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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 | 2010-03-17 (수) 13:25

국보 문화유물 제40호.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

1042년 창건, 조선중기와 후기 중건

보현사는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에 소재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보현사는 한국 5대 사찰 중의 하나로 꼽히는 명찰이다. 보현사는 북한의 국보문화유물 제 40호로 지정되어 잇다. 보현사는 968년(고려 광종 19)에 창건되었고, 1042년에 중건한 후 여러 차례의 화재로 보수, 중건되었다.

김부식이 지은 보현사적비(북한국보문화유물 제149호)의 《묘향산보현사지기(妙香山普賢寺之記)》에 의하면 1028년(현종 19년) 승려 탐밀(探密)이 묘향산에 안심사라는 절을 세웠고, 그의 조카이자 제자인 굉곽(宏廓)이 1042년(정종 8년) 243칸 규모의 보현사를 세웠는데, 당시의 전각 수는 24개소였으며, 대중이 3000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탐밀과 굉곽의 사후에도 사찰이 번창하자 1067년 고려 문종이 보현사에 토지를 기증하고 사적을 기록하게 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보현사는 31개 본산의 하나로 지정되었으며. 말사는 안심사, 내원암 등 112개였다고 한다.

묘향산 보현사 전경. 우리나라 5대 명찰 중의 하나로 꼽히는 대찰이다. 사진=진각복지재단 제공.크게보기

오늘의 보현사는 남북 중심축을 따라 조계문, 해탈문, 천왕문을 지나면 9층탑(북한 국보문화유물 제7호), 만세루, 8각13층탑(북한 국보문화유물 제144호), 대웅전이 차례로 놓여 있다. 보현사는 그동안 7차례 이상의 중수가 있었다. 원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왼쪽에 수월당, 명부전, 응향각이 있었고 오른쪽에 요사채인 심검당, 관음전(북한 국보문화유물 제57호), 만수각 외에 대장전과 영산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대장전과 영산전 앞쪽에는 극락전이 있었고 그 서쪽에 서산, 뇌묵, 사명대사의 영전을 모신 조사전이 있었다. 그러나 대웅전, 만세루, 심검당, 수월당 등 여러 채의 건물들이 한국전쟁 때 훼손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대웅전과 만세루는 각각 1976년과 1979년에 복원된 것이다. 또한 1983년에는 팔만대장경보관고를 현대식으로 신축하였으며, 주변에 있던 영산전과 수충사(酬忠祠, 북한국보문화유물 제143호)를 절내로 이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앞으로 넓은 개울이 흐르고, 개울 건너에는 안산에 해당되는 탁기봉과 탐밀봉이 있다. 산문의 첫 번째 문에 해당되는 조계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보현사비, 서산대사비를 비롯한 여러 석비가 세워져 있다. 조계문은 본래 화엄종계의 사찰인 보현사에 선종인 조계종이 영향을 미치면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조계문을 지나면 두 번째 산문인 해탈문이 있다. 해탈문은 문수와 보현보살상을 봉안하였다. 천왕문은 1755년에 세운 건물로 사천왕소상을 안치하고 있으며, 다른 두 문보다 규모가 크다.

세 개의 산문을 모두 지나면 1979년에 복원한 만세루가 서 있고, 그 좌측에 수령 4백년의 천연기념물 제88호인 뽕나무 한 그루가 오래된 보현사의 내력을 말해준다. 만세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으로 복원한 것이다. 만세루 앞에 있는 9층 석탑은 고려초기의 것으로 연꽃대좌형 기단조각이 매우 아름답고 정교할 뿐만 아니라 1044년에 탑을 세웠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탑은 보현사를 처음 지을 때 함께 조성된 것으로 고려시대 탑형식과 변천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만세루의 전면에는 4각9층 석탑이 있는 반면, 대웅전 앞뜰에는 8각13층 석탑이 서 있다. 8각13층 석탑의 높이는 10.03m이다. 이 탑은 3단으로 된 대돌, 연꽃 대좌형 기단, 13층의 탑 몸 그리고 탑 머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옥개석 귀마다 달린 풍경은 물론 보주까지 그대로 살아있어 보현사를 상징하는 성보로 여겨진다. 8각13층 석탑은 4각9층 석탑보다는 늦은 고려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일명 석가탑이라고도 불린다. 두 석탑의 배치는 경주 불국사가 석가·다보여래를 증명하기 위해 쌍탑을 조성한 것처럼 보현사 또한 9층 다보탑과 13층 석가탑을 설치한 것이다.

보현사의 주불전인 대웅전의 모습. 사진=진각복지재단 제공.크게보기

보현사의 주불전인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다포계 팔작지붕 형태의 건물이다. 건물은 규모가 웅장하면서도 부재구성이 치밀하고 정교하며, 거기에 맞게 모로단청이 매우 우아하면서도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특히 대웅전 전면 앞문에 새긴 연꽃줄기와 무궁화, 용 등의 투각 꽃창살 조각은 문양이 매우 정교하고 세련되었다. 한 때 보광전이라고 불렸던 대웅전에는 현재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여래와 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닫집은 ‘亞’자형의 중층으로 화려하며, 천정은 빗천정과 우물천정을 같이 한 조합천정의 형식이다.

보현사에는 한국전쟁시기에 소실된 금강산 유점사의 범종(북한국보문화유물 제 162호)이 오랜 세월 땅에 묻혀 있다가 1984년 9월 보현사로 옮겨져 종각에 안치되었다. 또한 평안북도 피현군 성동리 불정사지에 있던 다라니석당(북한 국보문화유물 제 59호)도 1987년 이 곳으로 옮겨졌다. 보현사 경내에 있는 수충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이름을 떨친 서산대사와 사명당, 처영대사의 공적을 기념하여 보현사에 세운 사당이다. 수충사 안에는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초상과 함께 그 스님들이 쓰던 유물의 일부가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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