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효정
bellaide@naver.com 2009-01-14 (수) 18:06소시적 연애다운 연애를 한번쯤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혹은 내뱉어봤을 만한 닭살 멘트이다. 이같은 연애남의 판타지를 여지없이 드러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새로운 캐릭터 ‘포뇨’가 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새 애니메이션 ‘벼랑위의 포뇨’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일본의 신불(神佛)세계를 모티브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보다 완성된 존재가 되고 싶은 열정을 다섯 살짜리 아이들의 모습으로 표현했을 뿐, 그는 여전히 지구의 환경을 걱정하고 순수한 동심을 노래하며 더 크고 넓은 세계를 향한 의지를 찬탄한다.
포뇨는 인간이 되고 싶다.
포뇨는 한때 인간이었던 아버지와 바다의 여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지구의 오염을 피해 인간세상의 삶을 포기한 아버지 후지모토는 바다 속 순수한 청정지대에서 지구를 정화시키는 생명의 우물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딸 포뇨 또한 인간세상을 피해 구를 정화시키는 순수한 존재로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딸은 바깥세상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어느 날 아버지 몰래 바다로 나갔다가 청소하는 배에 쓸려 유리병 속에 갇힌다. 유리병 속에서 정신을 잃은 포뇨는 파도에 휩쓸려 해안으로 밀려오고, 포뇨를 발견한 소스케는 바다에서 금붕어를 잡았다며 좋아라 한다. 그리고 포뇨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포동포동하다고 소스케가 붙여준 포뇨라는 이름을 포뇨 또한 아주 마음에 들어한다.
포뇨는 특별한 물고기다. 포뇨는 자신을 꺼내기 위해 유리병을 깨다가 다친 소스케의 상처를 핥아주기만 해도 소스케의 상처가 다 아물어버린다. 아버지를 닮아 마법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이어 아버지 후지모토가 일으킨 해일에 밀려 포뇨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 버린다. 소스케는 금방 좋아하게 된 포뇨를 잃어버리자 울음을 터트린다. 그리곤 포뇨처럼 생긴 종이인형을 접어 양로원 할머니들에게 나눠주며 포뇨를 그리워한다.
포뇨 또한 아버지에게 소스케에게 돌아갈꺼라고 발악을 한다. 아버지가 지어준 ‘브륀힐데’라는 이름 대신 포뇨라고 불리길 원하며 그녀는 소리친다.
“포뇨, 인간이 될꺼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포뇨의 몸이 닭만 해지고 사람만 해지더니, 팔과 다리가 쑥쑥 튀어나오는게 아닌가. 아뿔사, 소스케의 상처를 핥으면서 인간의 피를 먹게 된 포뇨는 이제 인간의 DNA를 그대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발휘해 인간의 몸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화들짝 놀란 후지모토는 포뇨를 겨우 묶어서 물방울 속에 가두어버린다.
하지만 인간이 되고 싶은 포뇨의 욕망을 포기시킬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잠시 외출한 사이 잠에서 깨어난 포뇨는 이번에는 다섯 살 난 빨강머리 여자아이로 변신한다. 아버지가 만든 생명의 물 덕분이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이 되고 싶은 포뇨의 의지였다.
포뇨는 아버지가 쳐놓은 결계를 모조리 풀어버리고 소스케를 향해 달려간다. 이 과정에서 생명의 우물을 건드리면서 지구의 질서가 무너지고 해일이 일어난다. 포뇨가 세상에 큰 구멍을 내버렸기 때문이다.
포뇨가 벼랑위의 소스케 집을 찾으러 가는 동안 마을에는 엄청난 비바람이 몰려온다. 양로원에서 일하는 소스케의 용감무쌍한 엄마 리사는 폭풍 속을 헤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벼랑 위의 집이 폭풍우를 만난 어선들에게는 ‘길을 알려주는 등대’라 믿음 때문이었다. 더구나 남편을 태운 배가 아직 바다 위를 향해하고 있는 이상 반드시 집에 불을 켜야 한다는 생각에 리사는 물속에 잠긴 도로를 헤쳐 집으로 달려간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벼랑위의 집에는 포뇨가 와있다. 지구가 멸망하든말든 포뇨는 소스케를 다시 만나 너무도 즐겁고, 소스케는 단번에 그녀가 금붕어 포뇨임을 알아차린다.
엄마는 이들에게 따뜻한 차와 음식을 내준 다음 먹을거리를 챙겨 다시 양로원으로 향한다. 포뇨와 소스케만을 벼랑위의 집에 남겨둔 채.
그날 밤 소스케 아빠의 배는 커다란 해일에 밀려 더 넓은 바다로 멀리 멀리 떠밀려간다. 그들이 도달한 곳은 일본도, 미국도 아닌 바다의 무덤이었다. 그곳에 밀려들면 결코 없는 빠져나갈 수 없는 죽음의 바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환한 빛이 몰려든다. 위험에 처한 어부들을 도와주는 바다의 여신 그란 만마레. 그의 도움으로 해류를 만난 어부들은 다시 항로를 되찾게 된다. 그란 만마레를 본 어부들은 관음보살이 나타났다고 외치며 그에게 합장을 한다.
그 길로 아빠를 만나러 온 엄마는 포뇨가 인간이 되도록 해주라고 아빠를 설득한다. 하지만 아빠는 포뇨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소리친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와 똑같이 말이다.
포뇨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 남자의 순수한 사랑이 필요하다. 포뇨의 본래 모습인 물고기 모습을 보고도 계속 그를 좋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포뇨는 인간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그 사이 달은 지구와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지구의 에너지가 변해 우주의 기운이 역류하고 있는 것이다.
포뇨가 다시 물고기가 되거나, 혹은 완전한 인간이 되면 그 에너지는 다시 원상복구되지만, 포뇨가 물방울이 되어버리면 지구의 에너지는 완전히 망가져 달과 충돌하게 된다.
* *
다른 만화들과 달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어린 주인공들에게 지구를 구하라는 커다란 사명을 부여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과 책임을 요구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캐릭터들은 한결같이 불교적 의미를 띄고 있다. 일본의 전통적인 신앙과 설화를 토대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감독의 특성상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불교가 많이 미약해졌다고 해도 어쨌든 여전히 일본은 신불의 나라이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리는 세계 또한 신불의 세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이번에 등장한 주인공 포뇨는 인간과 물고기, 혹은 인간계와 천상계의 경계에 놓여있는 인물이다. 그는 인간이 되어서 소스케와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이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열망은 포뇨로 하여금 팔과 다리, 코와 입, 인간의 몸을 갖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는 한 포뇨는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이 만화에서 포뇨의 엄마 그란 만마레는 어부들로부터 바다를 지켜주는 관세음보살로 불린다. 그녀가 나타나자 손바닥을 두 번 딱딱 치고 합장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일본사찰의 풍경이다.
미야자키 감독의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 그란 만마레는 고려불화 혹은 인도의 벽화에 나오는 해수관음의 모습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의 존재가 바다의 여신이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지간에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바다를 지켜주는 신의 이름은 관세음보살인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불보살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다.
포뇨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다섯 살짜리 꼬마들에게 두려움을 넘어선 순수한 사랑은 너무 어려운 과제인 것일까.
포뇨가 인간이 되고 싶었듯이, 인간들 또한 보다 멋지고 완성된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만화를 통해 말한다. “간절히 원하면 몸도 변한다”고. 나도 오늘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볼따구에 기합을 한번 넣어볼까나.
“나, 안젤리나 졸리가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