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좋아했던 소년이 있었다. 그가 어린 나이에 붓을 들고 글자를 쓰게 된 것은 재야 서예인으로 활동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에서 비롯됐다.

서예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소년의 아버지는 지방에서 활동하셨던 향토 서예가이자 학자였다. 전라북도 김제의 향교에서 전교를 역임했고, 지방서예전 초대작가로 언제나 초빙되곤 했다. 이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때부터 ‘가갸거겨~’를 당신이 직접 붓글씨로 써서 교재로 삼았다. 그렇게 김제 출신 소년의 서예 인생은 시작됐다.

아버지로부터 붓잡는 것을 배웠던 터라 이 소년의 솜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의 서예반을 담당하셨던 소암 강정근 선생으로 본격적으로 서예 수업을 받았다. 소암 선생은 방과 후 매일 2시간 씩 서예 공부를 시켰다. 처음에는 제법 몇 사람이 공부를 시작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소년과 소암 선생의 아들, 두 사람만이 남았다.

이후 소년은 거의 독학으로 서예공부를 해왔다. 이따금씩 전문가에게 묻고 싶기도 했지만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스승을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도 그는 신문사 등에서 주최하는 서예대회에 작품을 출품해 상을 받았다. 워낙 기조가 튼튼했던 터라 남다른 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바로 오늘날 사경(寫經)을 정립하고 보급하며, 특히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는 외길 김경호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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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을 불교의 주요 수행법으로 대중화시키고 있는 외길 김경호 선생.


외길은 김제북중학교 3학년 때 〈소년조선일보〉가 주최한 ‘소년조선일보문예상’ 대회에서 서예부문 월장원을 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소년 외길의 글씨를 보고 이렇게 평했다.

“중국 당나라 초기 3대 명필의 한 사람인 구양순이 쓴 예천명체를 확실히 익힌 반가운 솜씨이다. 기본 필법이 바를 뿐만 아니라 결구(글자의 짜임새)도 잘 되었고 낙관 글씨의 잔 글씨도 매우 훌륭하다. 차작(어른이 써준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이다. ”

이후 소년 외길은 출품하는 서예전마다 수상을 하며 실력을 갈고 닦았다. 외길은 이 무렵부터 사경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동아일보〉 주최 대회에서 공동 1등을 하기도 했다. 고교시절에는 불교에 심취하여 선승이 되고자 출가도 했다. 세번이나 부모님께 붙들려 내려왔고, 출가는 포기한 후 대학에 진학해 국문학을 전공했다. 그 와중에 한 번도 서예와 사경에서 멀어진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그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었다. 1997년도에 불교사경대회가 처음으로 조계종 주최로 열렸는데 그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것이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여초 선생은 자신의 제자들을 제끼고 외길의 작품을 대상에 선정했다. 외길이 여초 선생을 잊지 못하고 평생 존경과 감사로 지낸 이유다. 외길의 한글 글씨를 본 한글궁체의 대명사 꽃뜰 이미경 선생도 '한글궁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며 외길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아 주셨다. 외길은 이렇게 사경의 울타리 안으로 자신의 삶을 들여보냈다.

학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여 여러 문학상도 받았지만 외길의 인생은 사경전문가로 향했다.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사경을 전공해 문학석사를 받았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1회 불교사경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후 15회에 걸쳐 전통사경 개인전 및 초대전을 가졌다.

그는 이제 공부를 하고 작품을 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전통사경을 가르치는 교수의 입장이 되었다. 동국대 사회교육원, 불교문화센터 등에서 전통사경을 강의했고, 불교텔레비전에서 사경수행법을 강의했다.

