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중기자
myhyewook@naver.com 2012-05-22 (화) 15:35
불기 2556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본지는 생명나눔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조혈모세포 기증을 한 선일여중 신재학 선생과 형옥자 가톨릭조혈모세포 이식조정팀 코디네이터를 만났다. |
백혈병을 앓고 있는 지민(가칭)이는 지금 무균실에 있다. 내일 지민이는 조혈모세포를 기증을 약속한 기증자에게 골수를 받게 된다. 조혈모세포 기증을 위한 마지막 관문인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음을 통보받은 기증자. 참 고마운 사람이다.
“어쩌죠? 기증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네요”
지민이 아빠는 피가 말랐다. 아이는 오늘 있을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해 항암제로 자신의 모든 조혈모세포를 소멸시킨 상태. 회복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결국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하지 않는 아빠가 조혈모세포를 기증 했다. 하지만 지민이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가족의 품을 떠났다.
“법적으로 기증의사를 철회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비판할 수 도 없고요.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 등록신청서에도 언제든지 기증철회가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건강검진 후 거짓정보․두려움 극복 못하고 포기
형옥자 가톨릭조혈모세포 이식조정팀 코디네이터의 설명이다. 그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기증희망자로 등록된 22만 명 중 환자와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할 확률은 수천에서 수만 명 중 1명에 불과하다”며 “비판할 일은 아니지만 기증과 관련한 모든 과정을 마친 후 병원에 나타나지 않는 기증자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5월 18일 강남 성모병원에서 만난 형옥자 씨. 그는 "거짓정보에 현혹되지 말고 꺼져가는 생명을 위해 기증희망등록자들이 기증에 나서길 바란다"고 전했다.
형 코디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증 희망자들이 마음의 변화가 생기는 시점이 최종 건강검진 때라 한다. 건강검진에서 아무 문제가 없을 경우 입원 날짜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기증자들의 질문공세가 시작된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거짓정보를 보고 기증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자세히 설명해도 이미 기증을 포기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는 거죠. 좀 심한 분은 건강검진 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사라집니다. 힘든 결정인 건 알지만 그래도 생명을 살리는 일인데 조금만 용기를 내면 좋겠습니다”
결혼 전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등록을 한 A씨. 기증희망등록을 한 지 6년이 지나 조직적합성 항원형이 일치한다며 기증의사를 타진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미혼일 때는 혼자 결정하면 되지만 결혼을 한 A씨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맞벌이 부부인지라 육아도 함께 맡고 있는데 아이들은 어쩌지? 휴가를 내면 직장에서 받아줄까? 머리가 복잡해진 A씨는 결국 기증을 포기한다.
골수기증에 동의한 B씨. 골수 기증을 위해 병원 입원 수속을 받고 있던 그는 천척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접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증에 나선 그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유고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유언도 듣지 못한 불효자가 된 B씨. 장례를 치루고 그는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골수를 기증했다.
“기증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전화를 하면 50%는 다 거절합니다. 환자 1명당 조직적합성 항원형이 일치하는 기증자가 10명이라면 처음부터 5명은 제외되는 셈이죠. 동의한 기증희망자를 대상으로 정밀 DNA검사를 하면 2명이 남습니다. 이들 중 몸 상태가 더 좋은 기증희망자를 선택해 기증을 시도합니다. 초 스피드로 진행해도 한 달 이상이 걸립니다. 이것도 환자가 제때 받을 수 있어야 가능한 거죠.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면 다시 한 달 후로 골수 기증이 연기됩니다. 하늘이 맺어주지 않고는 골수 기증도 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08년 10월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조혈모세포 기증을 한 불교포커스 신혁진 기자는 “골수기증에 대해 일반인들은 고통이 심하고 후유증도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확인되지 않은 일부 언론의 골수기증 기사로 인해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음에도 기증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기증 위해 6개월 간 몸 만든 신재학 교사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인데…. 이런 사람도 있다. 신재학 선일여중 선생(41). 그는 지난해 2월 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 9년 전 예비군 훈련 때 아무 생각 없이 생명나눔실천본부를 통해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 등록을 했던 신 선생. 2010년 6월 기증의사를 타진하는 전화가 왔을 때 그 역시 기증을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망설였죠. 기증희망을 한 것도 가물가물하고. 한데. 코디가 이건 얘기하면 안되는데 골수를 기증받을 사람이 1살짜리 영아라고 하더군요. 머리가 찡해지더군요. 딸을 기르고 있는 아비로서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죠”
5월 14일 선일여중에서 만난 신재학 교사. 그는 "특별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기증을 결심한 그는 골수기증 전까지 음주도 자제하며 운동을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기증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는 말초조혈모세포 기증(헌혈 방식)을 통해 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
“특별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아 아내에게도 말하지 않았죠. 봄 방학 때라 연수 간다고 했습니다. 제가 한남동 순천향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원에 아버지가 입원하고 계셔서 막내 동생에게는 말을 했죠. 동생이 소문을 내 집사람도 알게 됐죠. 처음에는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수업시간에도 학생들에게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조금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신재학 선생, 그는 “순간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기증을 하고 난 후 보람을 느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보시하는 사람에게는 큰 복도 없고 작은 복도 없으며,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고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니니, 이같이 손익을 생각하지 않고 보시하는 것이야말로 바르게 불도에 들어가는 것이다”(유마경)
인터뷰 내내 해맑은 미소를 지은 신재학 선생. 신 선생과 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 그래도 세상은 살맛이 나는 것이 아닐까? 명예도, 이익도 구하지 않고 남을 위해 아낌없이 보시를 행한 그가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