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7 (토) 00:00
<문>불교에서는 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어렵다고 가르치나요? 지구촌의 인구가 56억이라고 할 정도로 포화 상태인데, 우리 절의 법사님은 인간의 몸 받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강조하십니다. 더구나 인간이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고 동물이 인간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
<답>육도 가운데 오직 인간세에서만 성불이 가능하기 때문
옛 사람들은 진리라고 하면 추호의 의심도 없이 오직 믿고 살아왔으나, 시대적 가치관이 바뀐 오늘날은 무엇이든지 과학적인 증명을 요구하는 경향이 다분합니다. 그러나 종교와 과학은 그 영역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군요. 과학이 나 이외의 모든 영역을 대상으로 삼는 연구 분야라면, 불교는 바로 나 자신을 밝히고자 하는 종교인 것이니까요.
불교에서는 ‘맹구우목(盲龜遇木)’과 ‘침개상투(針芥相投)’라는 비유를 통해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명하고 있다. 전자는 백 년에 한 번씩 바다 위로 올라오는 눈먼 거북이 마침 떠다니는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나 그 위로 머리를 내밀고 쉬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후자는 원래는 수미산이지만 실감이 안 나니까 63빌딩을 비유로 해 설명해 보기로 하지요. 63빌딩에서 겨자씨 하나를 땅바닥에 던져 놓고 다시 바늘 하나를 아래로 던져서 바로 그 겨자씨에 꽂히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어느 쪽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확률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의학계에서는 평균 1억 분의 1의 확률로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이 아닌 동물로도 태어날 수 있다는 말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경험적 동물입니다. 경험한 세계의 실재는 인정하지만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서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게 마련이지요.
인간의 행위는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내면에 지니고 있는 갖가지 동물적인 마음도 사실은 경험적 축적과 결코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수한 세월 동안 여러 과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인간의 몸을 받는 것이 어려운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은 중생이 윤회하는 육도(六道) 가운데서 오직 인간 세계에서만이 수행이 가능하고 또한 성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자각보다도, 지금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