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정권 아래서 펼쳐지는 기독교 편향 사례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는 것도 이젠 지겹다. 그 속에 선교라는 음험한 의도가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이를 꼬집어 지적하기가 언제부터인지 구차해지는 느낌이다. 욕먹을 소리겠지만 이런 외골수 정권에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아 넘기는 것이 섣불리 나서는 것보다 차라리 낫겠지 싶다.

이렇게 풀죽은 소리를 뱉는 것은, 아무리 소리쳐 외쳐도 꿈쩍도 않은 채 요지부동 정권에 채 1년도 안 되어 제풀에 지친 탓일 게다. 그렇다고 바로잡을 힘도 없으니 싫지만 손을 놓고 있을 밖에 별 도리가 없다.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이 얼마 전 경찰청장의 사과방문 자리에서 ‘그동안의 일은 없던 것으로 하자’며 사과를 받아들인 것을 놓고 비판을 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들의 식지 않는 열정에 감사와 존경을 보낼 뿐, 달리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총무원장 스님의 ‘없던 걸로 하자’는 말이 최선은 아니었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렇다면 당시 무슨 말을 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본사주지고, 총무원의 부장이고 거의 다 초토화된 마당에 총무원장으로 선택할 어휘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의 모습, 역량을 곰곰이 되새겨 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총무원장 스님이 그렇게 맥없이 모든 사태를 마무리했을 때, 교계는 대부분 침묵했다. 몇몇 늘 대척점에 섰던 곳(단체)을 빼고는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입을 다물었다. 이는 불교계가 총체력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는 단적인 반증에 다름 아니다. 잘못된 줄 알지만, 언급해봐야 개선될 턱이 없고, 개선시킬 힘도 없으니 입을 봉하고 있을 밖에 달리 길이 없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정부(교과부)가 건국 6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제작해 전국 1만여 초중고에 배포한 현대사 영상물(DVD)이 도마에 올랐다. 그 내용의 숱한 문제점들과 함께 명칭까지 ‘기적의 역사’로 명명돼 특정종교의 이미지를 풍기는 불쾌감을 주지만,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어쩔 것인가. 아마도 그들은 우리의 근현대사가 미국을 배경으로 한 기독교가 주도한 역사로 기술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늘(12월 8일)은 서울 어느 전철역에서 시민에게 다가가는 지하철이 되고자 하는 명분아래 일일 명예역장으로 한 종교의 지도자를 모셔놓고, 교회의 전단을 배포하며 노골적으로 선교행위를 했다. 이런 것에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지만, 따져서 무슨 변화가 있겠냐 싶으니 맥부터 빠진다. 이 일은 종교편향의 목소리가 한창 높았을 때도 문제가 되었던 일이니, 이제 그 목소리조차 잦아든 현실에서 거리낄 것이 없었을 것이다. 되레 그들이 <미디어붓다>의 취재기자에게 물었단다. “그런 거 묻지 말라. 불교는 포교 안하냐?”

뿐만이 아니다. 국내에 처음 설립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중동문화원이 특정 종교인들의 압력으로 돌연 폐쇄가 결정돼 아랍권 국가들이 반발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불교를 넘어 이슬람에까지 압박을 가하는 그들의 집요함이 분노에 앞서 두렵게 다가오고 있으니, 이를 도대체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정부의 지원을 받는 어린이집 교사를 채용하면서, 자기종교인만을 선발하겠다고 당당하게 공표하는 특정종교 운영 어린이집의 무모함을 비판하려다가도 하나 밖에 없는 불교보육교사교육원이 몇 해 째 정원을 턱없이 채우지 못해 폐원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는 현실을 돌아보면 그만 입이 다물어진다.

이쯤 되면 장로정권 탓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된다. 자연 기사 쓸 맘도 나지 않는다. 이런 글조차 쓰고 싶지 않지만, 마침 평소 존경하는 동국대 김호성 교수께서 인천의 중동문화원 폐쇄 문제의 심각성을 취재했으면 좋겠다는 견해를 댓글로 전해왔기에 무언가 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기자의 생각은 적어도 지금은 종교편향에 즉자적 반응을 할 시점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런 시점은 이미 지나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비판도 세력이 비슷할 때나 효과가 있는 것이지 지금은 때가 이미 늦은 것 같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제는 모든 현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새롭게 불교를 재건하는 일에 착수해야 하는 시점일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건강한 불교, 무당 비슷한 것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불교를 건설하는 일에 나서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장로정권에 항의할 힘으로, 종단의 장래를 망치는 것도 모자라 교계 주요기관에 이사로 진출해 그 유관기관의 발전까지 가로막고 있는 일부 정치승려들을 규탄하고 징치하는 일이 더 급한 일이다. 전국의 사찰 입구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문구보다는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 주는 도량’이라는 광고현판이 즐비한 현실을 바꾸는 것이 더 급한 일이다. 정법보다는 방편에 매몰돼 마침내 본령을 잃고 헤매는 한국불교의 현주소를 바로잡는 작업이 더 급하다.

바둑에 아생 연후에 상대를 공격하라는 교훈이 있듯이, 우리 불가에 사자신충의 가르침이 있듯이 지금은 불교가 스스로를 찬찬히 돌아볼 때이다.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음이 몹시 씁쓸하지만, 내 몸속에 치명적인 암세포가 퍼져가고 있는데, 감기를 부를지도 모를 외부의 삭풍을 탓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