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9-04-01 (수) 17:12
-웨스트 바라이(West Baray)와 웨스트 메본(West Mebon)
앙코르에 대한 이해, 그 접근법의 첫걸음은 인공적인 것에 대한 수용이다. 자연과 조화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당혹스럽고 이질적이고 신비감을 더한다. 자연 파괴라는 극단적인 질타로 매도할 수는 없지만 자연을 존중하며 문명을 일군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 정글을 밀어 부지를 확보하고 그 위에 사원을 건축했다. 환경 보호를 소리 높여 외치는 요즘도 신도시 건설에는 그런 방식을 채택한다. 절대 왕조시대에는 지극히 당연한 역사(役事)였다.
앙코르 지도를 보면 앙코르 톰 왼편에 직사각형의 호수가 있고 웨스트 바라이(West Baray)라고 표기되어 있다. 둑이 남아 있는 흔적을 측량해본 결과 면적이 2.2킬로미터×8킬로미터다. 일부가 메워졌지만 호수의 넓이가 어림잡아 앙코르 톰과 비슷하다. 앙코르 톰을 중심으로 양편에 인공 호수를 팠다. 동 바라이(East Baray)는 모두 메워져 흙바닥을 밟으며 호수 속에 있었던 동 메본(East Mebon)에 다가갈 수 있다.
물을 다스리는 것은 문명을 일구는 원동력이다. 치산치수에 대한 능력은 곧 군주의 능력이자 지배력의 원천이다. 밀림의 한 가운데 도시를 건설하고 거대한 인공호수를 파다니? 어디에서 물을 끌어대나? 심심한 구경꾼은 별 걱정을 다해본다. 거대한 문명을 일군 이들이 그런 계산을 못했을까. 앙코르 유적에는 하나같이 해자가 있다. 사원을 둘러싼 수로 말이다. 해자는 물론 서쪽, 동쪽 바라이의 물길은 씨엠리업강과 연결되어 있다. 노출된 물길도 있고 지하로 이어진 물길도 있다. 씨엠리업강은 거대한 규모의 강이 아니다. 한강에 이어진 탄천보다 규모가 작다. 건기에 바라본 강의 수량은 보잘 것 없다. 그러나 그 강은 바로 톤레삽 호수와 연결되어 있다. 물 공급의 비밀은 우기에 벌어지는 톤레삽 호수의 역류다. 호수가 넘쳐 물이 밀려 올라와 작은 웅덩이들을 가득가득 채워준다. 석 달 동안 물이 역류되어 올라온다. 그래서 이런 인공 호수를 만들었다.
직사각형 호수의 정 가운데에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인공 섬이 있다. 자로 잰 듯한 한 가운데다. 그 섬에도 어김없이 사원을 지었다. 웨스트 메본이다. 인공의 냄새를 원 없이 풍긴다. 쓰라 쓰랑이 거대한 목욕탕이라면 여기는 수상 스포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당시의 왕들은 어떤 식으로 물놀이를 즐겼는지는 모르지만 1950~1960년대 현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국왕이 왕자였을 때, 외국 귀빈을 초대해서 수상 스키를 즐겼고 수상 비행기의 이착륙장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현재는 주민들과 관광객을 위한 유원지로 이용되고 있다.
호수 입구에 상가들이 몰려 있다. 특히 이곳은 진기한 먹거리의 천국이다. 구워지고 튀겨진 전갈, 개구리, 뱀 등이 좌판에 즐비하다. 요상한 식품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를 들이밀게 만든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보일 것 같다. 길게 뻗은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가면 선착장이 있다. 그곳엔 관광객을 섬까지 데려다주려는 배들이 대기하고 있다. 흥정을 해서 배를 한 척 빌려 탔다. 선착장 부근에 있던 행상 아이 세 놈이 잽싸게 배에 오른다. 이동하는 배 안에서 매점을 운영할 모양이다. 그러나 그 녀석들의 계산은 빗나갔다. 배가 섬에 닿을 때까지 아무도 녀석들에게 물건을 사지 않았다. 이미 다른 곳에서 산 조악한 복사판 사진엽서가 고작이니 무리를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녀석들은 줄곧 싱글벙글이다. 1달러짜리 한 장조차 풀지 않는 짠돌이 관광객에게 입을 실룩거리지 않는다. 장사에 목숨을 건 것이 아니라 그냥 공짜로 배를 타고 섬을 오고가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섬에 가서는 물에 풍덩 뛰어들어 우리 일행과 함께 물놀이를 했다. 그 옛날 왕들이나 누렸을 뱃놀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인색하게 군 게 후회된다. 조금씩 지쳐 가는 나그네에게 해맑은 웃음을 보여준 것만도 1달러어치는 넘는데 말이다.
