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civilization)이라는 이름으로 서구의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정신/몸, 인간/자연 그리고 도시/농촌의 이분법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진리인양 오늘날의 한국인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서구적 근대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적 이분법은 정신이 몸을 지배하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며, 또한 도시가 농촌을 지배하고자 하는 지배와 종속의 서열주의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몸을 억압하는 금욕주의가 고상한 정신인 것처럼 착각하고, 자연을 거스르고 망가트리는 것이 개발이나 발전이라고 착각할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사는 것이 농촌에서 사는 것보다 더 문화적인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곰곰이 따지고 보면 정신이 몸의 일부이고,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그리고 도시가 농촌의 일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몸, 자연 그리고 농촌 중심의 사유와 삶이 바로 문화(culture)의 삶이다.

물론 위와 같은 근대적 이분법은 하나의 거대한 착각일 뿐이다. 이러한 착각은 언어에서 쉽게 드러난다. 서구적 근대화의 과정을 통하여 전통적으로 몸과 자연, 그리고 농촌의 삶을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리들은 그러한 삶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섭생(攝生)’이나 ‘양생(養生)’이라는 언어를 버리고 영어의 ‘건강(health)’이라는 낯선 언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비싼 돈을 주고 좋은 것만을 많이 먹고 잘 살면 건강한 삶인 것처럼 착각하였다.

그러나 요즈음 건강이라는 단어가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로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주체적인 변화가 아니라 ‘건강’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던 서구인들이 '웰-빙'이라는 단어로 바꾸니까 아무런 의식도 없이 하나의 유행으로 ‘웰-빙’이라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로 <영어문화연구>의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웰-빙’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무엇이 되느냐고 질문하면, 많은 학생들이 '잘살기' 혹은 '건강하게 존재하기' 등등으로 대답한다. ‘건강’이라는 단어가 ‘웰-빙’이라는 단어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몸, 인간/자연 그리고 도시/농촌이라는 서구적 근대화의 이분법을 통한 정신, 인간 그리고 도시 중심의 사고방식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정신을 포용하고 있는 몸, 인간을 포용하고 있는 자연, 그리고 도시를 포용하고 있는 농촌이라는 공동체의 조화와 균형의 사고가 없다면 결코 건강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바로 ‘웰-빙’이라는 단어 속에 내재해 있다. 따라서 오늘날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웰-빙’이라는 단어의 우리말은 우리가 서구적 근대화의 과정을 통하여 잃어버린 ‘섭생’이나 ‘양생’이라는 단어이다.

'웰-빙'과 마찬가지로 '문화'의 우리말도 곧 '섭생'이나 '양생'이다. 도시화와 물질산업화를 의미하는 '문명'은 몸을 배제한 정신, 자연을 배제한 인간, 그리고 농촌을 배제한 도시의 삶을 가치의 척도로 삼지만 '문화'는 몸의 정신적 양육, 인간이 자연적 이치에 따라서 자연을 가꾸는 것, 혹은 가축이나 곡식을 기르는 농업(agriculture)을 토대로 한 도시의 삶을 가치의 척도로 삼는다.

따라서 '건강'이라는 단어가 ‘섭생’이나 '양생'을 의미하는 '웰-빙'이라는 단어로 변화한 것처럼 '문명'이라는 언어가 '문화'라는 언어도 대체된 것은 지난 20세기가 정신/몸, 인간/자연, 그리고 도시/농촌의 근대적 이분법을 통하여 대립과 전쟁, 그리고 파괴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반성하고 조화와 상생, 그리고 평화의 21세기를 만들고자 하는 지구인 전체의 소망인 동시에 21세기 지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20세기의 문명이 아닌 문화라는 21세기 지식의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삶의 체계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정신/몸이라는 이분법으로 만들어진 권력 중심의 권위주의와 계몽주의의 서열주의 경쟁교육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를 막론하고 각각의 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공교육의 민주주의적이고 창조적인 형식으로 나아가는 변화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자연의 이분법으로 만들어진 문명이나 인간 중심의 막가파식 개발주의가 아니라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이어져온 자연의 조화를 보존하고 가꾸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대립과 갈등 속에서 결코 혼자 '잘살기' 혹은 '건강하게 존재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의 한반도 속에서 남과 북은 서로 상생하고 양생하거나 섭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상생과 양생의 문화가 곧 우리의 전통적인 불교적 삶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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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기(동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