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에서 벌어진 철거민 참사 사태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아직도 미개한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절감한다.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사람의 생명을 앗은 공권력도 공권력이지만,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러도 되는 양 착각하는 권력자들의 행태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가를 실감하게 한다.

어쩌면 그렇게 무지할 수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 감정에 휘둘려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나라라는 평가를 받던 우리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답답하고 부끄럽다. 누가 뭐래도 우리의 지금 모습은 가장 미개하고, 인권과 생명을 헌신짝처럼 여기는 부끄러운 나라다.

지혜롭지 못한 선택이, 또 주권행사의 포기라는 젊은층의 무책임한 행동이 수십 년간 피눈물로 쌓아올린 민주주의를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 현실을 우리국민은 목도하고 있다. 특권층들을 위해 다수가 파멸로 내몰리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냉철한 이성보다는 어설픈 감정에 휘둘려 내린 선택의 과보를 체험 중이다.

지난해 촛불시위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정부의 책임 떠넘기는 이제 미네르바라는 인터넷 논객의 글 때문에 경제가 망가졌다는 해괴한 논리로 진화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우리나라 경제가 이름도 성도 모르는 인터넷 글쟁이가 남긴 글 몇 편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요즘은 용산 인명살상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철거민들을 테러범으로 몰아가는 음험한 조짐이 일부 정치세력과 빗나간 언론들에 의해 고개를 들고 있기도 하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같은 날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인 버락 후세인 오바바의 취임식을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와 활기찬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변화를 채택하는 성숙한 광경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미국 국민들의 지혜로운 선택으로 이뤄낸 희망의 찬가를 지켜보면서, 동시에 응징과 보복, 힘의 논리로 세계를 전장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어리석었던 전쟁광 조지 부시의 옹색한 퇴장을 지켜보면서, 급격한 퇴행의 길을 걷고 대한민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잘못된 현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로지 그 해답은 국민이 지혜로워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혜에 대한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지혜로워질 수 없다. 보다 구체적인 지혜에 대한 분석과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지혜에 대해서는 불교만큼 잘 설명해놓은 가르침은 없을 것이다. 완성된 지혜를 일컫는 반야(般若)는 불교를 상징하는 몇 개의 용어 중의 하나다. 부처님을 지혜로운 이로 칭하는 것도 불교에서 지혜의 위치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유식(唯識)의 핵심적 경전인 <해심밀경(解深密經)>에는 지혜에 대해 눈여겨 볼만한 내용이 있다. 경의 이름대로 심밀한 가르침을 해설한 것이니 난해하지만, <해심밀경>에 초입부에는 박가밤, 즉 세존에 대한 21가지 공덕성에 관한 내용이 있다. 여래의 21가지 공덕성을 총덕(總德)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21가지 공덕성을 다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 중 제일 먼저 나오는 두 가지 장애(二障)에서 완전히 벗어난 공덕성에 대해 살펴보자.

두 가지 장애란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말한다. 번뇌장이란 몸과 마음을 어지럽혀 열반에 드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를 말한다. 소지장은 마땅히 알아야할 법을 알지 못해 해탈(보리)을 방해하는 장애를 일컫는다. 내친 김에 번뇌장과 소지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언급하기로 한다.

먼저 번뇌장은 자기 자신에 대해 미혹한 것을 말한다. 감정에 좌지우지되어 감정적 행동이 지혜를 덮어 나타나는 절제되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소지장은 세계에 대해 미혹한 것을 말한다. 무지(몰이성)에 속박되어 지혜가 덮인 관계로 무식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해심밀경>이 유식학파를 이끈 근본경전이라는 것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번뇌장 소지장’은 유가행파와 법상종 등 유식 계열에 의해 정리됐다.

유식학은 ‘우리들의 심리를 낱낱이 분석하여 선악이 야기되는 과정과 생사에 유전하는 원인’ 등 고통과 고뇌로 가득 찬 우리들의 인생은 우리 자신의 어떠한 마음과 생각에서 일어나며, 그것을 다스리는 데엔 어떠한 마음을 일으켜야만 하는 것일까에 대해서 상세히 밝힌 학문이다. 이와 같이 번뇌장 소지장을 주제로 한 연구는 불교사 전체를 다루어도 될 만큼 매우 넓고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위대한 가르침이 경전 속에만 남겨져 있거나 몇몇의 지혜노름으로만 활용되고 있는 점이다. 이런 가르침을 각 절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이나 지도자들이 모든 불자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풀어 가르쳤다면, 또 이 가르침을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하도록 적극적으로 권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답답한 지경이 과연 초래됐을까.

용산에서의 참사 악몽을 기억하면서, 또 이른바 ‘엠비악법’를 둘러싼 여야의 몸싸움을 보면서 유식의 번뇌장과 소지장을 생각했다. 우리 국민이 부처님의 총덕 중에 첫 번째인 이장에 대해 한 번이라도 깊게 생각을 해봤다면, 이장에 대해 조금의 이해라도 있었다면 오늘과 같은 화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부지불식간 미혹, 감정, 어리석음, 몰이성, 무지, 무식 등과 같은 용어들이 보다 잘 어울리는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국민 모두가 반성하고 성찰하는 것이 파멸의 구렁텅이로 달려가고 있는 대한민국호를 되살리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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