그의 작품은 한국은 물론 외국의 저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CA클레어몬트 링컨대학교 불상 복장에 전통사경작품 등 다수의 외길 작품이 봉안되었고, LA카운티미술관에서 전통사경을 특강하고, 금니사경 제작을 시연하는 등의 해외 활동을 활발히 펼쳤고, 펼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보니 세계적인 박물관인 NY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다수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에서도 외길의 전통사경 작품을 보관하고 있다. 그의 열정적인 전통사경 선양 및 보급에 감동한 뉴욕 퀸즈 자치구 의장은 ‘2012년 10월 12일’을 ‘외길 김경호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현재는 대한민국 전통사경 기능전승자(고용노동부 지정)로, 한국사경연구회 회장으로, 그리고 각종 공모전 및 사경부분 대회에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누구도 본격적으로 걷지 않았던 전인미답 전통사경의 길에, 그 외롭고 고단했던 길에, 이제는 많은 제자들이 도반이 되어 함께 걸어가고 있다. 그의 노력으로 전통사경에 대한 이론적 기초가 완성되었고, 사경은 주요 수행법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외길의 그야말로 고군분투가 그 바탕에 있었던 것이다.

외길은 이미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연구와 정진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불교계는 사경이 전법과 기도의 수행법이며, 사경 그 자체로 선정과 보시와 염불, 간경과 인욕, 정진과 지혜라는 육바라밀행의 실천이며, 나아가 예술과 학문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랐으니 이제 쉬엄쉬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련도 하건만,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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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 김경호 선생과 함께 전통사경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도반들과 스승들.


지난 8월 20일 외길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작은 축하모임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자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크고작은 도움을 준 고마운 분들과 함께 전통사경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도반들이 함께 했다.

이날 모임은 비록 그의 ‘전통사경 교본 시리즈 제1권인 〈반야바라밀다심경〉과 〈108기도 반야심경〉(2권 1세트)의 출판기념회였지만, 그가 혼신을 다해 일궈온 전통사경을 세상에 널리 보급하는 힘찬 출범식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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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 김경호 선생의 '전통사경 교본 시리즈 제1권 '반야바라밀다심경'과 '108반야심경' 사경책.


그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날이기에 외길은 이날 출범식 자리에 고향 김제에서 밭농사를 짓고 있는 노모를 서울까지 모셨다. 또 그에게 가르침과 용기를 주었던 스승들을 대표해 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신 박환배 선생님을 모셔 감사의 꽃다발을 각각 증정했다.

그의 장도를 축하하기 위해 이태녕 한림원 종신회원(서울대 명예교수), 나정환 박사, 황기인 박사, '월간 서예' 최광렬 사장, '월간 서예문화' 문선 사장, '월간 서예문인화' 이홍연 사장 등 서예계의 인사들과, 후원을 아끼지 않아준 김명림, 모정자, 김종송 선생 등이 함께 자리를 빛냈다.

"전통사경교본 편집은 12~3년 전에 처음 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작년부터 교본제작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전통사경 교본시리즈는 이번 첫 권인 ‘반야심경’을 시작으로 50~100권 사이로 낼 예정이다."

외길은 자신의 포부를 밝히면서 사경 인생의 등불이 되어주셨던 스승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인사를 마쳤다.

“고 장충식 동국대 교수, 박상국 선생(한국문화유산연구원 원장),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 고 김상현 동국대 명예교수,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영국인), 동국대 역경원 최철환 선생, 월운 큰스님(전 역경원장), 도영 큰스님(전 조계종 포교원장), 불교중앙박물관 개관 1주년 초대전에서 명 축사를 해주신 고 지관 큰스님(전 조계종 총무원장)…”

스승의 이름을 기억해내며 부르는 외길의 눈에 사경대중화의 원력을 담은 맑은 물기가 고였다.

“앞으로의 계획은 교본작업에 집중하고, 또 전통사경을 세계 속으로 나아가게 하는 길에 중점을 두겠다. 또한 전통사경의 이론적 정립을 위해 연구해온 성과들을 정리해 책으로 출판하는 일을 하겠다. 그리고 또 하나 '법사리' 작품(전통사경 작품)들을 여법하게 봉안하는 ‘법사리탑’ 건립과 ‘사경원’ 설립 등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발 한 발 정진해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