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불편한 점도 있을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닙디다. 서로 부족한 점을 메워주는 환상의 콤비라고 할까요. 마하야나(대승불교)와 테라와다(상좌부불교)가 서로의 장점을 살려 공존하는 한국불교의 미래모습을 저희가 미리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라와다 뺜냐완따(인법) 스님)
“빤냐완따 스님에게 정말 많이 배웁니다. 그래서 전 같이 사는 게 참 좋습니다.” (정원 스님)
“성불암에서 두 불교전통이 함께 공주하는 것은, 지금은 우리 두 스님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이 모습이 미래 한국 승가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예견된 모습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빤냐완따 스님)
“맞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대승과 상좌부 불교는 옷만 틀린 것 같아요. 앞으로 한국불교도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정원 스님)
“맞습니다. 저도 테라와다 스님끼리만 결집해서 살아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대승의 스님들과 한 데 어울려서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법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빤냐완따 스님)
성남의 한 작은 암자에 20안거 이상을 성만(盛滿)한 수좌스님과 미얀마에서 계를 받은 테라와다 스님이 함께 살고 있어 화제다. 서로를 잘 인정하지 않거나 낮은 불교로 보는 ‘어색한 관계’로 알려진 두 불교전통이 한국의 한 암자에서 공주(共住)의 시험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두 스님이 머무는 성불암의 모습 또한 흥미롭다. 기존 한국사찰이 가진 모습을 온전히 갖추고 있으면서도 도량 곳곳에 니까야(초기불전)의 아름다운 가르침들이 걸려 있다. 한 스님의 방에는 대승의 경전이, 또 한 스님의 방에는 니까야 관련 불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뿐만이 아니다.
성불암에서 사용하는 테라와다 관련 경전 집에는 앞에는 대승의 경전에서나 볼 수 있는 ‘개경게’가 게재되어 있다. 두 종교전통의 아름다운 조화가 아닐 수 없다.
다 알다시피 한국불교에서 테라와다(상좌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는 중이다. 대승과 소승으로 구분되어 서로를 애써 폄하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태도로 우월성을 강조해온 그동안의 갈등은 한국불교계에서 조금씩 힘을 잃고 있다.
테라와다 전통을 따르는 한국인 스님들이 늘어나면서 지난 2008년에는 정식으로 한국 테라와다 교단이 사단법인 허가를 받으며 출범하기도 했다. 남방불교 전통에서처럼 테라와다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수행하는 교단시스템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20명 안팎의 테라와다 스님들은 각 곳에 수행 장소를 마련하고 대중 교화와 수행지도에 나서고 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이들의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은 참선 중심의 한국 불교교단이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테라와다 불교에 대해 완전하게 가슴을 연 것은 아니다. 제방의 이름난 선사들은 여전히 간화선만이 최상승법임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고, 일부 스님들 사이에서는 불자들이 테라와다 불교에 관심을 갖거나 테라와다 수행을 하고 있는 것에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시절인연의 흐름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법. 조금은 어색해 보이는 동거이기는 하지만, 또 여러 가지 한계와 역량의 부족을 체감하고 있지만, 한국 테라와다는 어느 새 한국불교에서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재가의 수행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테라와다 불교 수행을 선택해 정진하고 있는 것이 도처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될 정도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선불교 전통을 고수하며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수좌 스님과, 남방의 테라와다 불교를 수행하고 있는 상좌부 스님(한국인)이 한 공간에서 공주(共住)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모자람이 없다.
안거 때마다 선방을 찾아 빠짐없이 정진을 해오고 있는 정원 스님(수좌)과 미얀마로 출가해 테라와다 불교에 귀의해 남방불교의 스님이 된 빤냐완따 스님(한국법명은 인법).
두 스님 모두 한국 테라와다의 최고 지도자(종정 격)인 태종사 도성 스님을 은사로 지난 1994년, 비슷한 시기에 출가했다. 그리고 두 스님은, 1998년부터 한 분은 선방으로, 한 분은 미얀마로 건너가 테라와다 불교의 스님이 되어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다. 수행법도, 승복도, 의식도, 심지어 주요 경전조차 달리하는 두 스님. 두 스님은 지금까지 10년 가까이 이곳에서 함께 정진하고 있다. 정원 스님이 선방으로 안거를 떠난 6개월(동, 하안거 각각 3개월씩)과 빤냐완따 스님이 한국선방의 ‘산철’에 미얀마나 인도를 유행하면서 공부하는 기간 한 두 달을 제외한 나머지 4~5개월은 두 스님이 함께 성불암에 머물면서 서로를 탁마하는 기간이다.
