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0 (금) 00:00
‘크메르예술의 극치, 크메르의 보석’이란 찬사를 받는 곳이 ‘반띠아이 쓰레이’다. 앙코르 유적 복원 작업에 참여했던 프랑스 건축가들이 남긴 탄성이다.
정교함, 현란함, 치밀함을 좋아하는 여행객이, 앙코르 유적 중 단 한 곳을 지정하여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내게 묻는다면, 반띠아이 쓰레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건축물을 샅샅이 살펴보아도 단 1㎠의 여백이 없다. 칼을 댈 곳이 없을 때까지 조각칼을 움직였다. 숨이 막힌다. 여백의 미에 익숙한 우리네 정서에, 머리가 어지럽다.
재료가 돌인가, 나무인가, 흙인가, 모래인가? 송곳으로 찔러보고 싶다. 그럴 수 없는 노릇이라 벽면에 다가가 손톱으로 꾹 눌러본다. 손톱만 아프다.
반띠아이 쓰레이는 ‘여자의 성(城)’이란 뜻이다. 사원 전체 건축물을 붉은 색 사암(장미석 pink sandstone)으로 장식했다. 거기에 세필(細筆)로 그리듯이 조각했다. 자단목에 목각을 하듯 정교함을 뽐내고 있다.
중앙사원 입구의 상인방(출입문 상단장식)은 참으로 걸작이다. 떨어진 거리에서 보면 영락없는 목조 건축물이다. 인간문화재급 대목장과 소목장이 경연하듯 어우러져 만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나무로 만든 건축물이 아니다. 돌이다. 단단한 돌이 나무를 희롱하고 있다. 목수는 울고 석공이 웃을 지경이다.
반띠아이 쓰레이는 1936년 외부 담벽에 있는 입구 탑에서 건축 기록이 발견되었다. 라젠드바르만 재위 때인 967년 4월 22일 완공되었다. 시바에게 헌정된 사원이다. 씨엠리업에서 북동쪽으로 34㎞ 떨어진 곳에 있다. 가는 도중 시골 풍경을 덤으로 볼 수 있다.
아름다운 꽃은 길가에 오래 피어 있지 못한다. 이 사원은 1914년 프랑스가 발견했다. 1924년까지 밀림이 울창하여 접근이 어려웠지만, 이미 전 해에 용감한 도굴꾼들이 훑고 갔다. 도굴범 중 일부가 붙잡혀 투옥되고 도난품 중 일부를 찾았다. 그 도굴꾼 중에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나중에 문화부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도 끼어 있었다. 사랑도 병적이면 해가 되나니. (*)
이 우 상 <소설가/ asdfs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