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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쥐 잡을 때의 몰입도 집중?<br>“NO, 번뇌를 벗어나게 해야 바른 집중”

이학종기자 | urubella@naver.com | 2014-06-16 (월) 18:33

선정 이상을 체험한 스님들이 네 나라에서 모여 법석을 열었다. 미얀마, 티베트, 중국, 한국에서 각자의 고유한 방법으로서 선정을 체험한 스님들이 한 자리에서 집중, 즉 선정 수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질의응답을 받는다는 소식에 위빠사나 수행자를 비롯한 5백여 사부대중들이 지난 토요일(615) 오후 2, 서울시청 다목적 홀을 가득 메웠다.

이 행사를 주관한 보리수선원 붓다락키따 스님은 부처님 법을 실천하는 방법은 다르더라도 그 깊은 맛은 같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붓다락키따 스님은 대다수 사람은 나누고 가르고 구별하고 분별하는 것은 잘하는데 같다는 것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 것 같다오늘 이 자리에 오신 네 나라 스님들은 국적은 다르지만 집중의 상태에서는 그런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님은 집중일 때는 불교,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 유교는 어디에도 없고 오직 행복과 평화만 있다대다수 사람들이 집중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면 가정사회나라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이런 날이 바로 오늘부터 시작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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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시작된 좌담회. 순다라 삼장법사 스님(미얀마), 겐뒨샤꺄 스님(티베트), 밍셴 스님(중국), 원담 스님(한국, 진주 도과선원장)을 대상으로 실시간 모바일을 통해 객석에서 질문을 올리고, 가장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질문을 중심으로 붓다락키따 스님이 좌담의 사회를 이끌었다. 붓다락키따 스님은 특유의 간결하고 명료한 물음으로, 때론 집요하고(순다라 삼장법사에게 경율론 삼장의 내용의 암송을 요구하는 등), 때론 유머러스한 멘트로 6시간에 걸친 긴 좌담회를 놀라운 집중력을 유지시키며 진행하는 솜씨를 보였다. 즉문즉설식 좌담회의 특성상 일목요연하지는 못했으나, 펄펄 살아 숨쉬는 담마토크의 맛을 보여주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법에 대한 질문과 답변, 보다 깊은 질문과 수행체험 소개 등. 기존의 한국불교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들이 6시간에 걸쳐 진지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토요일 오후에 크게 선전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700석 다목적 홀을 사람들이 거의 채운 이유가 바로 여기, 즉 펄펄 살아숨쉬는 담마의 향연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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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선원 붓다락키따 스님이 사회를 보며 '바른 집중을 말하다' 4개국 스님 초청 좌담회를 이끌고 있다.


바른 집중을, 스님들의 나라에서는 어떻게 표현하시는지요?” 붓다락키따 스님의 첫 질문은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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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에서는 바른 집중을 띵엔진이라 하고, 이것은 선한 마음을 깨치는 집중을 말한다는 답변, 미얀마에서는 쌈마사마디라고 하고, 삼마는 죄가 없다는 뜻이라는 답변, 중국에서는 바른 집중을 선정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그냥 바른 집중이라고 부른다는 답변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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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락키따 스님은 네 스님의 답변을 경청한 후 이렇게 말은 다 다르다. 그렇다면 집중이라는 것도 다른지 묻겠다. 바른 집중이라는 것이 필요한가요? 출가자에게는 필요하겠지만 시장사람들이라든지 일반인에게 필요한가요?”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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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겐뒨샤꺄 스님은 바른 집중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바른 집중이 없으면 큰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답했고, 이어 순라라 삼장법사 스님은 바른 집중운 출자가이든 재가자이든 다 필요하다. 일반인들도 마음집중이 있어야 사업이든 어떤 것에든 성공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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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셴 스님은 만약 선정이 있으면 훨씬 좋을 것이고, 특히 번뇌와 괴로움에 벗어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더욱 필요하다고 답했고, 원담 스님은 모든 사람에게 선정이 필요하다. 바른 선정과 바르지 않은 선정이 있다. 보통사람들은 몰두하는 것이 선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로또나 주식에 몰두하는 것은 바른 선정은 아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지혜를 위해서는 반드시 올바른 집중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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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 스님의 답변을 차례로 들은 후 붓다락키따 스님은 그렇다면 그릇된 집중과 바른 집중이 있다는 것인데, 바른 집중이라면 그릇된 집중의 차이점에 대해 말씀을 청한다고 재차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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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다라 삼장법사은 집중엔 두 가지가 있는 데 바른 집중 바르지 못한 집중이 있다. 안 좋은 집중에 대해 이야기하면 살생할 때 고양이가 쥐를 잡으려고 노려보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살생을 위한 집중은 좋지 않은 집중이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성행위를 하거나 마약 등에 취하거나 하는 것에 노력하는 집중은 올바르지 않은 집중이라고 해야 한다. 바른 집중은 자기가 하는 행동이 자신을 위하여, 또 남을 위하여 다 좋은 집중을 말한다. 예컨대 봉사를 하거나 모든 행위가 누구에게나 해가 없이 좋은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것, 그런 방향의 집중이 바른 집중이다. 마음을 위해 호흡을 하는 것도 바른 집중이라고 해야 한다. 쌈마사마디라고 해야 한다. 그릇된 집중은 올바른 집중이 아니며,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마침내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는 집중이라야 올바른 집중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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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원담 스님은 집중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본인의 심리 안정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말씨와 행동, 행복감이 많이 다르다. 집중이 되었을 때는 금방 몸과 마음이 차분히 안정되고, 그 안정된 마음으로 무엇을 하던 지간에 바르게 된다. 자유자재로 융통성 있게 세상을 바꿔갈 수 있을 것이다. 저 같으면 집중이 있으면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수행하고 가르칠 수 있다. 이해도 잘 되고, 기억도 잘되고, 시간도 배분이 아주 잘 되기 때문에 일상 생황도 아주 잘 된다. 밥먹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모든 것이 아주 잘 된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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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셴 스님은 사회자가 집중이 없었을 때는 어떻게 해결해나갔는지를 물었는데, 저는 마음이 굉장히 산란하면 우선은 가만히 앉아있는 것(좌선)으로 해결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산란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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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락키따 스님은 겐뒨샤꺄 스님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집중이 없었을 때를 언제 알았는가? 바로 알았는가? 한 참 후에 알았는가? 아니면 지금 제가 물으니까 알았는가
?”

