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 ‘잡편’에 공자와 도척(盜拓)의 이야기가 나온다. 도척은 공자의 벗 유하계의 동생이다. 그는 구천 명의 졸개를 거느리고 천하를 마음대로 오가며 제후의 영토를 침입하여 포악한 짓을 자행하는 등 온갖 패악을 저질렀다. 그런 도척을 찾아가 공자가 한 말은 “삼덕(三德)을 갖췄으니 마음을 돌려 천하를 장악하라”는 권유였다. 당시 도척은 공자에게 “글 좀 읽었다고 위선(僞善)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면서 일신의 평안만 추구하는 그대야 말로 도구(盜丘)이지( 丘는 공자의 이름) 내가 왜 도척(盜拓)이냐?”라고 일갈했고, 공자는 혼비백산 돌아 나왔다. 이때 공자가 말고삐를 세 번이나 놓쳤다니, 천하의 공자를 혼쭐낸 도척도 보통내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도척이 이 만남에서 공자에게 설명한 사람의 성정(性情)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다.

“눈은 아름다운 빛을 보려하고, 귀는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하며, 입은 좋은 맛을 살피려 하고, 기분은 만족을 바란다. 사람의 수명이란 기껏해야 백 살, 중간 정도로 팔십 살, 밑으로 가면 6십 살이다. 그것도 병들어 여위거나 남의 죽음을 문상하고 또는 걱정거리로 괴로워하는 따위를 제하고 나면 사람의 일생 동안에서 입을 벌리고 웃을 수 있는 일은 한 달 중 불과 네닷새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과 땅은 무궁하지만 사람은 때가 오면 죽게 마련이다. 이 유한한 몸을 무궁한 천지 사이에 맡기고 있기란 준마가 문틈을 휙 지나가 버리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자기의 기분을 만족시키고 그 수명을 보양하지 못하는 자는 모두 도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다. 네가 하는 말은 다 내가 내버린 것들이다. 당장 돌아가라.” <안동림 역주 '장자'에서 인용>

사람의 간을 질겅질겅 씹으며 이렇게 말했다는 도척도 그의 길을 간 것이고, 공자도 나름대로 덕치주의(德治主義)의 이상 실현을 위하여 인본주의(人本主義)의 길을 걸었던 것이니 이들의 만남에서 승패를 가리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만 ‘과연 도(道)는 무엇이고 덕(德)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맹자> 진심(盡心) 상25에 적절한 답이 나온다.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선을 행하는 사람은 순임금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고,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도척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순임금과 도척의 차이는 다른 것이 아니다. 이익(利)을 추구하는가, 선(善)을 추구하는가의 차이이다.”가 그것이다.

한 집안이나 세력의 흥망성쇠에는 으레 일정한 흐름이 있다. 동시대에 그 집안을 망하게 하는 동일한 업식(業識)을 가진 자들이 다수 나타나 서로 한 덩어리가 되어 활개하면 곧 쇠망(衰亡)의 과보가 나타나는 것이다. 한 두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대개 잠시 혼란이 있다가도 곧 수습이 되곤 하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동시에 다수가 나타나 마치 도척과 그 무리와 같이 횡행을 하면 문제가 달라지는 것이다. 말 그대로 집안이나 세력이 쇠망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도척은 평생 패악질을 했지만, 죽을 때까지 천벌을 받지 않았다. 외려 그 주변에는 사람이 몰렸다. 도척에게 잘 보여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돈과 힘과 오욕칠정의 충족이었다. 선(善), 인(仁), 의(義), 도(道)와 같은 것들은 고리타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에게 옳고 그름의 조건은 도덕이나 대의명분이 아니라 이해와 힘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잘 사는 가치를 왜곡되게 이해하는 사람들이었다. 훗날 그들의 행태가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 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혹 있어도 모른 척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와 도척의 평가는 어떻게 되었는가. 훗날 공자는 인류의 큰 스승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 세계인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성인이 되었다. 공자를 따랐던 제자들도 존경을 받는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 반면 도척은 도적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되었다. 역사상 영원히 부끄러운 인간이 되고 만 것이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 역시 ‘도적의 무리’로 불리게 되었다. 두고두고 역사와 세상에 얼굴을 들 지 못하는 처량한 이들이 되고 만 것이다.

어느 집안이든, 조금 고단하고 어렵더라도 바른 것이 사라지고 삿된 것이 성하면 망조가 들게 마련이다. 삿된 것에는 도척과 그 무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흔히 돈과 무리가 따른다. 반면 예나 지금이나 옳고 바른 것에는 곤궁함과 외로움이 깃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선(善)보다 이(利)를 앞세우는 세속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느슨할 수 있겠으나, 속리(俗離)의 경계에서는 경우가 다르다. 그곳은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되는, 되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청정과 무소유를 실천하고 우리 곁을 떠나간 ‘비구 법정’의 삶이 준 여운과 감동이 좀처럼 식지 않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속리의 경계에서 선(善)보다 이(利)가 앞서고, 청빈보다 부와 세력이 우선된다면, 게다가 적잖은 구성원들이 그 쪽에 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은 채 몰려들어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면, 그 미래가 어떨지는 명약관화하다.

절집에 빈부격차라는 말이 회자되고, 계파나 세력 따위의 용어가 익숙해지며, 활동을 위해서나 장차 노후의 보장을 위해서 주지나 보직 한 자리 얻으려면 특정 세력에 포함돼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거리낌 없이 오가는 현장을 목격할 때마다 공자와 도척의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

오직 일대사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형제를 떠났고, 모든 세속적 가치를 헌신짝처럼 버렸던 숭고한 초심은 온전히 보전되어 있는지,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문제를 놓고 또 다시 분규의 암운이 감도는 작금, 모두들 되돌아보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