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16 (토) 00:00
<문>열심히 수행하면 모두가 성불한다고 하고 다른 한편에는 성불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솔직히 많이 헷갈립니다. 두 가지 교리가 모순되는 것은 아닌가요? |
<답>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는 말에 근거한 것이고, 성불할 수 없는 중생도 있다는 말은 ‘일천제(一闡提) 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불성이란 ‘불타의 본성’이라는 의미로, 즉 모든 중생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안심하고 성불을 목표로 수행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 속담에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하듯이, 아무리 불성을 지니고 태어났어도 수행이라는 노력이 없다면 결코 성불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금광(金鑛)에 금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것을 캐내지 않고, 또 제련하지 않는다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에게 불성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말을 해주어도 믿지 않는 중생, 불성이 있다는 것은 알면서도 쾌락에 빠져 수행정진을 하지 않는 중생, 오히려 불법을 비방하면서 선근(善根)을 끊어버린 중생도 있지요. 이러한 중생들을 모두 통틀어서 ‘일천제’라고 하여, 결코 성불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옛날 법상종(法相宗)의 견해일 뿐이고, 천태종(天台宗)과 화엄종(華嚴宗)에서는 모두 불성이 있다는 ‘실유불성(悉有佛性)’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불성은 다른 말로 ‘여래장(如來藏)’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중생에게 ‘여래의 본질이 감추어져 있다’는 의미이지요. 불성과 같은 뜻입니다.
불성을 설하는 대표적인 경전은 열반경(涅槃經)이고, 이보다 한 발 앞서 설해진 여래장경(如來藏經)이 있습니다. 바로 이 여래장경에 중생은 분명히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발현함으로써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홉 가지 비유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교수행이란 바로 이 불성을 확인해 나가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중생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불성을 자각하면서 살 것인지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