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 27일, 한국불교는 잠에서 깨어난 사자처럼 세상을 향해 크게 포효하였습니다. 한국사의 한 페이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역사의 한 단락’을 선명하게 썼다고 생각합니다. 위로는 오랜 경륜에서 나오는, 시절인연을 간파하는 통찰력과 강건한 결단력을 보여주신 총무원장스님으로부터, 아래로는 신실함과 그늘이 없는 밝은 얼굴을 온전히 보여주신 부산과 대구, 제주와 해남 등 각지에서 상경한 불자님들이 합심하여 역사적 족적을 남겼습니다. 근현대 1백여년 역사에서 이처럼 많은 불자들이, 이처럼 한마음 한뜻으로 한국불교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일은 최초이자 최대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난 대회를 되돌아보고, 우리의 포효가 세상에 어떤 울림과 파동으로 퍼져가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울림이 그 처음은 비록 불교에 대한 공직자의 차별적 행위에 대한 경책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파장은 본질적으로 공직자들에게,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통합과 상생’의 리더십을 요구하는 국민 보편의 공명으로 퍼져가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먼저 우리 내부를 돌아봅니다. 한국불교는 미군정과 정부수립이후 60여 년간 우리 내부를 정비하는데 온 역량을 집중해 왔습니다. 정화와 개혁, 법난의 연속이었고, 우리 사회와 국가를 돌아볼 겨를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군승제도는 군목제도 시행 20년 뒤인 68년에야 가능했고, 부처님오신날은 크리스마스의 국정공휴일 제정 이후 26년을 기다려야 했으며, 불교방송은 기독교방송 개국 36년 후에나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종교인구에 대한 일반적 통계에 비추어 볼 때에 매우 차별적인 일들이 벌어졌음에도 우리는 숨을 죽이고 우리의 정당한 주장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우리 불교 내부를 추스르는 일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조선500년의 도성출입금지와 탄압을 피해 사찰은 ‘산중으로 산중으로’ 더욱 깊이 숨어들어야 했고, 일제시대 한국불교는 전통의 복원이 이루어지기 전에 왜색불교와의 강제적 동화정책에 의해 왜곡되어야 했습니다. 이제 그 오랜 잠에서 깨어난, 아니 그 오랜 기간 불가(佛家)의 내부를 정비하고 가다듬어 온 저력이 세상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3.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한국불교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나갈 천재일우의 시절인연을 만났습니다. 이 기회는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사과를 받고 정교분리를 위반한 고위공직자를 징계하고 정교분리 입법조치를 이루는 것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불교도 내부의 마음의 변화에서 나온 것이며, 그렇기에 외부 환경의 변화는 주된 변수가 되지 못합니다.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진 우리 불교도들이 자신의 내면과 더불어 이제 사회의 고통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것이 이 ‘시절인연’의 가장 확실한 징표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이번 ‘시절인연’은 과거와도 근본적으로 다르며, 우리 사회의 다른 어떤 변화와도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경우가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이런 ‘시절인연’을 우리 내부에 체화하고 그 기회를 극대화 하며, 유용한 방편으로 삼기 위해서 우리는, 지난날의 우리를 성찰하고 참회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의제에 대해 불교적 가치를 담은 토론과 실천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못했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소중한 울림이 없지 않았지만 그 울림으로 우리 내면을 충일케 하지 못했습니다. 자비 즉, 사랑과 연민으로 우리의 이웃을 대하고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그 내면적 가치로 볼 때에 ‘상생과 통합, 생명평화와 열린 소통’의 전통과 문화의 담지자였지만, 그것을 외화하고 사회적으로 확장시키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사회변화에 따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높은 표준으로까지 우리의 조직체를 끌어 올리는 데에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이제 이 모든 것에 대해 크게 분발하여 한국불교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4.

