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2월 5일) 아침 리영희 선생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선생께서 타계 전에 설조 스님(전 법보신문 발행인, 불국사 주지) 이야기를 자주 했다는, 그리고 그 소식을 유족들로부터 전해들은 장례를 주관하는 측에서 설조 스님을 장례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하기 위해 연락처를 찾는 과정에서 기자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평소 설조 스님과 기자가 연락을 이어오고 있음을 그들이 어떻게 알았던 모양이다.

새벽같이 설조 스님께 연락을 드려 리영희 선생의 타계소식을 전하니, 스님께선 잠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신다.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아직 할 일이 많으신데…” 잠시 후 스님의 반응이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스님께서 마침 한국에 들어와 계셨다. 스님의 연락처를 알려드려도 되겠느냐고 묻고, 당연히 장례에 참석하시겠다는 허락을 받은 후 스님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그러고 나니, 고인과 함께 했던 1997년부터 98년까지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머리에 떠오른다.

1997년 법보신문에 근무할 때였다. 고문으로 리영희 선생님과 이기영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때의 놀라움이란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큰 것이었다. 원효를 세상에 알린 불교석학 중의 석학 이기영 박사님도 그랬지만, 대학시절 군부독재의 총칼을 피해 ‘걸리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마치 첩보작전 하듯이 돌려 읽던 시절이 생각났고, 바로 그 책을 쓴 분이 신문사의 고문으로 오시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크게보기이후 신문에는 ‘리영희 칼럼’이 신설됐고, 선생님의 지인이었던 소설가 박완서 선생 등 화려한 필진이 신문에 등장했다. 그 덕으로 신문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주일에 두 번 정도 출근을 했던 선생님은 기자들에게 많은 것을 조언하고, 당신의 경험을 들려주시곤 했다. 조선일보 정치부장 시절의 ‘무용담’이나 감옥에 갔을 때의 이야기, 월남과 중국의 이야기들이 파편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리영희 선생님은 평소 불교에 호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시절에 본격적으로 불교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불교책을 읽고 불교에 대해 이런저런 궁금한 것을 당시 주필로 일했던 박경훈 선생님과 설조 스님에게 묻곤 했다.

종각역 뒤편에 있는 이문설렁탕을 좋아하시어, 출근날이면 자주 그곳을 들르곤 했다. 본래 육식을 싫어하고, 특히나 물에 뜬 육고기 요리에는 질색을 하는 나였지만, 설렁탕을 먹으며 들려주는 값진 말씀을 듣기 위해 설렁탕집을 빼놓지 않고 따라갔다. 억지로 목구멍으로 설렁탕을 밀어 넣는 고통이 있었지만, 이 기회가 아니면 선생님의 듣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설렁탕 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불교공부를 조금 더 일찍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말씀에서부터 ‘초급장교로 군에 갔을 때, 건봉사를 보존했던 이야기’, ‘당신의 저서를 읽고 많은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죽거나 감옥에 가는 것을 볼 때 가장 괴로웠다’는 말씀 등은 지금도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이 중 일부는 ‘리영희 칼럼’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선생께서는 2000년도에는 만해상 실천상을 받기도 했다.

신문을 만드는 날이면, 밤늦은 시간인데도 죽을 몇 그릇 사가지고 당시 충무로에 있던 신문제작소까지 찾아와 기자들을 격려하시던 일, 신문사 고문을 그만 둔 이후에도 경기도 여주 인근의 밤나무가 무성한 곳에서 함께 일했던 신문사 식구들을 불러 밤도 따고 음식도 함께 하면서 담소를 나누던 모습 등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리영희 선생님이 2000년 만해상 실천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 설악산 백담사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다. 선생님은 잘 있느냐? 설조스님은 어떻게 지내시느냐? 등의 안부를 전했고, 건강하신 모습에 안도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날 만해상 실천상을 받고 수상소감에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내가 만해상 실천상을 받았는데, 감사하지만, 여기 와서 절을 돌아보고 한 마디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 하신 말씀은 ‘백담사에 왜 치욕스럽게도 일해(전두환 전대통령의 아호)의 흔적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느냐’는 일갈이었다. 상을 받는 사람으로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상을 주신 쪽에 찬사를 해야 마땅한 줄 알지만, 이 말만을 해야 겠다면서 위대한 ‘만해’가 치욕스런 ‘일해’로 인해 빛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취지의 말씀을 이어나갔다.

당시 시상식에 참석한 하객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역시 리영희 선생이다. 상을 준 쪽에 대해 저런 독설을 할 수 있는 분은 리영희 선생 말고는 없을 것이라는 쪽과 아무리 그렇더라도 상을 마련한 주최측을 공격하는 듯한 발언은 심하다는 쪽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래서 리영희가 아닌가. 리영희 선생의 진면목을 다시금 보여준 소중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타협이나 굴절이란 추호도 허락하지 않는 선생이시기에 많은 존경을 받고 시대의 사표로 우뚝 서신 것이 아닐까.

이제 선생님은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이루었던 민주주의가 또 다시 경각의 위기에 달려 있는 이 시점에 선생께서 세상을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몸은 병들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져 당신이 뭘 어떻게 하기는 어렵고, 당신이 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했던 족적들이 다시금 국민들에게 알려져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지켜달라는 마지막 불길, 마지막 사자후는 아니었을까.

2010년 12월 5일 0시 30분. 차마 눈을 감기 어려웠을 대한민국의 기막힌 상황을 뒤로하고 몸을 바꾸신 리영희 선생의 뜻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故 리영희 선생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