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때르릉,’ ‘때르릉’ 그토록 기다렸던 전화벨이 울린다.

모든 수행자들이 숙소로 돌아간 시간, 어둠이 내린 사무실에 홀로 앉아 전화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미얀마에 들어와 한국의 소식은 아마도 한 달이 넘은 것 같다. 긴장과 설레임에 조심스레 수화기를 들어본다.

한국에 가는 인편에 편지를 보내고, 편지 안에 날짜와 시간을 적어 어렵게 연결된 통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 처음 물으신 건 비구계를 받고 수행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답변에 다음과 같이 말을 이으셨다.

비구계를 받았다는 대답 이후 아버지께서는 줄곧 존댓말을 하셨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대답 이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의 통화에 대한 반가움 보단 아버지로부터 듣는 존댓말이 당혹스럽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수화기는 어머님께 전해졌고 어머니 역시 모든 것을 존댓말로 물으셨다. 그렇게 하고 싶던 말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스님, 한국은 잊고 정진하세요.’

사무실에서 방사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계율을 지키며 수행에 전념해야하는 출가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셨다. 수행처를 떠나 의지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바로 이 곳 마하시 명상센터가 지금 이 순간 내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불교공부를한다면 꼭 수행과 함께해야 하며, 계율을 지키는 삶을 살아봐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나에게 미리 경험하신 마하시 명상센터(Mahasi Sasana Yeiktha Meditation Centre)를 추천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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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위치한 마하시 명상센터는 오늘날 위빠사나 수행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세계적인 수행처이다. 1997년 처음 방문한 이후 지금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수행자들이 찾는 상좌부 불교수행의 메카이다.

마하시 명상센터는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 1904～1982)’를 초대법사로 모시고‘붓다 사사나 눅가하 협회(BSNO)’와 정부의 지원에 의해 1949년 설립되었다.

2만 5천여 평의 대지 위에 수행처, 식당, 숙소, 법당 그리고 기념관등, 100여 채의 다양한 건물이 있어, 한 번에 3천여 명의 수행자들이 머무를 수 있다고 한다.

지난 4월에 방문했을 때는 설날의 연휴를 명상과 함께 보내기위한 수행자들이 대거 입실하여 4,000여명의 수행자들로 센터가 가득했다.

마하시 명상센터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그 중에 잊지 못할 추억중의 하나가 아침공양 가는 길이다. 아침 5시가 되면 좌선을 마치고 아침식사를 위해 공양간까지 경행을 한다.

오른발이 바닥에 닿으면 오른발이라고 알아차리고, 왼발이 바닥에 닿으면 왼발이라고 알아차리며 나아간다. ‘오른발’, ‘왼발’이라 명칭을 붙여가며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을 가로등에 의지하여 조심스레 걸어간다.

그런데 그 길을 걸을 때 마다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걸어가면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이 발길을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스쳐 지나가면 잠시 후에 다시 걷기 시작했다.

멀리 있는 사람이든 가까이 있는 사람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반대편에서 오는 재가자들은 모두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상한 것은 아침공양을 가는 길에만 멈춘다는 것이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염려에 스님께 여쭈었다.

‘스님, 제가 아침에 걸어가면 사람들이 멈추어 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내일 아침에는 네 그림자를 살펴 보거라.’

그랬다. 재가수행자들은 내 그림자를 밟지 않기 위해 내 그림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비구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비구의 그림자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상가(僧伽)에 대한 귀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삼보(三寶)에 대한 귀의는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시작되는 수행의 첫걸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하시 명상센터의 수행은 좌선시간 뿐만 아니라 모든 일과에도 접목되어 있었다.

정준영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