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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다

| | 2008-09-30 (화) 00:00

앙코르 와트 서문으로 입장하여 중앙탑에 있는 비슈누의 조상(彫像)으로 가는 거리는 생명의 시간이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심오한 상징이다.

해자를 건너 앙코르 와트 속으로크게보기

앙코르 와트 1층은 미물계를 상징한다고 했으니 중생의 격에 맞다. 미물계를 둘러보는 것만도 하루가 벅차다. 유명한 앙코르의 부조가 1층 회랑의 동서남북 벽면을 꽉꽉 메우고 있다. 화폭의 폭(높이)이 187센티미터, 총연장 215 미터이다. 여기서 바욘에 이어 또 한번 인도의 고대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와 앙코르 시대의 전승 기록을 본다. 접을 수 없고 구겨지지 않는 화폭에 새긴 파노라마를 본다.

어떤 그림이 부조되어 있나? 물음에 답하기가 난처하다. 장대한 파노라마에 어찌 무딘 필설을 놀리랴. ‘친구여, 앙코르로 가라’라고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다만 남쪽 회랑에 새겨진 ‘유액(乳液)의 바다 휘젓기’만을 보자.

운문선원장 일수 스님의 독경소리를 들으며 앙코르 와트를 향해 행진크게보기

이곳에는 인도의 창조설화인 ‘바가바타-푸라나’에서 유래된 악마들과 신들이 천 년 동안 벌인 줄다리기 신화를 50여 미터 길이에 부조해 놓았다. 악마들과 신들이 끝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한 비슈누(힌두교 3대신-비슈누, 시바, 브라흐마- 중의 하나로 우주를 관장한다. 악을 제거하고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여러 형태로 변신함)가 중재에 나선다. 줄다리기를 통해 젖의 바다를 저어서 불로장수의 약을 만들자고 제의한다. 싸움을 스포츠로 승화시킨 지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다른 형태로 승화시킬 비슈누의 지혜가 아닐는지.

앙코르 와트 전경. 장엄하기가 비길 데 없다.크게보기

줄의 재료는 바수키라 부르는 큰 뱀의 몸통이다. 이 뱀은 강한 독을 내뿜기로 유명하다. 뱀의 머리 쪽에 악마팀 92명, 꼬리 쪽에 신팀 88명이 참가하고 브라흐마와 시바가 참관인 역할을, 가운데에는 거북으로 변신한 비슈누가 심판을 본다. 줄다리기는 천 년 동안 계속된다. 온몸이 비틀림을 당한 바수키가 견디다 못해 입에서 거품, 즉 독을 뿜어내고 만다. 강한 독이 선수들에게까지 튀자 참관인 브라흐마(창조의 신)가 또 다른 참관인인 시바(파괴의 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시바는 바수키가 뿜어낸 독을 마신다.

하지만 바수키의 독은 독성이 강해 시바의 목이 타들어가며 파랗게 변해버렸다. 이로 인해 경기는 무효처리 되었지만 평화와 선물을 얻었다. 천년 동안 뱀줄을 휘저은 결과 유액의 바다는 육지가 되었고 비슈누의 아내가 될 ‘락슈미’와 ‘압살라’라 불리는 선녀들이 태어났다. 거기다가 불로장수의 명약 ‘암리타’까지 얻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임이 어디 있을까. 수고한 신들에게는 아리따운 압살라가 제공되었다.

앙코르 와트 1층 회랑의 외부 전경. 크게보기

그러나 영원한 해피엔딩은 없는 법. 독을 마신 시바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암리타를 먹자 명약은 액체가 되어 흘러내리고 이에 악마들이 이 액체를 받기 위해 난리를 피운다. 비슈누는 아름다운 마법의 여신 마야로 변신하여 암리타를 다시 모은다. 그러나 악신들은 암리타를 얻기 위해 다시 엄청난 전쟁을 하게 된다는 내용을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제3회랑 서쪽 남측과 북측 회랑에는 힌두 대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가운데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을 발췌하여 부조해 놓았다. 좌측에서 진군해 들어가는 카우라바군과 우측에서 진군하는 판다바군, 그리고 중앙무대에서 펼쳐지는 전차부대, 코끼리부대, 보병들이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을 뚫고 싸우는 장면은 조각예술의 극치다.

길을 잃은 건기의 조각배. 크게보기

북쪽 벽면의 부조인 라마야나 장면은 라마왕자와 아수라의 왕 라바나의 전투, 원숭이 왕 하누만과 발리의 싸움, 가루다를 타고 있는 비슈누 신의 모습 등 힌두신화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부조는 대체로 싸움의 장면이다. 작은 싸움이든 전쟁이든 그것은 역동적 삶의 극한이다. 긴장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행위다. 하나같이 상대에게 위엄과 위협을 표출하는 표정들이다. 부조가 동영상이 아닌 것이, 선혈 낭자한 천연색 화면이 아닌 것이 다행스럽다. 캄보디아의 현대사가 지루한 싸움으로 얼룩진 것과 무관한가, 유관한가? 회랑을 돌면서 씁쓸한 감회에 젖는다. <소설가 asdfs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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