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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 사랑하겠다는데<br>관세음보살인들 어찌 막으리

탁효정 | bellaide@naver.com | 2009-01-04 (일) 02:25

새해 벽두부터 이런 야사시한 영화를 소개해도 될라나. 미리 말해두지만 이 영화는 불교영화가 아니다. 불교적 해석을 가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대신 이 영화는 고려라는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불교시대의 영화이다.

영화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왕. 충성과 사랑의 차이도 구분하지도 못한 채 어렸을 적부터 왕실 호위무사로 성장한 왕의 남자. 그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왕비가 있다.

영화 <쌍화점>의 모티브이다.

왕의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공주의 이름이 연탑실리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고려사에 기록된 공민왕의 이야기를 각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노국공주의 이름은 보탑실리다.)

왕은 아이를 낳을 수가 없다. 생식적 문제인지 정신적 문제인지는 영화상으로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후사가 없음을 빌미로 원나라는 줄곧 고려에 정치적 압박을 가해오고, 막대한 공물과 고려의 여자들을 원나라에 바칠 것을 요구한다. 거기다 왕이 아직 새파랗게 젊은데도 불구하고 친원세력인 경원군을 세자로 책봉하라고 재촉했다.

왕은 결국 편법을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왕비에게 다른 남자와 동침해 아이를 가질 것을 제안한 것이다. 왕비는 왕이 너무도 애처로워서, 그리고 자신의 제2의 조국 고려의 안위를 위해서 끝내 그 청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왕은 자신의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이자 깊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인 동시에 육체적 애인이기도 한 건륭위 대장 홍림에게 왕비와 동침하라고 명한다.

“왜 하필 저를 택하셨습니까”라고 홍림이 묻자 왕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야 너처럼 다정한 아이가 나올 것이 아니냐.”

하지만 왕은 한가지를 알지 못했다. 인간은 사랑하기 때문에 육체적 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육체적 관계를 통해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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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남자와 관계를 맺게 된 왕비, 또한 처음으로 여인의 몸을 만난 홍림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늪으로 빠져든다.

공식적으로(?) 허용된 세 번의 만남이 끝난 이후에도 왕비와 홍림은 왕실의 서가에서, 왕비의 친정에서 왕의 눈을 피해 뜨거운 해후를 갖는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기에, 항상 마지막일 수밖에 없기에 이들은 더욱 격정적이고 치명적이다. 그리하여 더욱더 애타는 만남은 결국 왕과 왕비, 그들의 연인을 더욱 파국으로 몰아간다.

영화에는 아주 노골적인 정사신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 유희에 여유롭게 빠져들 수가 없다. 그들의 사랑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벼랑 끝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왕은 이들의 관계를 눈치채고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이에 홍림은 눈물로 왕에게 사죄를 하며 “욕정에 눈이 멀어 당신을 배신했다”고,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요청한다.

만약 그가 잠시 욕정에 눈이 멀었더라면 그는 그 자리에 멈춰설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욕정이 아닌 사랑에 눈을 뜬 것이었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수레바퀴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벼랑 끝을 향해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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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영화의 모티브가 고려사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에 상당부분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고려사에서는 공민왕이 예쁘게 생긴 남자 시동들과 동침을 하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왕비(익비)와 관계를 갖게 해놓고선 그를 엿보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 자신의 왕비가 아이를 갖자 그 아이의 아비되는 자를 죽이게 했다는 점도 역사적 기록과 일치한다.

후대 역사가들은 하드코어 포르노에 버금가는 고려사의 기록이 조선왕조를 세운 건국 주체들에 의해 날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하지만, 어쨌든 역사적 기록 속의 공민왕은 성도착증 환자에 가까운 인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쯤에서 잠시 고려사의 기록을 엿보기로 하자.

