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섭 수행프로그램으로 널리 알려진 용타 스님의 50년 공부의 엑기스를 모아 놓은 책 <空-공을 깨닫는 27가지 길>(민족사)이 발간됐다. 연기가 공임을 이해하고(緣起故空), 방하는 공을 드러낸 것(放下顯空) 등 27개의 공리를 수록한 책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 책은, “읽어가다 보면 ‘아하’하는 깨달음이 오게 되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괴로움과 불행, 반목과 갈등은 본래 공한 ‘나’와 ‘세상’을 당연한 사실로 실체시하며 분별하고 시비하고 집착하던 것에서 온 것임을 깨달아 마음이 열리고, 자유로워지고, 지고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묘법이 담긴 ‘문자사리’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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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을 깨닫는 27가지의 길>을 출간한 '동사섭' 용타스님이 책에 대한 소회를 피력하고 있다.

올해로 세수 74세인 용타 스님은 불교계를 대표하는 수행프로그램 개발 및 현장 교육 시행자이다. 평생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선방이나 심심산골 수행처에서 은둔해온 수행자들과는 전연 다른 길을 걸어오신 분이다.

그런 용타 스님에게 특히 공(空)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용어이다. 공이란 절집에 오랜 인연을 가진 사람이라면 숭늉처럼 익은 말이며, 불교의 대표적 용어이자 전부라고까지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절집에 수십 년 다닌 이라고 할지라도 일단 공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대개 아연한 마음을 갖게 된다.

용타 스님은 공에 관한 한, 할 이야기 거리가 너무도 많은 분이다. 스님이 공을 만난 시점이 대학 2년 때였고, 그 후 공은 스님의 의식 속에 들어와 쭉 익어왔던 것이다. 그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자.

스님은 전남대 출신. 대학시절에는 일반철학을 주로 공부했다. 어느 날 과 친구의 반야심경 독경소리가 너무나 아름답고 좋아서 처음 만나게 된 ‘색즉시공’. 스님은 공의 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대해 결국 실참실수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고, 그 참맛 체득을 위해 출가를 결행했다. 그 당시 스님은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신자는 아니었지만 나름 기독교인이었는데, 반야심경을 만난 계기로 불교로 급전환하게 되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 의미만 알면 불교의 진리를 다 알게 되겠다는 확신이 그때 들더라는 것이다.

이후 스님의 화두는 ‘색즉시공’이었다. 무조건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공일까? 곰곰이 사색하고 몰입하는 식이었다. 그러기를 한 2개월, 대학생이었던 당시 스님은 색즉시공의 의미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했다. 대학교 2학년 여름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어떤 소리를 듣고 ‘색즉시공’에 대한 의문이 풀린 것이다. 그러나 이 해결은 ‘이러이러 하므로 색이 공하구나’ 하는 논리적 사고를 통한 해결이었다.

“그때의 내 상태는 내 의식공간에 긍정적 차원의 난리가 일어난 것이었지요. 우주가 딱 두 쪽이 난 것이라고 할까, 아니면 내 몸을 둘러싸고 있던 투명보자기를 확 벗어버린 시원함이라고나 할까.”

불연이 깊었던지, 마침 철학과에 한 친구가 중노릇하다가 들어왔다. 그는 청화스님 문하에서 행자를 하다가 온 사람이었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용타 스님에게 “나의 스승 청화 스님 만나면 너는 딱 중이 될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말만 내면 청화, 청화 하길래 한편으로는 어떤 스님이기에 저렇게 입에 달고 살까 하는 궁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화스님이 당신의 제자를 보러 자취방에 나타나셨다. 청화스님을 처음 본 느낌은, 나이가 40남짓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눌수록 고개를 숙이게 하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음을 오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용타 스님은 그런 청화스님을 “내 인생에서 청화스님은 거목 중의 거목, 거산 중의 거산”이라고 표현했다.

