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라고 다 같은 소리가 아니다. 소리도 격에 따라 분류가 된다. 중국의 옛 성인들은 소리를 성(聲), 음(音), 악(樂) 세 가지로 나눴다고 한다.

먼저, 성(聲)은 소리는 소리이되 날 것(에 가까운)의 소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성(聲)자에는 귀 이자(耳)가 포함된 것처럼, 귀로 들리는 소리, 즉 새소리나 물소리, 바람소리와 같은 동물의 소리나 자연의 소리는 성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본능적인 소리, 동물적 소리에는 성(聲)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컨대 극한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아우성이나, 함성, 또는 남녀의 교접시에 나오는 신음소리를 교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예이다. 성은 좋게 말해서 본능의 소리, 자연의 소리, 원초적 소리를 일컫지만 날것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내는 소리에 적용될 때는 품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경우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음(音)은 본능의 소리 그대로가 아닌 인위적으로 조율되고 정리된 소리라고 할 수 있다. 音자는 본시 言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言자의 口에 一자가 가획(加劃)됨으로써 인위적으로 조정 또는 조율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원초적 본능의 소리에 사람의 솜씨가 가미되어 보다 조화롭고 격조를 갖춘 소리를 음이라고 보면 되겠다. 화음(和音), 범음(梵音), 고음(高音), 저음(低音) 등과 같이 날 것의 소리가 아니라 조절되고 정리된 소리를 표현할 때 음을 채택한다. 물론 음이라고 해도 그 질서가 무너지면 잡음이 되겠지만 말이다.

끝으로 악(樂)은 소리가 조화와 조율의 단계를 넘어 격조와 감흥을 고루 갖춘 풍류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을 때 주로 활용되는 경우다. 이는 주로 소리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과 함께 소리를 즐기는 주체의 주관적 경향이나 수준이 함유된 표현으로 보면 될 것이다.

물론 성과 음과 악이라는 세 가지의 구분이 모든 경우에 엄격히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성이 음의 경우에 사용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음이 성의 경우에 활용되는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소리의 구분이 본래적 기준은 숱한 혼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이다. 또한 성과 음과 악의 구분은 제각각 어느 것이 더 좋고 싫고 훌륭하고 저급하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오해를 해서는 곤란하다.

예컨대 바람이 바람소리를 내고, 물이 물소리를 내는 것이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람이 바람소리를 낼 때, 물이 물소리를 낼 때가 가장 아름답고 자연스럽다. 물이 바람소리를 낸다거나 바람이 물소릴 낸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가 아니겠는가.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사람이다. 사람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종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동물적 본능에 머물지 않고 교육과 훈련에 의해 품격을 갖춘 생명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내는 소리는 가급적이면 성보다는 음이고 악이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소리가 음과 악보다는 성에 가까운 경우가 자주 눈에 띄고 있다. 가수들의 노래 중에 거의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소리와 표정, 성적 이미지를 짙게 드러내는 동작이 난무한다. 춤과 노래 모두가 동물적 본능적 몸부림에 가까워지기 경쟁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것이 큰 인기를 얻고 그 연예인이 각광을 받으니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인식도 본능적으로, 원초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색기를 가득 머금은 눈초리로 의자에 앉아 ‘미쳤어’를 연호하며 벌거벗은 다리를 휘두르는 여자 가수의 몸짓이나 목소리는 매우 본능적이고 원초적 유혹에 가깝다. 음악이라고는 하지만 그 느낌은 성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 가수가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단다. 텔레비전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젊은이들의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도 온통 ‘미쳤어’ 타령이다.

그뿐인가. 패션쇼나 영화제 등에 등장하는 여배우의 의상은 어떻게 하면 성적 매력을 드러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의 사진이나 동영상에는 늘 ‘앗찔’, ‘화끈’이라는 수식어가 자랑처럼 붙어 있다. 먹는 음식도 다르지 않다. 언제부턴가 강장보양의 효과가 있다는 점을 거리낌 없이 자랑스럽게 선전한다. 강장보양, 즉 정력에 좋다는 것을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말하고, 이에 당당하게 반응하는 분위기는 원초적 본능으로의 회귀가 무치한 시대의 도래를 상징한다.

소리도, 춤도, 의상도, 음식도, 사람 간의 관계도 모두 원초적, 본능적인 면을 지향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세계적으로도 비슷하겠지만 특히 한국 사회가 유독 더 심한 것 같다.

성(聲)이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모든 것이 그쪽을 지향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음(音)과 악(樂)의 가치가 함께, 아니 더욱 존중받는 문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사회가 갖춰야할 격조가 갈수록 가치를 잃어가는 이런 추세를 바로잡을 책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인간의 정신적인 면을 담당하고 있는 종교의 몫이 아닐까 한다. 특히 우리는 불교가 이런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솔직히 불교가 그런 역량을 가지고 있을까에 깊은 회의가 든다.

이런 경향은 정치에서도 종교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화와 타협, 양보와 배려는 사라지고 동물적인 힘겨루기와 다툼이 빈발한다. 최근 젊은 스님이 노스님을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떤 큰 절에서는 높은 스님이 주지자리를 돈을 받고 매관매직을 했다는 소식이 구체적인 정황증거와 함께 들려온다. 급기야는 한 승려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헐값에 판다는 광고를 교계 주요 신문에 게재했다가 물의를 빚자 사과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충청도 어느 큰 절 아래 호텔에서는 일단의 승려들이 놀음을 하다가 경찰에 넘겨진 부끄러운 사건도 있었다. 더 한심한 것은 ‘법대로’ ‘단호하게’ 처리한다는 방침을 습관처럼 되풀이하면서 가재는 게편이라는 듯 적당히 감추고 보호하려는 종단운영 책임자들의 음험한 기운이다. 또 정론을 편다는 언론들이 사리판매 광고를 버젓이 게재하고도 일언반구 공식적인 사과가 없는 것이다. 하긴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내밀고 있는 이들이 모든 분야에서 더 대접받는 교계의 일그러진 풍토를 생각하면 수원수구할 것도 없겠다.

이 모두가 음이나 악 보다는 성에 가까운 현상들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결과들이다. 무상 무등등의 가르침에 귀의하고 이를 목숨 걸고 실천하는 집단에서는 도무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초부터 안타까움 섞인 한 숨 소리만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지만, 어쩌랴! 이제는 불자들 각자가 처한 자리에서 밝음을 발산하는 것 외에 달리 길이 보이지 않는다. 종단이 바뀌고, 교계 풍토가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 백년하청에 가까워 보인다. 몇 달 전 한 식사자리에서 들었던 동국대 불교대학 김호성 교수의 말씀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왔다고 여겨진다. 당시 김 교수는 “전체를 어떻게 바꾸거나 바로잡는다는 것은 실현가능성도 거의 없고 무모해 모인다. 각자가 자기의 행동반경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그 결실들이 모여 세상을 비추고 맑히는 단초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라는 취지의 말씀을 했었다.

새해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부터 맑히는 삶, 성보다는 음과 악이 더 가치를 발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