이제 한국불교는 금년 하반기와 동안거를 거치면서 명년 춘삼월에는 대단히 새로워진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기초를 놓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조직과 교육입니다. 한국불교 사부대중은 오는 11월 12일 동안거 입제 전까지 전국 광역지역단위의 틀에서 사찰과 기관, 단체가 망라된 범불교조직화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각 광역지역별로 ‘규탄대회’가 아닌 ‘결의대회’, ‘보고대회’ 수준에서라도 불자들의 행동을 조직함으로써 조직적 활력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동안거 입제로부터 3개월간을 ‘범불교도 대학습 안거기간’으로 선포하고 대대적인 교육사업을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꾸준한 마음공부를 하였으므로, 내면에는 언제라도 보살도를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어디서부터, 무엇을 통해 보살도를 실천할 것인지 그 방법에 대해 큰 공부를 해야 합니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각성된 시민에 의한 자발적이고 자구적인 실천을 통해 날로 새로워지는 사회입니다. 정치권력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분명해 지고 있습니다.

불교도들은 이제 시민보살, 보살시민이 되는 길을 배워야 합니다.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헌법적 의미를 살피고, 불법의 절대평등에 기초한 인권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권리의식과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민족문화창달이 국가의 의무이듯이, 전통문화와 민족문화의 담지자인 불교가 그것의 일등 수호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모든 교육기관의 교육체계에 이에 연관된 교과과정을 필수과목으로 정해야 하며, 1만여 모든 사찰, 기관, 단체에서 이를 교육할 강사를 최단기간에 양성해야 합니다. 평생을 불교를 위해 헌신할 유능한 실천적 인재를 양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출가공동체의 안정화를 이루어 출가와 동시에 평생을 걱정 없이 수행과 교화에 헌신할 수 있는 재정적, 제도적 기초를 닦아야 합니다. 높은 사회적 투명성 지표에 버금가는 청정한 사부대중 공동체로 가꾸어 가야합니다.

5.

우리 사회는 정보지식사회입니다. 누구라도 조금만 시간을 내서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정보도서관을 뒤지고 다니면 어느덧 전문가 못지않은 전문가가 되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문화에 가장 접근되어 있는 청년이 깨어야 합니다. 청년이 무장해야 합니다. 청년이 행동해야 합니다.

청년불자들은 불교계의 입장을 사회적 언어로 전달하는 청년논객이 되어야 합니다.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는 ‘종교선택, 종교변경, 무종교의 자유와 신앙고백의 자유’로 구성되는 신앙의 자유가 본질적 가치를 지닌 상위의 기본권임을 자신있게 설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부 독선적 개신교지도자들이 주장하는 ‘종교단체의 선교나 신앙실행의 자유’는 그보다 하위적인 권리라고 논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담배를 피울 권리(흡연권)보다 그것으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을 권리(혐연권)가 더 상위의 권리라는 것은 상식입니다.

‘상대방이 듣거나 수용하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에 자신의 종교를 계속 전파하거나 강제로 받아들이게 하는 행위는 타인의 사생활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므로 불교계의 주장은 헌법상의 종교의 자유, 보편적 인권을 수호하려고 하는 것임을 알리는 나팔수가 되어야 합니다. 공직자(공무원)의 특정종교에 대한 찬양 혹은 비하,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정교분리의 헌법규정을 위반한 것이며, 그 결과는 종교차별이요 종교갈등일 것이라고 당당히 말해야 합니다. 정부를, 공공기관을, 공직을 선교에 이용한다는 전략을 가진 성시화운동은 정교분리의 헌법에 기초한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체제를 부정하는 전략이며, 신정일치의 중세시대를 꿈꾸는 망령된 계획이라는 것을 지적해야 합니다.

6.

많은 불자들은 아마도 현 정부를 ‘역행보살’로 생각하고 계실 것입니다. 역행보살도 ‘보살’입니다. 이제 우리 불자들이 조금 더 용기를 낸다면 역행보살을 ‘순행보살로’, 나아가 ‘원력보살’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 정부가 그렇게 크게 변화해서 대한민국을 크게 화합시키고 국민의 총화 속에 한 단계 성숙된 사회, 성숙된 경제로 발전시키는 ‘성공한 정부’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갈등,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갈등을 넘어서는, 아니 동양종교와 서양종교라는 거대한 신앙적 장벽조차도 허물어 버리는 사상적 저력을 우리 불자들이 보여줍시다.

지난 8월 27일 범불교도대회가 원만히 성취되기까지 불자여러분께서 보여준 성원과 동참, 정진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탁마의 현장에서 종종 뵙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前)범불교도대회봉행위 부대변인, (現)참여불교재가연대 협동사무처장 윤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