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5년, 미소냉전의 한 주역이었던 소련의 개혁과 개방을 주도했던 페레스트로이카의 주인공 고르바쵸프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국의 개혁과 개방을 요구하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주문했다. 고르바초프는 “러시아나 이란이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인들의 열망에 부응하여 새로운 공존의 세계질서에 기여하는 미국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단행하라고 부탁하였다. 구소련의 페리스트로이카가 근대 사회주의 국가를 포기하고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도 아니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통합했던 것이라면, 미국의 페레스트로이카는 근대 자본주의 국가를 포기하고 단일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도 아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합하는 탈근대적 개혁과 개방이다.

지난 1989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한 구소련의 몰락은 근대 사회주의의 붕괴였다. 그래서 근대 자본주의를 맹신했던 사람들은 구소련의 몰락을 근대 자본주의의 승리로 받아들였고, 근대 자본주의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미국 중심의 근대 자본주의가 폭력적으로 한반도와 지구촌을 유린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의 실패를 서글퍼했다. 그러나 구소련의 몰락은 근대 국민국가와 다른 연방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냉전 이데올로기의 형식과 근대 사회주의를 토대로 하여 근대 국민국가 제도를 유지하고자 하였던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근대국가 권력의 붕괴이지 근대 사회주의의 붕괴로 인한 근대 자본주의의 승리도 아니며, 폭력적인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의 실패도 아니다.

오늘날의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미국의 몰락은 근대 자본주의의 붕괴이다. 그래서 근대 자본주의와 미국의 헤게모니를 맹신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찌할 줄 모르고 미국의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가 이 위기를 극복해 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난 1989년 구소련의 몰락이 근대 사회주의를 토대로 한 근대국가 권력의 붕괴인 것과 마찬가지로 2008년 미국의 몰락은 미국이라는 근대 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또 하나의 근대국가 권력의 붕괴이지 미국이라는 제국의 붕괴로 인한 제 3세계 국가들의 승리도 아니며, 미국의 보수적인 부시 정부나 네오콘의 실패로 인한 근대 사회주의 세력의 승리는 더더욱 아니다. 문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대립과 갈등의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과 생성의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다.

18세기부터 영국과 프랑스를 필두로 하여 등장하기 시작한 실질적인 근대 국민국가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모두 몰락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연합국은 연합국대로 근대 자본주의를 모태로 한 국민국가가 유럽이라는 세계를 파국으로 몰고 간 원인이라고 파악하였고, 독일이나 이태리같이 전쟁에서 패배한 동맹국은 동맹국대로 근대 사회주의를 모태로 한 국민국가의 건설이 유럽이라는 세계를 파국으로 몰고 간 근원이라고 인식하였다. 따라서 서구 유럽의 국가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융합한 탈근대의 복지국가로 나아갔다. 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국과 프랑스가 전형적인 근대 자본주의 국가들이었고, 독일과 이태리가 이에 저항하였던 근대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의 또 다른 승전국이었던 미국과 소련은 제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국이나 프랑스, 혹은 독일이나 일본처럼 세계패권주의에 혈안이 되어 유럽을 동유럽과 서유럽으로 양분하였고, 세계를 미국의 근대 자본주의 세계와 소련의 근대 사회주의 세계로 분할함으로 말미암아 근대 국민국가가 아닌 연합국과 연방국의 형식으로 근대 국민국가의 국가권력을 변형시켜 유지하였다. 이러한 미국과 소련의 세계체제를 흔히 “후기 근대”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 미국의 지배층과 동일한 앵글로-색슨의 영국이나 동독과 서독으로 분할된 독일처럼 미국이나 소련의 세계에 완전히 편입되지 않은 프랑스나 이태리, 혹은 북유럽의 나라들이나 남미의 국가들은 미국과 소련의 강압적인 견제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융합한 “탈근대(the trans-modern)”의 국가로 나아갔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만 한다.