섬 속에 있는 사원은 잡초 속에 묻혀있다. 작은 규모다. 그러나 돌의 위엄은 잃지 않고 있다. 물놀이를 나왔던 왕들이 섬에 들러 가무와 휴식을 즐겼던 정자가 아닐까. 나는 반바지에 샌들 차림이지만 그 옛날 제국의 왕들이 누렸을 호사를 흉내 내어 본다. 가게에서 코코넛 한 통을 사서 막걸리 마시듯 벌컥벌컥 들이켰다. 가게에서 설치해둔 해먹에 누워 하늘을 흔들며 휴식을 즐긴다. 춤추는 압살라가 없어도 괜찮다. 저물녘이 될 때까지 나무와 섬과 하늘을 흔들며 그렇게 누워 있었다.
이 호수와 캄보디아의 비극은 인연이 깊다. 호수의 본래 용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다. 서양의 한 학자가 동,서 바라이는 벼농사를 위한 농업 용수 공급처라는 주장을 했다. 왕실에 식량을 공급하는 논이 주변에 있었다는 그럴듯한 주장이다. 폴 포트는 그 말을 신봉했다. 농업입국의 이데올로기에 그 주장을 적극 활용했다. 그래서 벼농사를 짓는데 전국민을 동원했다. 물론 문맹화를 통치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속셈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먹물 냄새를 풍기는 족속들은 무참히 제거됐다. 지식인, 성직자가 1순위였다. 그리고는 총을 뽑아들고 국민들을 시골로 내몰았다.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었다. 심지어 장애인, 임산부까지 농사를 짓는데 동원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불에 쫓기는 짐승처럼 정신없이 시골로 내몰렸다. 그들은 모두 맨발이었다. 불만은 바로 죽음이었다. 하나의 정신만이 입력되어 있는 10대의 폴 포트 병사들은 학살 임무에 충실했다. 젊음의 순수함이 왜곡된 가치에 휘둘릴 때 얼마나 무서운 야만이 되는가를 캄보디아의 현대사가 증명한다. 우리에게는, 한국의 현대사에는 그런 야만이 없었던가. 권력은 끊임없이 순수한 열정을 왜곡시키려고 유혹한다. 사랑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함부로 청춘의 열정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꼿꼿한 줏대를 세워야 할 것이다.
호수의 남쪽 둑은 허물어져 있다. 허물어진 둑에 얽힌 전설이 있다. 앙코르 제국 왕의 딸이 호수에 물놀이를 나왔다가 거대한 악어에게 잡아 먹혔다. 호위병들이 혼비백산하여 악어를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악어는 요동을 치며 저항했다. 그 와중에 거대한 악어의 꼬리가 남쪽 둑을 부수었다고 한다. 결국 병사들은 악어를 잡아 죽였고 악어의 배를 갈라 뱃속에서 공주를 꺼냈다. 다행히 공주는 살아났다.
지금은 악어가 없다. 악어의 전설을 말해주지 않아서 그런지 동행한 아이들은 아예 물개가 되기로 작정한 듯 물에서 나올 줄 모른다. 행상 아이들도 한 덩어리가 되어 물장난에 여념이 없다.
서서히 일몰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다시 배에 올랐다. 다시 뭍으로 간다. 선착장에 이르자 제법 어둑어둑하다. 파시처럼 붐비던 가게들이 벌써 철시를 한다. 아직 관광객들이 제법 웅성거리는데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에는 전기가 없다. 어두워지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잠자는 일밖에 없다. 무명을 밝히는 것이 등불이라 했던가.
*포커스 하이라이트
온전한 모습으로 서 있는 코푸라를 통해 보이는 호수와 논 그리고 일몰시의 풍경이 멋지다.
*서 바라이, 서 메본
11세기 중엽 수리야바르만 1세 때 축조되었다. 8Km x 2.2Km로 앙코르 지역에 만든 최대의 인공 저수지다. 인근 500여만평의 농지에 용수를 공급했다. 평균 깊이는 7m, 저수량은 123,000톤이다. 현재는 캄보디아인들의 고기잡이와 휴양지로 활용되고 있다. 11세기 말, 우다야디타바르만 2세가 호수 가운데 인공 섬을 만들고 가로 세로 100미터의 사원(웨스트 메본)을 지었다. 동쪽, 남쪽의 코푸라는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으나 사원과 부조는 흔적만 있다. 1936년, 이곳에서 청동으로 된 멋진 비슈누상이 발견되었다. 한 농부의 꿈에 조각상의 모습과 위치가 나타나 발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