아무튼 그날, 과 친구와 청화스님, 셋이 오랜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과 친구가 잠이 들어, 청화스님과 단 둘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찾아왔다. 용타 스님은 이 때다 싶어서 꿈속에서 나름대로 해결한 색즉시공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이야기를 경청하던 청화스님의 반응은 “그것은 증오(證俉)가 아니라 해오(解悟)입니다”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용타 스님은 “내가 해결한 색즉시공은 별게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에너지가 한꺼번에 쫙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던지, 청화스님은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색즉공을 그 정도로나 느낀 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출가 이후 스님에게는 불교교양대학에서 부처님일대기를 강의할 기회가 생겼다. 이 강의는 스님의 삶에 큰 변곡점을 가져다 준 계기가 되었다. 1989년 경 도법 스님이 금산사의 부주지 소임을 맡고 있을 때 전주에 화엄불교대학을 만들었는데, 당시 지리산 백장암에서 정진하던 스님을 찾아와 부처님 생애를 강의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름 자신을 갖고 있었지만 막상 부처님 일대기를 주제로 강의를 하려고 하니까, 부처님 생애에 대한 지식은 한 두 시간 강의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부처님 생애를 제대로 공부하게 되었고, 그 공부하는 과정이 얼마나 즐겁고 좋았는지 모를 정도였다. 스님은 부처님의 생애 강의를 하면서 자신의 몸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흠뻑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인도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다. 스님은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제1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마하보디대탑의 금강보좌를 보면서 ‘정각의 메카니즘’이 무엇일까에 대해 깊은 사색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확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부처님은 선정의 끝을 보고 그 길을 제쳤고, 고행의 끝자락을 체험하고 그 길을 제쳤습니다. 다 제쳐버리고 대각지에 가서 한 것은 무엇일까요. 고행도, 선정도 아닌 사유였습니다. 내가 죽는다, 죽기 싫다, 내가 죽는다, 죽기 싫다. 하다가 나란 무엇인가를 철학적 테마로 떠올렸고, 그 다음에 나에 대해 사색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요. 그것은 바로 사유였습니다.”

용타 스님은 부처님께서 부다가야의 마하보디대탑 옆 금강보좌에서 행한 것은 사유였음을 강조했다. 사유를 하다 보니 나라고 하는 존재가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연기적인 존재이구나 하는 것이 확연해진 것이며, 여기서 연기, 즉 공을 깨달은 것임을 현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연기를 깊게 체험하면서 구획 지어졌던 자아감이 사라지고, 시원해져버린 것! 죽어야 할 내가 본래 없고 죽기 싫어하는 존재가 본래 없다는 것! 연기를 깨닫고 무아가 수긍되어 자아를 실체 시 하던 집착심이 사라지면서 니르바나가 다가온 것!

용타 스님은, 대학 때 색즉시공에 대한 의문을 나름대로 해결한 것이나, 부처님 정각지에서 사색을 통해 느낀 연기, 즉 공에 대한 확신이나 모두 해오의 범주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거침없이 이렇게 답했다.

“맞습니다. 해오입니다. 한국불교가 살려면 이 해오를 살려내야 합니다. 석가모니께서 깊은 사유를 해서 뚫어낸 진리, 경지를 우리도 해오를 해서 3개월 안에 모두 아라한이 되어야 합니다. 불교의 요체인 공을 잘 알아야 하고, 연기, 공, 해탈의 아주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가르침을 이해해야 합니다. 불교는 깨닫고 보면 너무 상식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불교의 것이 아닙니다. 모두를 위한 가르침이지요.”

크게보기“이번에 펴낸 신간 <空>은 바로 해오를 위한 책”이라고 밝힌 용타 스님은 해오와 증오의 차이에 대해서도 간단히 정리했다.
“증오는 해오의 내용을 반복해서 관하여 얻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능엄경에 이즉돈오(理卽頓悟) 승소병제(承消倂除) 사비돈재(事非頓除) 인차제진(因次第盡)이라고 밝힌 이치는 단박 깨달음이라 깨달음을 타고 아울러 녹이지만 일을 당함에 단박에 없어지지 않음으로 차례를 밟아 다스려야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부연했다.

이어 스님은 마치 할처럼 이렇게 강조했다.

“한국불교가 역동적으로 살아나려면 해오가 살아나야 합니다.” 120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