다른 불교전통을 좇고 있지만, 서로 탁마하며 수행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두 스님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빤냐완따는 지혜의 종족(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스님은 태종사에서 출가한 이후 행자생활을 거쳐 계를 받았고, 해인강원을 잠깐 다녔다. 그러다가 뜻한 바가 있어 미얀마를 찾아 테라와다 교단에서 다시 계를 받고 테라와다 교단 소속의 스님이 되었다.
정원 스님은 해인사 강원을 마친 후 안거 때마다 줄곧 제방의 선원에서 참선 정진 중인 전형적인 수좌다. 주로 작은 규모의 선원을 찾아 정진하고 있다.
빤냐완따 스님은 미얀마에서 수행을 체험하고 계를 받기는 했으나(1998년), 진정으로 불교를 이해하고 정진을 한 것은 2001년도에 인도를 순례하면서부터다. 부처님의 행적을 따라 불교유적지를 순례하면서 빤냐완따 스님은 부처님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자신의 삶이 지향해야할 목표를 비로소 찾았다. 부처님의 나라 인도 순례를 마친 후에는,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를 찾아 현존하는 불교의 모습을 체험하고는 수행자로서의 마음을 더욱 단단히 했다. 인도와 스리랑카를 다녀온 후 경주에 있는 마하보디선원에서 혜조 스님(야냐로까 스님)으로부터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지난해 돌연 입적한 아냐로까 스님은 빤냐완따 스님에게 잊을 수 없는 스승이다.
야냐로까 스님으로부터 “이제부터 한국에서 테라와다 불교를 일으켜 부처님의 원음을 전하며 큰 은혜를 갚자는 당부, 그리고 국내에서 테라와다 결집을 해보자”는 원력의 말씀을 듣고 동참을 결심했다. 이후 이를 위해 보리수선원 등 국내 테라와다 수행처를 돌며 정진했고,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 이사장(총무원장 격) 빤냐와로 스님(진용스님)을 만나 역사적인 교단 설립에 힘을 보탰다. 한국테라와다는 지난 2008년에 발의해서 그 해 말에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실로 한국에서 테라와다 교단이 출범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테라와다 스님들과 함께 빤냐완따 스님은 테라와다가 기존의 한국불교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즉 청량제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스님은 전법을 하면서 의외로 많은 재가자들이 테라와다에 대한 관심과 여망을 갖고 있으며, 한국불교가 변화해야 한다는 흐름이 그들의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 확인했다. 그리고 그 변화에 테라와다 불교가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성불암에서의 빤냐완따 스님의 일과는 스님이 공부했던 미얀마 마하시 명상센터의 수행시간표를 그대로 가져다 지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종치고, 예불하고, 좌선 1시간 정도 하고, 날 밝아지면 도량청소하고, 죽 한 그릇 먹고, 신도들 수행상담하는 것으로 오전 시간을 바삐 보내고, 공양을 한 후 오후 시간에는 철저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성불암 뒷 산에 지어놓은 토굴이 스님의 오후 수행처다. 스님은 이곳에서 책도 보고 좌선하며 지낸다.
어쩌면 테라와다 불교는 한국불교의 현실에서 매우 필요한 흐름이자 신선한 피의 수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불교가 현대사회에서 제대로 역할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테라와다는 새불교 운동의 단초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두 스님은 “한국불교의 기존의 수행법을 유지하고 계승하고, 근거를 더 찾아서 보완발전 시켜야 하고, 동시에 부처님께서 실제로 하셨던 수행법들을 한국불자들에게 알리고 직접 실천하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빤냐완따 스님과 정원 스님은 요즘은 조계종의 변화에 대해서도 매우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교육체계가 혁신적으로 바뀌고 있는 조계종에 기대를 걸 만하다는 것이다. 특히 법보종찰 해인사 승가대학에서 초기불교를 커리큘럼에 포함시키고, 교구본사인 고창 선운사에서는 초기불교대학원을 설치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테라와다 수행을 하고, 또 전하는 것은 우리 한국불교의 수행전통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한 대안으로서 역할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원 스님은 실제로 한국 선방에서 테라와다 수행법의 점검 프로그램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예전에는 선문답도 더러 있었는데 이제 그런 것들이 대부분 사라졌고, 소참법문도 찾아보기 어려워 졌으니, 테라와다 수행법의 문답이나 점검 시스템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빤냐완따 스님은 테라와다 불교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테라와다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이념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며 “테라와다 불교의 이념은 부처님께서 정하지 않은 새로운 가르침을 만들지 않는 것, 부처님께서 이미 정하신 원칙을 없애지 않는 것, 그리고 부처님께서 일찍이 설하신 계율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