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기자
urubella@naver.com 2013-08-12 (월) 18:4920년 전인 1994년, 조계종은 종권을 독점하고 종권에 부화뇌동한 무리들의 동조로 3선까지 강행한 총무원장을 혁명으로 몰아내고 종단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한 이른바 ‘종단 개혁 불사’를 이뤄냈다. 그 후로 꼭 20년이 지난 현재 조계종의 모습은 어떠한가.
극소수 중앙종회에서 총무원장을 선출하던 기존의 제도를 더 많은 종도들로 하여금 총무원장을 선출하고자 하는 제도인 ‘선거인단 선거제’로 바꾸었으나, 지금은 그조차 유명무실화되고 말았다. 마땅히 더 많은 종도들에게 선거권을 주는 방향으로 종단 민주화가 진행되어야 마땅했지만, 선거인단 수는 20년 동안 단 한 명도 늘어나지 않았고, 아예 선거자체를 종단의 기득권 세력들의 ‘화합’이라는 미명아래 벌어지는 ‘야합’으로 무력화하고 있는 중이다.
종단의 기득권자들이 불교광장이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사실상 선거를 하지 않겠다며 거침없이 활개하고 있다. ‘종단 민주화’라는 94년 종단개혁의 정신을 반영한 선거제도를 선거에서 필연적으로 불거질 수밖에 없는 파열음을 구실삼아 사장시키려하고 있다. 백양사 도박사건이 났을 때 참회의 뜻으로 계파해체를 한 여운이 채 사라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종단권력을 입맛대로 재창출하겠다며 다시금 계파를 부활시킨 것은 몰염치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선거인 수를 321명에서 수천 명으로 늘리거나, 나아가 재가불자 대표들까지 포함시키려는 종단 민주화의 도도한 흐름을 외면하고, ‘화합’을 구실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지난 선거에서 보였던 다른 후보들의 출마 자체를 막았던 구태를 이번 선거를 앞두고 더욱 정교한 수법으로 되풀이하고 있다. 더 염려스러운 것은 종헌질서를 준수하고 종법수호에 앞장서야 할 종단의 최고 행정책임자가 선거 없이 추대로 가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불교광장 창립을 제안하며 내세웠다는 지적이 나왔다는 점이다.
극소수 종단의 정치승려들의 이 같은 반민주적이고 몰역사적인 행태를 방관하는 나머지 승가대중의 책임도 엄중하기는 매한가지다. 이들의 대책도 없는 외면과 무관심은 종단권력의 세습을 허용하고, 필연적으로 승단을 부패시켜 붕괴로 이르게 하는 자양분이 되고 말 것이다.
현재의 조계종 흐름은 어느 누구도 종단의 정치승들 연합체에 맞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되어 있다. 오직 도를 이루기 위해 부모형제들과의 이별도 불사한, 그러니까 걸릴 것이 없는 출가승단이 남의 일처럼 침묵하고 있는데, 누가 이런 해괴하고도 기막힌 상황에 대해 말을 건넬 것인가.
선거관리를 중립적으로 엄정하게 관리해야 할 조계종 총무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선거제도 자체를 무력화하고 있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침묵하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힐난할 수도 없는, 두려운 공포가 조계종단에 전반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제34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출범한 불교광장은 공공연하게 선거 없이 총무원장을 추대한다고 공언하면서 추대위원회를 꾸렸다. 이들은 지난 8월 5일 첫 전체회의를 갖고 9월 2일까지 매주 월요일 모두 5차례에 걸쳐 회의를 열어 후보 추대를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후보추대위원회에서 단일후보가 추대되면 이에 대해 불복하지 않는다는 각서도 작성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선거는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된다. 종헌종법에 규정된 선거를 자신들의 야합으로, 그것도 모자라 각서까지 쓰면서 하지 말자는 것이다.
후보 추대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기득권 세력의 총집결체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중앙종회의 옛 화엄·법화·무량·무차·보림회 등 5대 계파와 무소속, 선·교·율, 비구니 등 모두 57명으로 추대위원회가 꾸려졌다. 여기에는 종단의 중앙종무기관에서 교역직 종무원으로 일하는 이들까지 포함되어 있다. 한 마디로 현재의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판은 무법천지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추대위원회는 종도로부터 신망 받고 각 계층과 교구의 뜻을 대변할 수 있는 승려들을 위원으로 위촉했다고 밝히고 있다. 종도들로부터 신망을 받고 교구의 뜻을 대변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 그런 추상적이고 애매한 기준이 가능한 것인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들은 자신들이 추대할 총무원장 후보의 조건으로 △종단화합 △원력 △리더십 △수행 및 교육, 포교 △공심과 쇄신의지 등 5가지의 기준을 제시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후보라면, 굳이 공룡 같은 조직에 업혀서, 자신들이 종법으로 제정한 선거를 무력화시키지 않아도 당선이 확실할 텐데도 왜 이런 행위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불교광장은 자신들이 추천할 후보는 “수행이 구족하고 행해가 원만해 원융화합 종단을 이루고, 사부대중의 뜻을 두루 반영하며, 지역별 계층별 종도의 뜻을 반영하고, 중앙종단과 교구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할 후보”, “안정과 합리적 변화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종단 운영을 이뤄내고, 종무행정에 밝고 종단 경쟁력을 높이고, 불교대중화와 국제적 역량을 강화하며, 새로운 불교동력을 마련하고 추진할 후보”, “독선적 종권 운영 탈피, 개발적 리더십을 갖추고 친소관계를 배제한 공평무사한 인사제도 정착과 폭넓은 인재등용을 이뤄내고, 종단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과 활발한 사회참여를 통해 대국민 신뢰를 이끌어 낼 후보”, “종지종풍 선양, 수행풍토 확립, 포교원력 실현, 종단교육체계 혁신, 교권 확립, 도덕성과 청정성을 갖춘 후보”, “종단 자성과 쇄신결사를 계승 발전하고, 제도개선과 합리적 개혁을 이끌며,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배척하고 공심에 입각해 종단을 이끌어 갈 후보”로 정리했다.
