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어느 날, 개암사는 인파로 붐볐다. 서울의 벚꽃이 피고 진 지 1주일이었지만 개암사는 벚꽃이 한창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벚꽃을 보기 위해 개암사를 찾았다. 개암사 초입부터 개암제를 지나 개암사 일주문까지 꽃구경을 나온 인파로 장사진을 이뤘다.

부안 개암사(주지 재안 스님·사진)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법회 참석 신도가 서너명에 불과했다. 재안 스님 주지 부임 후 2년이 지난 지금은 백명 가까운 신도가 개암사를 찾는다. 산신각 등에 기도를 부친 신도도 늘었다. 사람들이 개암사를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주지 재안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스님이 개암사의 꽃인 셈이다.

"개암사, 이젠 자주 찾는 이유가"

이날도 스님은 신도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익산에서 온 김정두 거사는 사경 전문가이다. 김 거사는 〈반야심경〉〈법성게〉 등을 사경해 3000장 이상 불자들에게 나눠줬다. 금강산 신계사 등에도 복장물을 보시했다.

김 거사는 "사경은 수행 그 자체이다. 수차례 한 글자, 한 글자, 반복하는 연습은 나를 한없이 낮추는 순간의 연속이다"라고 했다.

김 거사는 "재안 스님이 100만배를 한다는 소문이 지역에 돌았다. 정말인가 싶어 와보고, 어떻게 하나 싶어 와봤다. 100만배를 하면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했다.

이어 "재안 스님이 주지가 된 후 절에 염불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지실 문턱이 낮아져 자주 찾는다"고 했다.

"절은 누구나 할 수 있어"

재안 스님은 지난 2012년 2월 개암사 주지로 부임했다. 다음달인 3월부터 100만배 200일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스님이 100만배 정진을 다짐한 것은 살고자 함이었다. 주지로서 어려운 절살림도 걱정이었지만 개암사를 찾는 이가 없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수행으로 나를 바꾸고 주변을 변화시키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5000배 가까이 절을 했다. 부처님 전에 그리고 자신에게 약속한 200일 안에 100만배를 올렸다.

스님은 "절을 통해 하심을 배웠다. 낮추고 또 낮추는 것이 절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원을 간절히 세우는 게 절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 5000배, 200일 동안 100만배를 하며 참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수행법 가운데 절을 택한 것은 절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10년 전 부처님과의 약속 지켜"

스님은 10여 년전 서울 봉은사에서 소임을 살 때 처음 100만배 정진을 했다. 당시 판전에서 매일 절을 했다. 그때는 하루 1만배씩 했다.

100일 만에 100만배를 회향했던 스님은 회향하면서 부처님 전에 또 다시 서원을 했다. "주지 소임을 맡거든 100만 배를 또 올리겠다"고. 그리고 그 약속을 개암사에서 지켰다.

부처님도 약속을 지켰다. 스님이 개암사에서 100만배를 올리면서 개암사가 달라졌다. 참배객이 늘었다. 산신제 등 행사를 하면 전국 각지에서 불자들이 모였다.

"스님 정성에 신도들도 정성 모아"

스님은 "개암사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선운사 말사 감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찰재정을 신도들에게 공개하고 나니 신도들의 믿음이 생겼다. 신도들의 믿음 하나하나는 곧바로 사찰재정 건전화로 이어졌다.

한 신도는 초하루 법회에 몇번 다녀가더니 하루는 50만원을 보내왔다. 신안 밭에 일을 나가 파를 다듬으며 모은 돈이라고 했다.

전국 사찰을 다니며 400일 동안 기도했다는 신도는 개암사에서 자신의 기도를 회향하겠다고 했다. 이유가 있었다. "전국 사찰을 다녀봤지만 많은 스님도 아니고 주지스님이 직접 법당, 전각을 다니며 예불 올리는 것은 처음본다"는 것이었다.

"혼자 왔다가 여럿과 다시 찾는 절"

스님은 "한 번이라도 개암사를 찾은 이들은 또 다시 가족 친지 동료들과 함께 온다"고 했다. 스님과 차담을 나누던 김정두 거사도 부인과 함께 다시 개암사를 다니고 있는 경우이다.

스님은 "개암사를 처음 찾건, 다시 찾건 찾아오는 이에게 특별히 배려하는 것도 없다"고 했다. "찾아오는 이를 반갑게 맞고, 주지실 문턱을 낮춰 누구나 차라도 한잔 마시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할 뿐"이라고 했다.

이어 "신도들과 대화를 할 땐 일단 다 들어주는 것이 원칙이다. 상대방의 말을 모두 경청한 후 말문을 연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신뢰를 쌓다보니 찾는 이들이 늘었다"고 했다

"외로움에 사무쳐 출가, 그 마음 안다"

스님은 20살 때 어머니를 여의였다. 군 제대 후인 25살 때는 막역했던 친구마저 잃었다. 막막했다. 삶에 회의가 들었다. 무작정 기차에 몸을 싣고 행선지도 없이 떠돌 때 였다.

기차 안에서 만난 노스님에게서 "출가는 영원한 생명과 자유를 얻는 길"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무치던 고민이 눈녹듯이 사라지는 듯 했다. 스님은 그해 고창 선운사에서 원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고뇌했던 젊은 시절은 스님이 된 후에는 젊은이들을 이해하는 자양분이 됐다. 여전히 넉넉치 않은 살림이지만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지난 3월에는 아름다운동행에 아프리카학교 건립기금으로 1000만원도 기탁했다. 지역 소외계층을 돕고자 쌀도 수시로 전달하고 있다.

스님은 "어린이, 청소년 포교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불교적 정서가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절,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스님이어야 한다"고 했다.

"호남불교 일으킬 성취도량"

스님은 지난해 개암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시작했다. 반년 만에 300여 명에게 개암사 템플스테이 경험을 선사했다.

이는 스님의 열정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스님은 지난 3월 불교박람회에서 '개암사 템플스테이' 부스를 차리고는 박람회 기간 내내 자리를 지켜 눈길을 끌었다. 스님은 부스를 찾는 이마다 차를 건넸고 대화를 나눴다.

개암사 템플스테이는 1박2일 프로그램으로 선차 만들기, 위빠사나 명상, 놀이 그림을 통한 심리치유프로그램, 요가 등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선차 만들기는 개암사 인근 차 밭에서 직접 차 잎을 따고 찧고 덖는 과정으로 인기가 높다.

가족명상 프로그램 등 특화된 여러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 가운데 3000배 철야정진 프로그램은 재안 스님의 100만배 회향 원력을 잇는 특별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매월 셋째주 토~일요일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오는 가을에는 제1회 개암사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산신각 불사에 이어 나한전 불사도 시작한다.

스님은 "수행자는 늘 깨어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주지인 나부터 끊임 없는 수행을 통해 깨어있고자 한다"며 "개암사는 성취도량이다.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방을 내어줄 것"이라고 했다.

개암사는 백제 무왕 35년(634) 묘련 스님에 의해 창건됐다. 원효ㆍ의상 대사가 정진했던 도량이다. 능가산 우금바위 아래는 원효방이라고 원효 대사가 수행하던 공간도 있다. 대웅전은 보물 제292호로 지정돼 있을 만큼 목조건축의 장중한 미가 돋보인다. 개암사 영산회괘불탱 및 초본(보물 제1269호), 개암사 응진전 16나한상(전북유형문화재 제179호), 청림리 석불좌상(전북유형문화재 제123호)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한 전통사찰이다.

/공동취재단 조현성 기자, cetan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