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苦)

“지난해 한국에서 하루 평균 840쌍이 결혼하고 398쌍이 이혼해 결혼대비 이혼율이 47.4%에 달했다.”

이는 2008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5년 전인 2003년의 이야기다. 2002년의 이혼율 통계를 실은 신문을 보고 당시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매년 그 통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신문을 뒤적였지만 그 후로 다시는 이혼율 기사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이혼율 산정방식이 잘못 되었다’는 주장을 가끔 목격하게 되었는데, 조이혼율이니 유배우 이혼율이니 하는 논의를 하거나, 이혼율 통계가 가정의 위기를 부추긴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이혼율 산정방식에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당시 하루 평균 398쌍이 이혼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주변에 이혼하는 사람들이 종종 목격되기 때문에 결혼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간혹 실수를 할까봐 조심스러워 지기도 한다. 신문들이 결혼건수와 이혼건수를 동시에 비교하는 기사를 내보내지는 않았지만, 통계청에서는 여전히 혼인건수와 이혼건수를 집계하고 있다. 독자에게 충격일 수도 있지만 현실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 두 자료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혼율표를 보면 2003년도 이혼율 통계를 매스컴에 내보내지 못한 이유를 알 만하다. 당시 이혼율 통계가 가정의 위기를 부추긴다는 논란도 있었던 점도 고려되었겠지만, 이혼율이 54.8%에 달하니 “두 쌍 결혼에 한 쌍 이상 이혼”이라는 엽기적인 타이틀을 차마 달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2003년을 정점으로 이혼율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는 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결코 낮은 이혼율이 아니며, 이 비율이 1990년대 중반 이전의 10% 대 이하로 줄어들 날이 빨리 오지 않으면 한국가정의 고(苦)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정의 위기는 이혼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아동 학대, 노인 학대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작년 한국 가정에서의 아동 학대 발생률은 66.9%라고 한다. 3분의 2에 해당하는 가정에서 자녀에 대한 방임이나 정서적, 신체적, 성적 학대가 자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그 중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는 전체 80%를 넘는다고 한다. 한편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충동율이 48%에 달한다고 한다. 절반 정도의 청소년이 자살충동을 느낀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지난해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노인 학대 발생률은 6.0%로 나타났다. 이 역시 정서적 폭력과 방임과 신체적 학대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해진다. 한국인은 외국인과 달리 ‘내 집’이 아니라 ‘우리 집’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개인 단위가 아닌 가정 단위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는 의미이다. 외국인은 이혼의 고통을 쉽게 극복하지만 한국인은 이혼을 하면 가정도 개인도 쉽게 그 고통을 극복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에서 가정의 위기는 사회 위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외국에 비해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원인(集)

가정 위기의 원인은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외부적 요인은 첫째, 산업사회와 지식정보사회를 거치면서 물질 중심의 패러다임이 극에 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30년 전 고등학교 교실에서는 우리 사회가 서구화, 산업화로 인해 ‘물질만능’과 ‘개인주의’의 폐해가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가르쳤었다. 그것이 지금 이혼율, 아동학대, 노인학대 등을 통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산업화에 정보화까지 겹쳐 가족 간의 대화가 격감한 것도 가정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또 하나의 외부적 요인은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붕괴와 모계사회로의 전환과정에서 가정의 위계가 급격히 붕괴하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다. 지식을 갖춘 여성들은 3천년 동안 잃어버린 가정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남성은 그런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많은 가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다.

외부적 요인 보다 더 큰 이유는 내부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산업화, 지식정보화 과정에서 인간의 고매한 정신이 물질의 지배를 받게 되어 병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가정의 목표도 화목이나 지혜의 계승에 두지 않고, 무한한 부를 추구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투사를 만드는데 두는 경향이 일반화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집을 살 때 가족 구성원의 정서적 안정 보다는 집값 상승 가능성을 먼저 고려한다는 점과, 가족 간의 대화가 돈 문제나 자녀 학교 문제 등 물질적인 추구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부부 간, 부모와 자녀 간에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어렵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는 역할은 요원해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가정이 편안한 쉼터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고 가정의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가정 위기의 원인을 한마디로 하면 ‘인간성 상실’과 그 악순환에서 찾을 수 있다.

해법(滅)

가족은 부부의 인연으로 시작된다. 배우자는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고, 객관적으로 보면 부부는 수준이 똑 같은 사람이 만난 것이다. 그래서 ‘왕이 되고 싶으면 왕비 대접을 하라’고 했고, ‘왕비가 되고 싶으면 왕 대접을 하라’고 했다.

사실 부부싸움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남편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 서서 볼일을 보느냐 앉아서 보느냐 에서부터, 휴지를 거는 방향이나 치약을 짜는 방법 등을 놓고 많은 부부들이 다툼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면 남편은 논리적으로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부인은 감성적으로 문제를 대한다는 차이점도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대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당신이 최고야”라고 서로 말했지만, 결혼 후에는 “당신만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해”라고 말하거나 아예 서로에게 실망해서 입을 닫아 버리기도 한다. 남자든 여자든 또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모두가 원하는 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봐 주세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쉬운 듯 하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가정 위기의 가정 큰 원인이 인간성 상실에 있기 때문에 그 해법은 인간성을 회복하는데서 찾아야 한다.

실행(道)

인간성을 회복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을 키우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소중한 정신적 유산은 자기수양의 시스템과 그에 기반을 둔 공동체 정신이다. 그 중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기수양의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공자 선생님, 부처 선생님, 예수 선생님 등 모든 성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지혜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바로 수신제가의 길이고 상구보리하화중생의 길이며 내 안에 하나님을 영접하여 함께 구원받는 길이다.

세 분 성인이 모두 같은 취지로 말씀을 하셨다. 공자 선생님은 경(敬)을 통해 도(道)를 이루어 인(仁)을 실천하는 것이 사람이 해야 할 도리라고 알려 주셨고, 부처 선생님은 명상(瞑想)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어 자비(慈悲)를 실천하는 것이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알려 주셨으며, 예수 선생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사랑을 실천하라고 일러 주셨다. 지금 21세기는 지식정보시대가 아니라 지혜의 시대이다. 따라서 성인의 말씀을 제대로 실행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비전

21세기 지혜의 시대를 맞아 ‘한류’ 열풍이 지속되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가정의 위기로 인해 주춤거릴 때가 아니다. 지혜의 시대와 한류 열풍은 우리 조상이 물려 준 자기수양의 시스템과 공동체 정신의 뿌리에 꽃이 피고 있는 형국이니 우리는 지금 부지런히 그 결실을 준비해야 한다.

크게보기

이 상황에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정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모든 국민이 구체적인 자기수양 시스템을 체득하여 각자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한 가정’을 위기에서 구하는 일이다. 또한 그 지혜를 대대손손 이어나가게 하는 것이야 말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책무라고 하겠다.

내가 평화를 회복하면 가정이 화목해지고 가정이 화목해지면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 가화만사성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의무이자 비전이라 하겠다.

<지혜경영연구소 대표 손기원 (www.onwisd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