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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가라앉고 있답니다. 어쩌죠?”<br>“넌 생각이 넘 많아, 넘치는 찻잔처럼”

탁효정 | bellaide@naver.com | 2009-11-19 (목) 10:23

매달 마이너스가 늘어나는 가계부를 보면서, 어느 한 새댁이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야, 우리 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애가 생기면 어떻게 키울까?”

“응, 조금 기다려 봐야 돼. 적어도 2012년까지는.”

“왜 하필 2012년인데?”

“마야인들이 이미 오래전에 예언을 한 게 있거든. 2012년이 되면 지구를 중심으로 행성들이 일렬로 배열되고 그때 우주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 지구가 멸망한다고. 그러니까 그때까지 지구가 망하는지 안하는지 두고 본 다름에 애를 낳아야 한다는 거지.”

어느 집 이야기인지는 창피해 할까봐 더 이상 밝히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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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 집 신랑이 이야기하던 2012년 마야인들의 지구멸망설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나왔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영화 <2012>.

“내일, 지구가 망한다면 지금 무엇을 할까.”

매년 1~2편씩 꼬박꼬박 나오는 재난영화를 보면서 항상 이런 생각을 하곤 했는데, 알고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그 사람이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었다. <투모로우>,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 등에서 한 동네가 폭삭 망하던지, 한 부족이 짓밟히던지, 한 대륙이 얼음으로 뒤덮히던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롤랜드 감독의 스케일이 이번에는 전 지구로 확대됐다.

영화 속에서 2012년 지구가 멸망하는 이유는 이렇다. 태양이 유례없는 대폭발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엄청난 양의 뉴트리노(중성미자)가 지구로 쏟아진다. 이 입자들이 지구의 내부를 구성하는 물질들과 반응하면서 전자레인지처럼 내부를 달구어서 지구가 끓어오른다는 가정이다.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다소 설득력은 떨어져 보이지만, 어쨌든 지구 멸망의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되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하두 뻔해서 그냥 뛰어넘기로 하겠다. 이 영화의 옥의 티를 찾자면 바로 스토리 그 자체이고, 영화의 장점을 찾자면 어설픈 가족애가 등장하지 않는 화려한 3D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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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딱 하나, 버스 옆구리에 실린 심상치 않은 포스터 광고 때문이었다. 영화 포스터는 티베트 고승이 히말라야가 거대한 해일로 뒤덮히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초연히 서있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그 메시지가 하도 강렬해서 보러 갔더니, 티베트 고승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스토리의 개연성도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다만, 지구가 붕괴되는 모습만은 그 어느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리얼하다.

아스팔트가 툭툭 갈라지고 건물들 사이로 커다란 계곡이 만들어지고, 도시 곳곳에서는 핵폭발을 연상시키는 불꽃들이 솟구쳐 오른다. 또 폐허가 된 도시 위로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와 북아메리카 대륙을 한꺼번에 집어삼킨다. 그 장면에는 참담함 보다는 오히려 카타르시스 비슷한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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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멸망하려 하는데,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커다란 배를, 아주 비밀리에 만드는 일뿐이다. <인디펜던스데이>처럼 우주선을 띄워 유성을 막아볼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투모로우>에서처럼 피신할 수 있는 땅도 없다. 더구나 에서처럼 도망갈 정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어디에서도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막막함은 오히려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라는 초연함으로 다가온다.

그때 등장하는 이들이 바로 히말라야 계곡 작은 사찰에 거주하는 라마승과 그의 제자 텐진이다. 달라이라마를 연상시키는 외모의 라마승은 “지구에 엄청난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제자의 말에 아무런 댓구도 없이 차만 따른다. 차가 이미 찻잔을 철철 넘고 있는데도 스승은 계속 차를 따른다. 제자가 말리자, 그제서야 스승은 말한다.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이 넘치는 찻잔처럼.”

이 영화는 볼꺼리는 아주 많지만, 특히 생각에 남는 내용은 거의 없는 영화이다. 다만 지구가 멸망하는 모습을 즐기면서, 지구에서의 내 운명이 끝나는 순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지,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기만 하면 되는 영화다.

영화는 <구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떠오르게 만든다. 주인공 마이클의 아들 이름이 ‘노아’인 것도 그렇고, 최후의 사람들이 타는 배 이름이 방주를 뜻하는 아크(Ark)인 것도 그렇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처럼 지구상의 동물들을 배에 한 쌍씩 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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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기독교보다는 불교 쪽에 훨씬 기울어져 있다.

로마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이 무너지고, 아르헨티가의 거대 예수상도 속절없이 휩쓸려가고, 메카의 이슬람 성전에서 기도하는 수만명의 무슬림들도 사라져간 가운데, 티베트 고원의 오직 한 사람만이 그 거대한 두려움을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시무종(無始無終)의 경지에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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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마지막 남은 인류 가운데 유일한 종교인이 티베트의 젊은 승려 텐진이라는 점도 특별한 여운을 남긴다. 그의 이름이 달라이라마의 본명 텐진과 동일한 것도 우연의 일치는 아닐 듯 하다.

마지막 순간 장엄한 종소리를 울리며 히말라야의 작은 사원을 지키던 늙은 스승의 모습 속에 롤랜드 감독은 인류의 ‘오래된 미래’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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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애독자 2009-11-19 17:49:52
답변  
재밌게 보고 갑니다. 좀 자주 써주세요. 미디어속 불교캐릭터 자주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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