陳鐵軍)이었다. 그리고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눈이 크고 해맑은 현모양처형의 두군혜(杜君慧)도 남학생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진철군은 조선에서 온 김성숙에게 별로 마음을 주지 않았지만 두군혜는 달랐다. 두군혜는 김성숙의 일어실력과 상대를 설득하는 언변에 반했다. 두군혜는 혹시나 아리따운 진철군이 김성숙을 사모하게 된다면 어쩌나 하고 가슴을 졸였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철군이 공산당원이자 광동 개평 출신인 주문옹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김성숙은 여대생들에게 일어만 가르치지 않았다. 잡지 <혁명운동>을 나누어주며 사회주의 사상과 피압박민족의 해방운동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특히 조선이 일제에 의해 침략 받고 있다는 사실과 자신도 3.1독립운동 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두군혜는 동정심이 많았으므로 몰래 눈물을 글썽였다. 마음속으로 조선에서 온 청년들을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두군혜는 일어강습이 끝났는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김성숙을 중산대학 강의실 문밖에서 기다렸다. 김성숙도 눈치를 챘다. 문밖에 그림자가 어른거렸고 일어강습 때 두군혜가 자꾸 야릇한 눈길을 보내왔던 것이다.

그러나 김성숙은 모르는 체하고 지나쳤다. 그러자 두군혜가 측백나무 숲 뒤에서 달려오더니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성숙씨.”

“무슨 일로 기다리고 있었소.”

“일어가 어려워요. 모르는 게 많아서요.”

“강습 시간에 물어도 되지 않습니까?”

“친구들에게 창피해서요.”

“일어가 서툴기는 다 마찬가지인데.”

“성숙씨, 일어를 잘하는 비결 좀 가르쳐줘요.”

두군혜가 유난히 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가르쳐주지 않으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김성숙은 난감했다.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문장과 단어를 많이 외워야지요.”

“그걸 모르나요.”

김성숙은 두군혜를 다독거렸다.

“두군혜씨가 현재 가장 잘하는 편이지요. 너무 성급하게 할 필요는 없어요. 어학은 지름길이 없어요. 그냥 꾸준히 쉬지 않고 복습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지요.”

그러나 두군혜가 요구하는 것은 정작 다른 데 있었다. 일어공부를 핑계로 김성숙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자주 갖고 싶어 했다.

“제 마음을 몰라주는군요.”

두군혜가 갑자기 교문 쪽으로 뛰어가 버렸다. 김성숙은 어리둥절한 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김성숙은 두군혜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에야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는 김성숙 자신도 두군혜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었지만 수업 분위기를 고려해서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김성숙은 자신이 두군혜보다 용감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른 여대생들 몰래 두군혜를 만나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 두군혜와 사귀려면 일어강습을 중지하거나 약속한 강습기간이 끝날 때까지 미룰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한 학기 동안 한 달에 두 번씩 일어강습을 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난 뒤 김성숙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진철군이 먼저 일어강습에 나오지 않았고 다른 여대생들도 하나 둘 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마지막까지 남은 여대생은 두군혜 한 사람뿐이었다. 김성숙은 마지막 강습시간까지 남은 두군혜에게 비로소 일어를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 소설을 백번만 읽으세요. 그러면 일어를 정복할 수 있으니까.”

김성숙이 두군혜에게 선물한 소설은 일어판 뚜르게네프의 장편소설 <전야(前夜)>였다. 김성숙은 어학이란 복습과 암기만이 지름길이라고 믿었지만 더불어 또 다른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김성숙은 두군혜가 <전야>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주인공 엘리나의 삶에 공감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귀족의 딸 엘레나는 불가리아에서 조국해방 운동을 하던 남편 인사로프가 러시아로 귀국하던 중에 병으로 죽자 남편의 해방운동을 계승하려고 불가리아에 남았던 것이다.

“약속할게요. 백번을 읽고 말겠어요.”

