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바람이 되어주십시오. 풍경소리가 멈추면 어린이 불교도 멈추게 됩니다.”

15일 밤 붓다콘서트의 열기 속에 시간을 내어 인사말을 한 ‘좋은벗 풍경소리(이하 풍경소리)’ 총재 지현 스님(봉화 청량사 주지)의 잔잔한 목청에 콘서트 장 객석의 불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가슴 속에 뜨거운 무엇이 흐르는 것을 느끼는 듯 했다. 입으로 환호하고 눈으로 감격과 즐거움의 빛을 쏟아냈지만, 지현 스님의 말씀이 몸 깊숙한 곳으로 뜨거운 것이 되어 흘러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행의 길, 형극의 길, 지극한 불심이 아니라면 누구도 가지 못했을 그 길을 묵묵히 15년 동안 걸어온 풍경소리와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이종만 음악감독의 속사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스님이기에 스님의 목청에는 촉촉하게 물기가 저며 있었다.

스님의 간곡한, 그리고 간절한 목소리, “풍경소리가 멈추지 않도록 여러분들의 후원을 부탁합니다”는 고막을 뒤흔드는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소리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울림과 함께 반년 전쯤인가 이 감독과 함께 했던 시간이 영상처럼 떠올랐다.

아마도 지난해 말쯤이었을 것이다.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이종만 풍경소리 음악감독과 곡차 한 잔을 기울였던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해 모든 대화가 스스럼없이 이어졌다. 대화를 나누던 중 이 감독이 무거운 목소리로 툭 한마디를 내던졌다.

“이 대표, 나 이제 풍경소리를 떠날까 해. 이렇게 연명하는 것보다 차라리 찬란한 산화가 낫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15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늘 해왔던 고민이라는 부연과 함께 이 감독은 훌쩍훌쩍 잔을 비우곤 했다. 가시밭길을 외로이 걷는 그에게, 무슨 말이냐고, 그러지 말고 생각을 더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따위의 상투적 말조차 건넬 수 없을 만큼 이 감독은 지쳐 있었다.

그 자리가 있은 직후 부처님의 뜻인지, 하늘의 도움인지는 몰라도 풍경소리는 대원상 특별상을 받았다. 또 이 감독에겐 든든한 등불 같은 존재인 반영규 선생도 대원상 재가부문 대상을 받고 상금의 상당부분을 풍경소리에 내놓았다. 지난 연말에 있었던 이 같은 일련의 일들은 그가 그토록 고심했던 ‘찬란한 산화’를 일단 거둬들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당시 그의 표정이 일순 환하게 밝아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한 달 전쯤 이종만 감독이 ‘붓다콘서트’를 하기로 했다며 연락을 해왔다. 일이천만원이 훨씬 넘는 콘서트 비용을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그가 또 콘서트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바탕 잔치가 끝난 뒤 텅 빈 극장 안을 바라보는 씁쓸한 기억을 다시 한 번 경험해보겠다는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도무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되겠지요, 뭐. 부처님 일인데….”

그리고 지난 4월 15일 밤, 처음으로 이종만 감독이 지휘하는 콘서트를 보았다. 그토록 긴 세월동안 찬불가를 만들고, 연주를 해왔던 이종만 감독의 음악잔치에 처음 참석하는 나 자신이 바로 그를 찬란한 산화로 밀어냈던 원인제공자 중의 하나였음을 참회하며 나는 무대에 서서 열정적인 지휘를 하는 그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았다.

붓다콘서트! 찬불가로도 얼마든지 신명 나는 연주회를 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인 그날의 200석 남짓한 객석은 안타깝게도 드문드문 자리가 비어 있었다. 대통령이 나오는 무슨무슨 기도법회 자리에는,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도 그 시간이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가리지 않고 빼곡하게 밀려드는 그 낯익은 스님들의 모습은, 또 지도자급 재가자의 모습은 얼마 보이지 않았다. .

아무려나. 그날 이종만 감독은 열정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결코 갈 데가 없어 절집에서 어른거리는 비루한 존재가 아님을, 그보다 젊은 스님들로부터 ‘어이’라는 하대의 호칭으로 불리지 않아도 될 소중한 보석 같은 존재임을, 그는 뛰어난 지휘 실력을 통해 입증해보였다.

다음날 아침 취재기자로부터 ‘붓다 콘서트’ 기사의 초고가 올라왔다. 기사의 제목이 ‘MBC에 강마에가 있다면, 불교계에는 이마에가 있다’였다. 얼핏 재밌는 제목이지만 사실은 불교 안의 보석을 알아보라는 절규에 다름 아니었다. 나는 지체 없이 머릿기사에 올릴 것을 지시했다.

올 부처님오신날 봉축 붓다 콘서트는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며칠 후 이종만 감독과 점심을 함께 했다. 붓다 콘서트에 대해, 또 자신에 대해 <미디어붓다>가 ‘과분한’ 칭찬을 해준 데 대한 일종의 ‘항의성 고마움’을 표시하는 자리였다.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적지 않은 액수의 빚을 또다시 짊어졌을 그의 어깨는, 애써 짓는 밝은 표정과는 달리 쳐져 보였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서 풍경소리 사무실 쪽을 향해 인사동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이종만 감독의 발걸음을 나는 한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소중한 사람에게 우리 불교계가 ‘찬란한 산화’가 아닌 ‘찬란한 영화(榮華)’의 공간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 걸까.”

화려한 연등이 걸린 종로 길을 걸어가며 그날 나는 평소 암송하는 관세음보살 정근대신에 ‘찬란한 영화’를 중얼중얼 되 뇌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