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종 미얀마 수행기

봉은사 직영 둘러싼 스님들의 행보<br>새 털처럼 가볍지는 않았는지…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10-03-27 (토) 12:02

봉은사의 직영사찰 지정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책임 있는 스님들의 움직임이 볼수록 실망스럽다. 이런 수준으로 1700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국불교를 제대로 이끌어갈지 의문이다.

갈등의 두 축인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사태의 직접 당사자들이니 논외로 치더라도, 양측의 갈등을 중재하고 원만하게 수습해야할 책임 있는 스님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자승 스님도 소통부족을 인정했듯이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은 졸속으로 진행된 면이 없지 않다. 봉은사주지 등 대중스님은 물론 봉은사의 실질적 주인인 신도들과의 소통이 없었다는 점에서, 소통을 외쳤던 자승 총무원장 집행부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에 여권핵심부의 개입이나 압박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곧 전말이 밝혀질 것이므로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주로 종단운영에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스님들의 행보를 언급해 보겠다.

첫째, 총무원 집행부의 졸속적인, 그리고 다소 무리한 직영사찰 지정 추진에 대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총무원 집행부의 한 간부 스님이 봉은사 주지의 의견을 구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개 사찰 주지의 의견까지 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언이 아니라면 매우 심각한 문제다. 봉은사 주지가 정말로 일개 사찰 주지에 지나지 않는가. 일개 사찰 주지의 목소리가 이처럼 불교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과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지 묻고 싶다. 설사 일개 사찰 주지라 하더라도 이번처럼 일방통행 식으로 종무행정을 해서는 안 된다. 총무원장도 소통부족을 인정한 마당에 집행부 출범 이후 입버릇처럼 소통을 외쳐온 것이 면구스럽지도 않는가.

둘째, 중앙종회의 부적절한 움직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중앙종회는 사부대중의 여론과 의견을 수렴해 종단 운영에 적용하는 대의기관이다. 따라서 중앙종회는 어떤 결정을 함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마땅히 봉은사 주지의 의견을 들어 혹시라도 이 결정이 가져올지도 모를 여러 가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나아가 봉은사 25만 신도들과 만나 그들의 의견을 듣고, 직영사찰 지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었다면 총무원 집행부에 좀 더 소통하라고 촉구했어야 했다. 총무원 집행부가 종무행정 집행에 집중하다보면 자칫 소홀할 수도 있는 부분을 찾아내어 보완토록 하거나 바로잡도록 비판하는 것이 종회의원들이 할 일이다. 그러나 이번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에서 보인 종회의원들의 움직임은 그렇지 못했다. 총무원 집행부와 한 편이 되거나, 대의 보다는 계파의 이해에 맞물려 문제를 악화시킨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문제가 불거진 이후 의장단이 기자회견을 통해 봉은사 주지 징계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은 매우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셋째, 원로회의의 행보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종단의 최고 어른인 원로스님들이야말로 종단이 어려움에 처할수록 일거수일투족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에 원로회의 의장단 이름으로 발표된 내용들은 종단의 화합과 소통을 걱정하기보다는, 총무원집행부 편들기의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무엇이 불조를 위하고, 종단을 위하고, 사부대중을 위하는 것인지를 오랜 수행을 통해 얻어진 혜안을 통해 제시하고, 젊은 스님들이 미처 간파하지 못한 것을 높은 안목으로 일깨우는 것이 원로스님의 몫일 것이다. 혹시라도 원로의 목소리가 화합보다는 파열음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원로스님들의 한 마디가 금과옥조와 같은 위력을 발휘하느냐, 아니면 여러 가지 목소리 중의 하나로 취급되느냐는 전적으로 원로들의 책임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월요일(3월 29일) 모임을 갖는 본사주지 스님들에 대한 간곡한 당부다. 본사주지스님들은 국가로 따지면 도지사와 광역시의 시장에 해당한다. 그야말로 종단의 근간에 해당하는 분들이다. 부디 본사주지회의에서만큼은 깊은 고민을 통해서 편들기가 아닌, 종단을 안정시키고 화합을 이뤄낼 수 있는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방안을 도출하시기를 요청 드린다.

종단을 구성하는 모든 책임 있는 주체들이 보여주는 행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되어선 곤란하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규모가 큰 불교집안의 책임 있는 스님들의 언동이 새털처럼 가벼워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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