김성숙은 두군혜의 호수같이 큰 눈과 마주치자마자 그녀가 머잖아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두군혜가 인사로프의 마음속으로 들어간 사랑스러운 엘레나처럼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두군혜의 운명이 이상주의자 베르세네프와 조각가 슈빈의 구애를 뿌리치고 인사로프의 해방운동을 계승하려는 엘레나의 운명과 흡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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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안담 2013-05-07 12: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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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히 아는 이육사의 이름을 보니 역설적으로 그가 남긴 문학이 아니었다면
그도 이 글을 통해 처음 접하는 낯선 항일투사들 중 한 명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장지락(김산)이나 중국인민해방군가의 작곡자 정율성 같은
분들이 아니어도 먼 타국에서 그 시대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삶을 불살랐던
많은 이들의 행적을 기려볼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힘드신 작업에 작은 성원을 보탭니다.
보산 2013-05-07 16: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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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열단원...황포군관학교...중산대학교...일제 폭압하에서도 먼저 지식을 쌓고 동지들과 결의를 강화하며 체계적인 항일투쟁의 준비를 하는 모습들에서 숨길 수 없는 민족의 기운이 느껴진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이성보다는 불같은 감정이 우선되어 행동이 앞 설만도 한데 민족의 선각자들은 긴 안목으로 스스로를 준비하는 차원 높은 삶을 살아간다. 어릴적부터 인문학적 교육과 예가 몸에 체화되서일까?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이라서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지혜일까? 움직이는 모습들 하나하나에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등장하는 모든이들은 자신보다는 민족의 해방이라는 목표로 향하는 움직임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독자로서 배움이 크고 삶의 또다른 모습을 배우게 된다. 無染선생님 감사합니다.((합장))
깨돌이 2013-05-07 18: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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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적은 조국 해방일 뿐입니다." 역사적인 몇 가지 사실을 근거로 묘사된 열사들의 심리와 주변 환경이 너무 멋집니다. 엘레나처럼 느껴지는 두군혜의 활동이 기대됩니다.
불적운 2013-05-07 19: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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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부롹실한 긴장감 감도는 각박한 상황에서 싹트는 김성숙과 두군혜의 사랑의 감정이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아일랜드 2013-05-07 2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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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파를 초월한 항일투쟁의 근대사,
선각자들이 염원한 조국해방,
두 군혜의 등장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다음 연재 기대하면서..........
두군혜 2013-05-08 08: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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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군혜, 자료를 찾아보니 중국 국민들에게 존경 받는 인물이군요.
한국의 유관순 누나처럼, 중국 여성항일운동가.
훌륭한 분이 내조를 잘해 오늘날 김성숙 선생 같은 분이 계시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진달래 2013-05-08 23: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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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배신했어요.
어제까지도 좋아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변심했어요. 좀 너무 하죠?
그래도 저는 그 사람을 좋아해요^^
행헌 2013-05-10 09: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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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 출신의 정봉은(鄭鳳恩)은 수피아여고에서 음악교사를 하다가 중국으로 건너와 항일운동을 하는 오빠들을 뒷바라지 하고 있었다.
  역사를 새롭게 배웁니다. 광주의 명문여고 수피아의 이름이 여기에도 오르는군요.
보리향기 2013-05-10 15: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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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응준 스님은 불교정화 전까지 영천 은해사 주지로 계시다가 정화 후에는 은해사 말사인 죽림사에 여생을 보내셨지요. 1964년도엔가 돌아가셨을 거에요. 그 분이 대금을 잘 연주하셨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네요. 죽림사 입구 산자락에서 행한 다비식이 생각납니다. 테가 둥근 안경을 항상 쓰고 계셨는데, 키가 자그마한 분이 매우 당찬 모습이었어요.
그 분의 막내 아들이 저의 친구라서...
동천 2013-05-10 15:5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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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 강세우, 정유린, 이영준, 최원, 서의준 윤세주, 이육사, 마준, 김동주, 김원식 김원봉, 장지락, 손두환 손두환, 박건웅,정봉은,정효룡, 정충룡,정의은,정율성선생님등  낯설고 물설은 머나먼 타국에서 조국광복을 위하여 임름없이 빛도없이 사라져 가신 고맙고 또 고마운 분들.....
은행나무꽃 2013-05-12 05: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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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본명 정부은. 화순 능주초등학교 교정에 그의 흉상이 건립돼 있다.
중국인민해방군가 작곡..중국 인민들의 사랑 많이 받았겠네요.
무진 2013-05-12 20: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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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탄 그리움에
피어나는 향수
때론 숨기도 살짝 보이기도

이제나 저제나 아른거리며
하늘빛 느낌으로 다가선 그리운 님!
반월의 공허를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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