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총무원장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아직 멀었는데도, 조계종에는 벌써 총무원장 선거의 기운이 농후하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본사주지 선거가 과열되는 것도 총무원장 선거를 염두에 기득권자들의 표 선점 경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교계의 중론이다.

아마도 총무원장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조계종은 점점 더 아수라장이 되어갈 것이다. 계파를 나눠 권력과 이해를 위해 여념이 없는 그들을 말릴 방도가 없겠지만, 세상을 혼탁하게 하고 불교의 위상과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도 없으니 난감하기 그지없다.

지난 선거에서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몸이 되었던 4개 계파들이 다음 선거에서도 한 통속으로 이권을 나누며 차기 종권을 창출할지, 아니면 서로 갈려 경쟁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문제는 총무원장 선거가 1년 반도 더 남은 이 시점에서 벌써 총무원장 선거를 염두에 둔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앞으로 벌어질 갈등과 불법, 탈법, 볼썽사나운 행태의 한계가 어느 정도일지 벌써부터 한 숨이 터져 나온다.

게다가 종단의 집행부가 종법적용에 있어 친소를 기준으로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 종법질서 문란에 따른 혼란상도 충분히 예상되고 있다. 종법적용의 공정성이 무너지면 그 조직은 필연코 무너지게 되어 있다. 불공정한 잣대로 인한 불복과 송사, 폭로와 공격, 비난 등이 잇따를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크게보기
조계종의 계파들은 중앙종회를 주무대로 활동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렇게 반복되는, 아니 갈수록 더 심각해지는 아수라장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인가. 부처님도 못 말린 승단의 대립과 갈등, 반목과 추한 다툼을 멈추게 할 뾰족한 방안은 없겠지만, 계파를 나눠 다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해집단에서는 비일비재한 것이니, 이미 이해집단화 되어버린 승단을 위해 그래도 한 가지 조언은 해둬야 할 것 같다. 이 조언을 듣고 부끄러워하고 참회를 할 양심과 안목을 가진 이가 있을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지만, 어쩌랴, 이런 말도 하지 않으면 더 큰 업을 짓는 것일지니….

공자가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이르기를 “군자는 주(周)하되 비(比)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비(比)하되 주(周)하지 못하다[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라고 했다. 이는 “군자는 두루 화친하되 편당적이지 아니하나, 소인은 편당적이어서 두루 화친하지 못 한다”는 뜻이다. 공자는 이렇게 군자와 소인의 차이를 말하면서, 비(比)한 소인이 줄고 주(周)한 군자가 많은 세상이어야만 조용하고 안온한 세상이 온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주(周)와 비(比)는 어떤 뜻인가. 이에 대한 주자(朱子)의 해석에 따르면, 주(周)는 보편(普遍)을, 비(比)는 편당(偏黨)을 의미한다. 즉, 주(周)는 널리 개인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여러 사람들과 화친하는 것이며, 비(比)는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편당을 이루는 것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실학의 태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도 이 같은 주자의 해석에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다산은 주자에게서 더 나아가 보다 치밀하고 명료한 해석을 내렸다. 다산은 그의 논어주석서인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에서 “주(周)는 밀접함이며 비(比)는 함께함이니, 모두 친근함의 명칭이다. 그러나 밀접함은 정신적인 측면으로 말하고, 함께함이란 세력으로 말함이다. 군자는 덕을 함께하는 사람을 벗하니 언제나 마음과 정신으로 친밀하게 지내지 세력으로 묶어 지내지 않으며, 소인은 세리(勢利)로 교제하니 늘 힘을 합하여 파당만 만들 뿐 정신과 의리로 친분을 다하지 않는다. 이게 둘의 차이이다”라고 풀었다.

요약하면 주(周)는 공(公)이요 비(比)는 사(私)여서 군자는 공익을 위해서만 마음과 정신으로 결속하므로 참다운 친밀감을 유지하지만, 소인들은 사리(私利)만 앞세워 힘의 과시를 위해 외형적인 파당을 만드니 정신적인 친밀함은 없다는 것이다. 다산의 이 같은 해석은 주자를 대학자로 인정했으되, 결코 휘둘리지 않았던 다산의 독창적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려나, 불조의 혜명을 밝혀 전법도생하겠다며 온갖 인연사를 버리고 출가한 이들에게 이런 공자의 가르침을 인용해 비판해야 하는 한국불교의 처지가 서글프지만, 어느덧 승단이 계파로 나뉘어 파당만 보이고 성스러운 승가공동체는 시나브로 잘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백번을 양보해서 각 계파가 종단 발전을 위한 종책 개발을 위해 만들어졌고, 스스로 존재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진행되는 선거부터 투명하고 여법하게 치러야 할 것이다. 소위 돈 봉투 사건으로 국민적 망신을 사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종단의 최고 지도자가 본사주지 후보를 만나러 다니거나, 출마자들이 거마비라는 이름으로 제공하는 부정한 돈거래 따위는 즉각 중지되어야 하고 책임을 물려야 한다.

주는 쪽도 문제이지만 받는 쪽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돈 봉투 거래를 두고 빈부격차가 심한 승단 현실에서 부의 재분배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며 농으로라도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인식수준이 그 정도라면 그야말로 남은 것은 패망의 길 뿐이다.

불교를 위하고, 종단을 위한다면서 ‘닭 벼슬’에 도전하는 분들은 부디 군자들이 가져야할 태도인 ‘주이불비(周而不比)’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불교가 세속화되다보니 불가(佛家) 안의 병폐를 뛰어난 세속적 논리를 가진 유가(儒家)의 가르침을 들어 지적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