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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군 오운산 속명사(續命寺)<br>아도화상 창건설 깃든 천년고찰

| | 2010-09-14 (화) 20:24

황해북도 서흥군 고성리. 고려시기 창건

속명사는 황해북도 서흥군 고성리에 4km 떨어진 오운산(五雲山)에 자리하고 있다. 한 때 흥사(興寺), 흥풍사(興風寺)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528년(신라 법흥왕 15년) 4월에 아도화상이 처음 세운 절을 세우고, 흥사, 혹은 흥풍사라고 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이 때는 이미 아도화상이 입적한 뒤였으므로 신빙성이 없다. 북한이 발행한 『조선의 절 안내』에는 고려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나, 창건 후 오랫동안 페사로 변했다가 조선초기에 조반(1341~1401)이 중창하여 속명사(續命寺)라고 했다는 설이 정설로 여겨진다. 이후 이 절은 다시 폐사로 남아 있었으나 1884년(고종21년) 왕실의 시주로 중건하였으며, 1930년에 약사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속명사 약사전 전경. 사진=진각복지재단 제공크게보기

속명사에는 현재 주불전인 약사전과 요사채가 남아 있고, 창건 당시의 유물들인 수조(水槽)와 5층탑이 있다.

『황해도지』(1970년) 에는 조반이 속명사를 중창할 때의 설화가 전해진다.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개국했지만 명나라의 승인을 받기 위해 조반을 사신으로 보냈으나, 명황실은 조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오히려 조반을 참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의 머리를 세 번이나 쳤지만 베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명황제는 이를 천명으로 받아들여 조선을 인정했다고 한다. 조반은 귀국 도중에 황해도 서흥에서 숙박했는데, 꿈에 3인의 승려가 나타나서 “우리는 오운산의 석불이다. 이번 명나라 황제가 그대의 머리를 베려했으나 이루지 못한 것은 우리들이 그대의 목을 대신하여 베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오운산 바위 밑에 있으니 떨어진 머리를 붙이고 절을 지어 달라”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조반이 꿈에서 깨어나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으므로, 왕에게 이를 알려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목숨을 이었다는 의미에서 절 이름도 속명사(續命寺)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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