자제위를 두어 어린 미소년들을 뽑아 이에 예속시켰다. (공민왕은) 스스로 화장하여 부인의 모양을 하고 먼저 내전의 여종 중 나이 어린 이를 방안에 들어오게 하여 보자기로 그 얼굴을 덮고는 김흥경 및 홍륜의 무리를 불러 난행하게 하였다. 왕은 옆방에서 구멍으로 들여다보다가 은근히 동하게 되면 곧 홍륜 등을 데리고 왕의 침실에 들어가 왕에게 음행하게 하기를 남녀간에 하듯이 하여 번갈아 수십명을 치르고서야 그치곤 하였다.

이후 고려사의 기록은 익비가 홍륜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이 일을 알고 있는 자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하다가 홍륜 등 자제위 소년들에 의해 암살되었다고 전해진다.

영화와 실제 역사서술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영화에서는 왕비가 원나라의 공주이지만 고려사에서는 노국공주가 죽은 이후 공민왕이 맞이한 익비 한씨 등이 자제위의 소년들과 동침을 했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아주 금슬이 좋았고 공주가 왕의 아이를 낳다가 죽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동성애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왕이 처음부터 동성애자였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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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에서는 여러 장면에 걸쳐 불교적 요소가 등장한다.

우선 홍림이 왕의 암살을 시도한 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잠시 들른 벽란도의 풍경이다. 벽란도의 첫 장면에서 붉은 가사를 걸친 스님 두 명이 등장한다. 당시에 원나라와의 무역거점이 벽란도였고, 이곳에 몽골의 스님들이 드나들었음을 시사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어 왕비가 홍림과의 정사를 끝낸 후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달래기 위해 기도를 올리는데, 왕궁 내 불단으로 보이는 그곳에는 어른 키보다 약간 작은 관세음보살이 조성돼 있다.

왕비가 홍림과의 동침 이후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왕실에서는 왕자 탄생을 발원하는 연등법회를 성대하게 개최한다. 이 법회의 풍경은 우리가 흔히 보는 사찰법회의 풍경과는 전혀 다르다. 온갖 색색의 연등들이 드리워지고 무희들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추며, 왕은 “쌍화점에 쌍화 사러 들렀더니 회회아비 내 손목을 끌고 들어갔다”는 에로틱한 고려가요를 부른다.

이 영화에는 무려 2500여벌의 의상이 사용됐는데, 왕과 왕후의 예복의 경우 불화 속 의상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예복 디자인 시 자료에 따르면서 불교가 성행하던 시기이기에 불화(佛畵) 속 의상에서 착안한 주름 잡힌 저고리깃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왕비와 홍림의 비밀 애정행각이 발각되자 홍림은 궁형을 당한 채 옥에 갇히고 그가 곧 제거되리라는 것을 안 그의 부하 무사들은 홍림을 몰래 은영사라는 사찰로 피신을 시킨다.

왕비가 고려로 시집올 때 가지고 왔던 가장 아끼는 물건이 목에 거는 향첩인 것도 불교국가인 고려와 몽골을 상징하는 모티브라 하겠다.

고려가요 쌍화점에는 “삼장사에 불을 켜러 들어갔더니 그 절 주인 내 손목을 잡더이다. 이 말씀이 이 절 밖에 나거들면 조그만 어린 중아 네 말이라 하리라”는 야사시한 가사가 등장하지만, 영화 쌍화점에서는 스님의 애정행각이 다행히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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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쌍화점에는 곳곳에서 불교적 요소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불교적으로 풀어낼 수 없는 것은 영화가 극도의 ‘에로스적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쌍화점은 사랑의 여러 가지 얼굴 중에서도 성애라는 헤어나기 힘든 뜨거운 본능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욕망에 대해 단 한순간도 멈출 줄을 모른다. 멈추려 할수록 더욱 터져 나오는, 가만히 서있으려 해도 달려갈 수밖에 없는 욕망과 상처, 분노를 이들은 남김없이 태워간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비참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숨막히는 사랑이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과 갈애로 뒤범벅된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기에, 우리는 여전히 중생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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