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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외벽에 그려진 심우도의 의미는?

| | 2009-02-17 (화) 10:29

문; 지난 일요일 가족과 함께 운문사에 다녀왔습니다. 법당 참배를 마치고 밖에 나와 도량을 돌다 보니 벽마다 소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헤아려 보았더니 열 면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무슨 의미가 깃들어 있을까요?

답; 심우도(尋牛圖)를 보신 것 같습니다. 그 그림은 심우도(心牛圖), 목우도(牧牛圖), 십우도(十牛圖)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지요. 대표적으로 중국의 곽암(廓庵) 스님과 청거(淸居) 스님의 그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주로 곽암 스님의 그림이 많이 알려져 있지요. 그러면 심우도의 각 그림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할까요.

(1) 심우(尋牛): 소년이 소를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소를 왜 잃어버렸는가 하는 원인에 대한 규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먼저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자각하고 찾아나서는 것이 급선무이지요. 마치 화재가 났을 때, 방화범은 누구이며 피해액은 얼마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우선 불을 꺼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과연 무엇이 가장 급선무인가를 파악하고 실천해야 함을 알려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견적(見跡):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의 발자국은 결코 소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소 발자국을 보고 소를 찾은 양, 도중에 안도해 버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어떤 목적을 향해 가다가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고 쉽게 안주하듯이 말이지요.

(3) 견우(見牛): 소의 모습을 겨우 발견하고 뛰어갑니다. 진리와 목표를 추구하고 노력하면 마침내 이루게 된다는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4) 득우(得牛): 소년이 고삐를 힘껏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비로소 소는 붙잡았으나 그동안 소는 이미 야성(野性)에 물들어 좀처럼 소년의 말에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소라는 확신이 있으므로 소년이 쉽게 포기하지 않듯이, 우리에게 불성이 있음을 믿기 때문에 비록 당장 결과는 보이지 않더라도 정진을 멈추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5) 목우(牧牛): 소를 길들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단계에는 득우에서와 같은 갈등은 이제 사라졌으나, 아직 고삐라는 제약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서로 조화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소년이 소 등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때는 서로가 서로를 이미 구속하지 않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과연 소년이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소가 소년을 태우고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매사를 일방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때로는 상대의 입장에 서서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7) 망우존인(忘牛存人): 소는 보이지 않고 소년의 모습만 있습니다. 실은 소는 내 본성을 찾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금강경(金剛經)󰡕에 보면 부처님은 당신의 설법을 ‘강을 건너기 위한 뗏목’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부처님은 당신의 말씀만이 오직 절대적인 것이라고 고집하신 분이 아니시지요. 병이 나았으면 더 이상 약이 필요 없듯이 뗏목은 강을 건너기 위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라는 의미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사람도 소도 없어지고 단지 둥그런 원(圓)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원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동안 원을 보지 못했던 것은 소년과 소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이 어떠한 존재라도 그것을 인식할 때만이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변 일에 정신이 팔려서 진정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지는 않는지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여 어떤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텅 빈[空] 세계인 점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꽃피고 새가 지저귀는 우리들 주변의 자연을 그렸습니다. 우리가 본성을 되찾았을 때, 그 배후에 있던 자연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지요. 즉 자연은 그 어떤 대상에게도 분별과 차별을 하지 않고, 아무런 꾸밈도 주관도 없는 본연의 모습 그대로 존재해온 것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대상에 따라 태도를 바꾸고 온갖 가식을 동원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10) 입전수수(入鄽垂手): 포대 화상(布袋和尙)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노인이 소년에게 무언가를 베풀고 있습니다. 즉 중생제도를 위해 거리로 나와서 이타행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불교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깨달음의 완성은 바로 중생 교화에 있는 것이니까요.

전체적으로 정리해 보면, 심우도는 우리들의 가슴속에 노닐고 있는 한 마리의 소(본성)를 찾아내고 그것을 잘 다스려서 근본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까지의 수행과정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이제 십우도(심우도)에 대해서 그 의미를 아셨으니, 앞으로는 사찰에 참배할 때 그 의미를 되새기며 벽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또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으면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고요. 그것이 포교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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