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사전적 의미가 확 달라져 버린 시절을 살고 있다. 대학을 상징하는 용어의 대표격은 아마 상아탑일 것이다. 본래 속세를 떠나 조용히 예술을 사랑하는 태도나 현실도피적인 학구 태도를 이르는 이 용어의 대학 상징어로서의 자리는 크게 퇴색된 지 오래다.

상아탑이란 용어는 세속적인 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정적(靜寂)·고고(孤高)한 예술지상주의 입장을 취한 19세기의 프랑스 시인 A.드 비니를, 평론가 생트뵈브가 평할 때 사용한 말에서 비롯되었다. 이 말이 뒤에 대학 또는 대학의 연구실을 지칭하는 말로 전용되어 지금까지도 대학의 상징어로 사용돼 왔음은 주지의 일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대학은 급격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대학에도 세계화의 물결이 휘몰아치고 있다. 시대는 대학을 향해 20세기적 모델인 ‘교육·연구·봉사’의 역할을 넘어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기업이 설립한 사내대학,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사이버 대학, 대학들의 연합과 세계화(Global institution) 등 다양한 고등교육기관이 등장했다. 전통적 개념의 대학 강의보다 더욱 효과적인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학이라는 전래의 고등교육시장은 시나브로 무한 경쟁의 장으로 편입됐다.

대학이 그동안 차지하고 있던 고등교육시장의 독보적 자리는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대학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기에 각국의 정부들은 대학에 무한 경쟁력 보유를 독려하고 있다.

경쟁에서 처진 대학이 고사할 수밖에 없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결과 대학은 전통적인 가치와 학문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에 혈안이 되어 있다. 또한 대학들의 정책결정은 학문적 가치보다 효율성, 효과성 등 경제성과 시장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전방위적 변화의 흐름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대학들도 있다. 한국불교계에서 설립한 대학들이 그 전형적인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불교계 설립 대학들의 현재 모습은 세계의 대학이나 국내의 대학들이 눈에 불을 튀기며 매진하고 있는 경쟁력 강화와는 무관한 듯 태연하게 보인다. 외려 날이 갈수록 경쟁력을 상실해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될 정도다.

이사장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인 조계종립 동국대학교를 비롯해 학교운영의 헤게모니를 놓고 반목하다가 급기야 학생 수십 명을 한꺼번에 제적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사태도 모자라 엊그제는 총장 선출에 종단정치의 입김을 작용해 총장선출을 하지 못했다는 조계종립 중앙승가대학교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이사회 구성에서 종단내홍의 여진을 말끔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진각종립 위덕대학교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대학의 경쟁력 향상 보다는 대학의 운영권을 장악하려는 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지, 불교계 설립 대학들의 요즘 처지는 보기에도 딱할 정도다. 다른 대학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고 있는데, 도무지 어쩌자는 것인지…. 학생과 교수들만 안쓰럽고 불쌍한 형국이다.

왜 이래야 하는지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지만, 또 알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지만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대학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니 그 원인을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계 대학들이 과거 상아탑의 기능에 충실한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인 대학의 의미가 변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성인들이 모여 있는 곳은 아직은 대학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학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듯이 대학은 여전히 국가나 집단, 단체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잣대로 기능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불교계가 설립한 대학들의 현 주소는 불교계의 경쟁력과 수준을 그대로 대변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불교대학들의 모습은 어떤가? 건강한가? 평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는 한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 시점의 불교계에서 매우 시급한 과제는 불교계 설립 대학들을 바로 세우는 일일 것이다. 이 일에 나서야할 주체는 주요종단의 총무원이나 중앙종회이다. 가장 힘 있고, 영향력이 있는 곳이니 가장 먼저 나서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갖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또 그곳은 총무원의 주요 관계자나 영향력 있는 종회의원들이 소속되어 있거나 적어도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기관이기도 하니 더더욱 그렇다.

불교계에서 설립한 대학들이 대부분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한국불교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그 주된 역할을 사람이 하게 되어 있다. 사람을 기르는 기관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그 기관을 소유한 단체나 집단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예서 꼭 이웃 종교계가 세운 대학들의 예를 들 필요는 없다. 그래봐야 더 기운만 빼는 일일 것이니.

급한 곳, 시급히 손을 써야 할 곳, 부디 그런 곳에 역량을 갖춘 종단의 지도자들이 관심을 갖기 바란다. 그곳을 장악하고 권한이나 이권을 차지하려는 방향 보다는 정말로 대학이 발전하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상아탑’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