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부족했다고 사과하더니 ‘오해 말라’ 말 바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국민들에게 가장 익숙해진 단어로는 단연 소통(疏通)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광우병소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 이른바 ‘명박산성’ 뒤에 숨어 있던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며,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소통이란 ‘막히지 않고 잘 통하는 것’을 말한다.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 곧 소통이다. 이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를 했을 때만해도 소통부재의 책임 소재는 대통령에 있었다. 대통령 스스로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대통령은 당시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으로 거듭나겠다며 소통을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국민과 대통령 간의 소통이 원활해졌다고 보는 이는 거의 없는 듯하다. 그 대신 부지불식간 소통부재의 책임이 슬그머니 국민에게로 옮겨졌다. 그 근거로 대통령의 입에서 ‘오해(誤解)’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오해란 무엇인가. 어떤 의견이나 주장을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뜻을 잘못 아는 것을 말한다. 즉 대통령의 오해 발언은 국민과의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국민이 대통령의 말을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잘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오해라는 말이 처음으로 뉴스의 키워드로 등장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해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 불교계를 달래기 위해 지난 7월 22일 한승수 국무총리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방문해 “오해를 푸시고…”라는 말을 한 때부터로 기억된다. 사실 그 때만 해도 이명박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부재의 책임을 국민에게 돌린다고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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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떼면 “오해로 과민 반응”…국민을 청맹과니 취급

그러나 그 후부터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명박 정권 이후 종교편향이 노골화되고 있는데 대한 책임추궁과 근본적인 대책수립을 요구하는 불교계를 향해 대통령과 정부가 일관되게 내놓은 반응은 ‘오해’였다. 대통령도, 총리도, 장관도, 경찰청장도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타령의 후렴처럼 ‘오해’를 입에 올렸다. 대통령이나 정부는 아무런 잘못을 저지른 것이 없는데 불교계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못처럼 보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발적이거나 관행상 있던 일인데도 유독 불교계가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식이었다.

결과적으로 불교계는, 또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 종교적 편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의 대부분은 대통령과 정부가 하는 말이나 정책을 오해, 즉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청맹과니가 되고 만 셈이다. 국민과의 소통부재 책임의 소재가 대통령에서 국민에게로 모르는 사이에 옮겨진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타령의 후렴처럼 반복하던 ‘오해’는 급기야 이명박 정부와 지나치게 소통이 잘 되는 개신교계로까지 확대됐다. 이른바 장경동, 신일수류의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저질 망언은 차치하더라도, 어제(12일)는 개신교계의 이름난 목사 33명이 ‘불교계에 드리는 글’이라는 성명을 통해 “불교계 주장에는 오해로 인한 부분이 있어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서 또 한 번 불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목사까지 “오해 거둬들이지 않으면 종교자유 해칠 것”

‘종교간 화평을 염원하는 기독교 목회자’라는 이름을 내건 개신교 시민단체인 '기독교사회책임'을 통해 발표된 이 성명은 정부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오해’ 타령을 반복하고 있다. 종교간 화평을 염원한다면서 화평의 상대로 여기는 불교계를 오해나 일삼는 청맹과니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불교계가 오해를 거둬들이지 않는다면, 종교의 자유를 해칠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분노를 일으킬 가치조차 없는 뚱딴지같은 말이다. 이 땅에서 자신의 종교를 지나치게 내세워 종교간 갈등을 야기한 종교집단이 개신교 말고 또 있는가. 개신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겪어야 하는 비기독자의 불편함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일이 있는가.

이런 그들이 하는 말을 더 들어보자.

“기독교 내에도 많은 의견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보다 인내와 절제의 마음을 가지고 종교간 화평을 도모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불교와 기독교가 만나 지속적으로 서로의 생각을 흉금 없이 나눔으로써 종교간 화평의 길을 도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말이 얼핏 협박처럼 들리는 것은 기자가 지나치게 예민한 탓인가.

불교계 위법망구 회자 심각한 조짐으로 받아들여야

대통령과 정부, 기독교계까지 나서 불교계를 ‘말길을 못 알아듣는 집단’이라고 몰아붙이는 시절을 살고 있다. 불교계가 계속해서 ‘오해’를 풀지 않고 장로정부를 '못살게 굴면' 그들(기독교계)도 더 이상 인내와 절제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겁박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새삼 이명박 정부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는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의 오체투지 삼보일배가 시작 되던 날 이원규 시인이 절규처럼 낭독한 시 가운데 “길을 물었을 뿐인데, 뺨을 때렸다”는 시 구절이 떠오른다.

불자들은 현 사태를 1700년 만에 불조의 혜명이 끊길 수도 있는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언급한 바 있는 ‘위법망구’를 거론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어가고 있는 것도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법(진리)를 위해 몸을 희생하는 정신을 일컫는 위법망구가 불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것은 분명히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또 그를 뒷받침하는 일부 기독교계가 반성이나 사과를 외면하고 국민을, 또 불교계를 계속해서 청맹과니 취급하거나 겁박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 나라에서 피를 부르는 끔찍한 종교전쟁이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