이런 후보라면 왜 선거를 마다하는가. 이런 조건을 갖춘 후보인데, 무엇이 두려워 종헌종법에 규정된 선거를 거치지 않고 세력을 동원해 불법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총무원장을 입맛대로 만들려고 하는가.
총무원장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불교광장에서 맡아 할 일이 아니다. 후보에 대한 검증은 종도의 여론을 대변한 선거권자와 언론 등에서 담당해야 공정하고 마땅하다. 누구도 불교광장에 후보 검증권을 주지 않았다. 또한 불교광장이 조계종 총무원장 단일후보를 낼 권한은 어디에도 없다. 세력을 모아 다른 후보의 출마자체를 가로막는 행위는 심각한 불공정 행위이며, 월권이며, 불법에 해당된다.
불교광장 대변인 덕문 스님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매우 위험하다. “선거로 간다면 이 자리(불교광장 후보추대위를 지칭)는 의미가 없다”는 그의 발언은 ‘선거로 가지 않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공정선거를 공공연하게 방해하는 발언에 대해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할 총무원과 중앙선관위가 나서야할 사안으로 보인다. 선거로 가고 가지 않고는 불교광장의 권한이 아니다. 불교광장 대변인은 이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무슨 권한으로 종헌종법에 규정된 선거를 막겠다는 것인가.
거듭 강조한다. 불교광장은 선거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선거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거지는 불협화음이나 잡음이 선거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반민주적 행보를 정당화시키는 구실이 될 수는 없다. 불교광장은 20년 전 종도들이 어렵게 이뤄낸 종단 민주화 정신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행동을 중단하고, 오히려 선거인단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선거가 죽어도 싫다면 세력의 힘을 빌어 선거를 무력화시킬 것이 아니라, 중앙종회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선거제도를 폐지하고 차라리 천주교의 교황추대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울러 94년 종단개혁불사를 이루어냈던 주역들 또한 20년 전의 종단개혁 정신, 종단민주화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기억해주기 바란다. 당시의 총무원장은 왜 축출의 대상이어야 하고, 현재의 총무원장은 왜 재임을 해도 되는 대상인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불교광장의 무리한 행보는 결국 그들 내부에서 파열음을 낳고 있다. 현재의 총무원장도 차기 후보로 포함될 수 있을 지를 놓고 불교광장 내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현 총무원장이 재임을 할 개연성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다. 지난 해 도박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이미 여러 차례 차기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뜻을 밝힌 것으로 다수 불자들과 국민들은 이해하고 있다. 사실 사건의 파장으로 볼 때 당시에 퇴진해도 부족할 상황이었지만 책임을 지는 듯한 발언으로 자리를 보전한 것을 다수 불자와 국민들은 잊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다시 출마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이 솔솔 새어나오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불교의 미래가 암담하게 다가온다. 현 총무원장의 재임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한국 불교사의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크게보기지금이라도 현 총무원장은 불출마를 선언하고, 두 달 남은 차기 총무원장 선거를 중립적으로 공정하게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야 마땅하다. 현 총무원장이 종단정치의 한 가운데에 서서 흐름을 좌지우지하려는 태도는 아름답지도 바람직하지도 못하다.
선거에 어떤 형태로든 부담과 영향을 주는 불교광장과 같은 단체는 해체해야 마땅하다. 보다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종단을 위해 큰 일꾼이 되겠다는 원력을 가진 분들이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현 총무원장이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 불출마 선언은 빠를수록 좋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인의 안락이나 명예, 자존심, 공명심은 한낱 부질없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불교의 장자종단이 그동안의 침체와 수렁, 그리고 조롱과 비하의 대상에서 벗어나 정법종단, 신뢰받는 종단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현 총무원장이 마음을 비움으로써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그것만이 재임기간 동안 종도들에게 준 짐, 한국불교 전체에 준 짐을 조금이라도 더는 최선의 길임을 진심으로 충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