또한 지난 1989년에 구소련이 몰락하면서 동유럽의 단일한 근대 사회주의 국가들은 붕괴하면서 근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의 어느 쪽도 아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융합한 탈근대의 국가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동유럽과 러시아만이 아니다. 미국과 소련의 세계체제 속에서 오랜 동안 제 3세계의 맹주로 활약했던 중국도 단일 자본주의도 아니고 단일 사회주의도 아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융합한 탈근대의 국가체제로 전환하였다. 미국의 경제봉쇄에 맞서서 오늘날의 쿠바가 남미의 국가들과 연합하여 남미연합을 구성한 것과 마찬가지로 남한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경제봉쇄가 아니었다면 북조선도 중국이나 소련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융합한 탈근대의 국가체제로 전환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구소련의 붕괴 이후에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는 강화되는 듯이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구소련과 마찬가지로 미국이라는 근대 국가체제의 붕괴과정이었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체제에 강력히 포함되어 있었던 남미의 나라들이 미국 체제에서 일탈하였고, 이슬람 국가들과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또한 미국으로부터 일탈하였다. 1989년 구소련의 몰락이 중국이나 북조선이 소련의 세계체제에서 벗어나 제 3세계로 일탈한 것에 기인하는 것처럼 오늘날의 금융위기로 인한 미국의 몰락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최종 결산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미국의 흑인과 히스패닉, 여성과 아시아계 미국인의 대부분, 그리고 백인의 43 퍼센트가 버락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배경에는 미국식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 교육과 의료의 복지를 요구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융합에 대한 탈근대의 미국사회에 대한 열망이 내재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해결책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융합인 탈근대의 미국사회로 나아갈 것은 명명백백하다. 물론 그러한 오바마의 정책이 미국의 몰락을 완벽하게 구해줄 지는 미지수이다. 근대 자본주의만을 추구했던 미국의 사회주의적 분배과정에서 미국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식 근대 자본주의를 맹신하여 미국만을 좇고 있는 대한민국은 미국의 몰락과 더불어 미국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우리의 형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융합하고자 하는 북조선이 미국의 몰락을 구원해주는 구원병이 되고, 대한민국이 몰락하는 방관자가 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근대 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거대 제국 미국의 몰락을 눈앞에 목격하면서도 대한민국은 근대 자본주의만을 맹신할 것인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이 아닌 융합이라는 한반도의 페레스트로이카를 통하여 남한이나 북조선이라는 근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감옥에서 벗어나자. 남과 북을 포함하는 한반도는 서구 유럽이나 다른 여타의 나라들과는 달리 근대화 과정에서 근대 자본주의나 근대 사회주의라는 하나의 단일한 국민국가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서로 다른 국민국가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근대화 과정이나 근대의 세계체제 속에서 한반도의 두 국가는 미완성의 국민국가이고 내부적으로 서로 적대적인 불완전한 근대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한반도의 근대적 풍경은 그 삶의 방식이 지리적으로 동아시아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유럽 이주자들과 원주민의 대립적 구도를 지니고 있는 남미의 근대 국가들이나, 흑인과 백인의 대립구도를 지니고 있는 남아프리카의 국가와 유사한 근대성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남미의 국가들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이주자와 원주민, 그리고 흑인과 백인이 화해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남과 북은 화해는커녕 대화마저도 깨져가고 있다.

오늘날의 지구촌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종족이나 성, 혹은 인종간의 장벽을 넘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탈근대라는 상생적 삶의 방식을 영위하려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지구촌의 삶을 근대적인 종족이나 성, 혹은 인종이나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갈등으로 이끌었던 미국마저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으로 근대적 인 대립과 갈등을 제거하고자 하고 있다. 이러한 탈근대화의 과정은 미완성의 근대와 불완전한 근대 국민국가로 존재하는 한반도의 두 국가에게 인류의 미래를 이끌고, 지구촌의 상생적 비전을 제시하는 탈근대의 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남과 북의 불완전한 근대 자본주의 국가와 근대 사회주의 국가를 넘어서서 자본주의도 아니며 사회주의도 아니면서 동시에 근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융합한 탈근대의 코리아 연합(혹은 연방)국가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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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기(동국대 영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