겐뒨샤까 스님은 이때까지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마음이 산란했을 때에는 제가 바깥의 경계, 즉 육근을 따라갔었을 때였다. 그런데 제가 육군에 따라다지지 않고 마음을 안정시키면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았다. 특히나 오근 중에서 귀에 대한 것(耳根)이 중요한 데, 사회자가 물었을 때 집중이 잘 되었다. (웃음) 그래서 귀의 식, 즉 이식의 상태에 의지해서 의식으로 전달할 수 있어서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다
.”

어느 정도 워밍업을 거쳤다고 생각했는지, 붓다락키따 스님은 청중들이 모바일을 통해 올린 질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공동의 질문을 본격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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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에 대해 한 분의 질문을 중심으로 묻겠다. 제가 가진 꿈이라는 이상과 경제라는 현실에서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요? 원하고 바라는 대로 현실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스님들의 견해는
?”

원담 스님이 먼저 답했다. “이런 질문은 누구나 가진 질문이다. 어디서나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그 답을 다 알 것이다. 자기가 자기의 이상, 실현시키고 싶은 꿈이 있다면, 상상 속에서 실현시켜볼 수 있을 것이다. 상상 속에 실현시켜보라. 비컨대 200살 까지 살아보고 싶고, 돈을 많이 벌어보고 싶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런 가운데 혹시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꿈을 이루어지지는 않았는지, 그 꿈을 이루었을 때 과연 모든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지. 또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을 때 우주가 축복해줄 런지를 생각해보라. 그러면 자기의 꿈을 좀더 냉철하게 돌이켜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이 욕구불만에서 나온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욕구불만에서 나왔다면 그 원인은 자기에게 있다. 그 꿈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나만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 꿈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예를 들자면,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꿈을 가져야 한다
.”

겐뒨샤꺄 스님은 사람마다 다양하게 원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번 생에서 여러분들이 더 높은 지위와 자리를 얻을 수 있으려면 먼저 그 조건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결과를 얻으려면 먼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여러분이 사업을 하거나 정치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먼저 그 원인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성취는 현생의 것일 뿐이다. 만약에 여러분 중에서 다르마(담마), 즉 법의 문제, 해탈의 문제, 부처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우선 그 원인을 갖추어야 한다. 오랜 세월 동안 그 원인을 갖추어야 한다. 석가도, 많은 스승도 다 그렇게 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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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질문은 집중의 방법 쪽으로 옮겨 갔다. 붓다락키따 스님은 어떻게 해야 집중할 수 있는가? 선정에 들려면 어떻게 집중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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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순다라 삼장법사 스님은 집중은 세간의 집중, 세간을 벗어난 집중이 있다. 세간의 집중은 자기가 하는 일을 하면서 생각하면서 바르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집중을 하면서 하는 것이다. 자기의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면서 조금씩 마음의 집중을 해나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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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락키따 스님이 추가로 질문했다. “그러면 누구나 다 집중에 들 수 있는가? 여기서 집중은 일반적 집중이 아니고 보다 더 깊은 집중을 말한다
.”

순다라 삼장법사 스님은 누구나 집중을 얻을 있다. 그러나 두 가지가 있다. 믿음이 있어야 하고, 노력이 필요하다. 매일매일 호흡하고 명상을 하면 누구나 집중을 얻을 수 있다. 집중은 누구나 얻을 수 있더라도 절대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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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평론 2014-06-16 23: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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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쥐 잡듯이 집중한다는 말은 집중한다는 말에 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있는 불성에 마음이 가 있으면 얼굴에 달린 눈이 고양이가 쥐 잡듯하는 눈의 자태가 되는 것이다. 그 말 뜻을 모르고 귀와 눈에 다가온 말만 집착하면 저 본문 제목처럼 NO하고 답할 것이다. 그 사람은 집중이라는 말 때문에 집중의 본질을 잃고 있는 사람이다. 옛 사람의 말의 언구에 떨어져 있는 동안은 어떤 집중도 또 어느나라 명상법에 있는 집중법도 바른 집중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불은 언어는 다르지만 모이는 것은 하나다. 그 하나가 실체가 없는 것이어서 금강경에서는 상이 없다고 한 것이다. 이 세상에 어느 명상이나 집중법도 이 길을 벗어나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도가 아닌 것이다. 도는 옛이나 지금이나 여러 개가 없다. 다만 그 접근하는 사람이 다르게 하고 있을 뿐이다. 저런 잡된 이론을 그럴 듯하게 늘어 놓으면 뭐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른 길로 들어가는 데는 큰 장애인 줄 알아야 한다. 다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른 스승을 만나 바른 믿음을 기르는 일이다. 믿음이 바로 서면 마침내 불성을 체험해 길이 열린다. 이 때는 보는 것, 듣는 것, 하는 것마다 집중 뿐이다. 두가지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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