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열렸던 ‘열린논단’에서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깨침에 대한 그의 해석이다.

“오늘처럼 정보화된 시대에 교육의 기회도 많고,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특별히 박해받는 일도 사라진 21세기에는 종교가 ‘무조건 믿어라’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음을 강조하는 신비적 경향을 띠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그리스도교의 믿음뿐 아니라 깨침도 함께 강조하는 폭넓은 종교로 변해야 하고, 그리하여 ‘무조건 믿어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아하!’를 연발하며 갈 수 있는 깨침의 길도 열려 있음을 알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가 던진 말은 기독교계를 향한 일종의 주문이다. 그러나 이런 주문에 불교계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아하!를 연발하며 갈 수 있는 깨침의 길’이란 어쩌면 불교계로 본다면 일종의 점수점오의 개념과 상통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표현을 제시했다. 공부란, 또 깨달음이란 어허! 어허! 스스로 새로운 진리에 눈 뜰 때마다 놀라는 자각의 경험, 즉 ‘어허! experience’에서 새로운 진리의 오묘한 경지를 알아차렸을 때의 깨침의 경험, 즉 ‘아하! experience'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허!→아하!의 연속이 곧 종교가 아니겠느냐는 독특한 해석이다.

요즘 스님들 가운데 가장 사회적 활동력이 출중하고, 세상의 이목을 끄는 살아있는 법문을 하는 스님으로 존경받는 정토회 법륜 스님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설법을 얼마전 불교텔레비전을 통해 한 적이 있다.

법문의 요지는 깨달음을 등산에 비유해 설명한 것이다. 등산을 하면서 한발 한발 올라갈 때마다, 마음이 맑아지고, 그만큼 시야가 넓어지는 것처럼, 깨달음을 향한 수행도 그런 것이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꼭 정상에 올라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산 중턱이 되었든, 7부 능선이 되었든 그 각각의 단계에서 얻어지는 가치와 달라지는 안목이 있다는 것이다.

오강남 교수나 법륜 스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확철대오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단일한 수행 프로세스로는 다양한 근기의 대중을 상대로 한 종교로서 일정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행 성취의 단계를 보다 세분화하는 프로세스의 정립이 간화선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상근기야 돈오돈수 돈망생사의 경계에 단박에 이르는 확철대오를 목표로 용맹정진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더 많은 대중들에게 간화선이 왜, 어떻게 유용한 것인지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불자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는 종범 스님은 최근 한 법문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성취가 아니라 성취 이후 성취한 것을 소유할 것인가, 아니면 회향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것이 출세간적 깨달음이든 세속적 성공이든 일단 성취를 하면 소유보다는 회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은 성취를 소유하려고 하면 근심과 불안이 찾아오지만, 회향하면 행복과 만족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만일 확철대오만을 깨달음으로 인정하는 경직된 분위기에서 깨달음의 회향 문제는 어떻게 되겠는가.

하안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도 돈오돈수의 경계를 향해 수천의 납자들이 정진 중이다. 아마도 선납자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확철대오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정말로 화두를 타파해 일거에 확철대오를 이루는 것만이, 그토록 어려운 길만이 우리 불교가 전가의 보도처럼 간직해야할 수행의 길인가 하는 것에 다시금 의문을 가져본다. 작은 깨침을 인정하고, 그 깨침 속에서 삶의 질이 조금씩이라도 진전되며, 그것을 바탕으로 더 큰 깨침으로 가는 길을 환하게 열어줄 수는 없는 걸까. 그것을, 돈오돈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장자종단 조계종이 과감히 그 경직된 프레임을 깨고 나와 수행 프로세스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열린 길을 마련해 줄 수는 없는 걸까.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기독교인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가 들려준 어허!→아하! 프레임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