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는 국내 종교 현실의 최전방에서 학문적·신학적·대중적으로 종교 간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앞장선 신학자다. 그는 오랫동안 학문적·실존적 관심 대상이었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창조적 만남’을 모색해온 비교종교학자로 불교계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모태 신앙으로 하면서도, 대학생 시절부터 불교의 순수성과 초세간적 자유에 매료되어 불교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한창 그리스도교의 은총 사상에 사로잡혀 불교는 너무 어려운 자력수행의 종교라고 여기던 신학생 시절, 미국 예일대 불교 강의에서 일본승려 신란의 사상을 처음 접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불교의 세계가 넓고 깊다는 생각에 새삼 놀라면서 불교와 기독교에 대한 ‘자력 종교’ 대 ‘타력 종교’란 도식적 이해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던 것이다.

그 후 그는 신란의 사상을 깊이 연구해보기로 결심했지만 신란의 정토사상은 불교의 주류라 할 수 없어, 주류인 선(禪)과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모색했다. 그 와중에 중세 가톨릭의 신비주의 수도사 마이스터 에카르트의 사상을 접했고,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 가능성을 학문적으로 모색하고 확인하는 연구를 해왔다.

그는 1987년에 새길교회(개신교의 대표적 초교파 평신도 교회)를 공동으로 창립한 이래 목회활동과 연구 활동을 통해 한국교회의 거듭남에 앞장섰고, 가톨릭이 운영하는 서강대에서 불교학을 20년간 강의했으며, 최근 <학교종교자유를 위한 시민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하는 등 진보신학의 입장에서 시민운동도 활발히 전개해왔다. 2004년 초, 관심 분야의 연구에 전념하려는 뜻으로 정년을 4년 앞두고 자청하여 서강대에서 명예 퇴직했다.

최근 길희성 명예교수가 학술원 회원이 됐다. 대한민국학술원이 지난 7월 10일 발표한 새회원에 길희성 교수가 불교학 분야의 회원으로 선출된 것이다. 학술원 회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학자에게 주어지는 명예의 전당이다. 길희성 교수에게는 축하의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뇌허 김동화 박사 타계 이후 사라졌던 불교학의 자리가 길희성 교수로 인해 다시 생겨난 데 대해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한다.

그러면서도 한편 왠지 허전함이 남는 것은 왜일까. 자타의 경계랄 것이 없고, 하물며 생사일여를 이야기하는 불자로서 길희성 교수의 학술원 회원 선출을 놓고 못내 허전함을 느끼는 연유는 시샘이나 시비를 논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쩌다가 불교학 분야의 한국학계 대표자리가 불교인이 아닌 개신교 목회자에게 돌아가는 모양새가 좀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번 불교학 분야 학술원 회원 선출에는 동국대에서도 정년퇴임한 2명의 학자와 현직 교수 1명이 후보에 올랐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 요구되는 논문에서 밀렸고, 학문적 성과나 학계 인맥에서도 도무지 경쟁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어쨌든 동국대로서는 얼굴을 들기가 어렵게 된 것이 현실이다.

길희성 교수는 불자는 아니지만 불교학 분야에서 많은 학술적 성과를 남긴 석학임에 틀림이 없다. 개신교인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심지어 불자들보다도 더 불교를 좋아하고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를 능가하거나 견줄만한 불교학자가 없었다는 것이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다.

불교학 분야를 대표하는 학술원 회원에 개신교인, 그것도 사실상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신학자가 선출될 정도로 동국대를 중심으로 한 한국 불교학계의 현실이 이런 지경이었다니! 새삼 놀라울 뿐이다.

불교학 분야가 학술원에 다시 생겨난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그 분야에 비교종교학을 연구한 개신교인 신학자가 선출된 현실을, 불교학계는 대대적인 쇄신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반성이나 부끄러워하는 움직임조차 감지되고 있지 않으니 안타깝고 답답하고 서글픈 일이다.

만일 기독학을 대표하는 분야의 학술원 회원으로 불교학자, 그것도 절에서 법문을 하는 법사직을 겸한 학자가 선출되었다고 하면 기독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기독교 학계도 지금의 불교계처럼 조용하게, 마치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는 듯이 지나갔을지는 의문이다.

꼭 난리법석을 떨어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최소한의 반성과 자성의 목소리는 작더라도 터져 나와야 정상이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위덕대나 금강대는 차치하더라도 동국대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할 정도로 큰 규모의 학자군과 불교대학을 갖고 있다. 불교대학이 특히 많은 일본에서도 한 학교에 수십여 명의 불교학 전공 교수와 수백여 명의 석·박사 및 연구진을 갖고 있는 대학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국대의 현실은 어떠한가. 이번 학술원 회원에 길희성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은 동국대를 비롯한 한국 불교학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 알다시피 학술원은 학술발전에 공적이 있는 학자를 우대·지원하여 학술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학자들의 대표기관이다. 학술원 회원이 된다는 것은 한국 학자로서는 최고의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이며, 그가 축적한 학문세계가 관련 학계는 물론 사회전반으로부터 깊은 신망과 존경을 받았다는 상징 같은 지위이다.

다른 분야는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불교학 분야만큼은 불교학계, 또는 정통 불교학을 전공한 학자가 학술원 회원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불교학계는 분골쇄신해야 한다.

길희성 교수에게는 축하를, 불교학계에는 따가운 비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