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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무상(無念無想)의 인욕보살<br>‘살인미소’ 싸나이 멋저부러이

탁효정 | bellaide@naver.com | 2008-08-21 (목) 00:00

끝까지 바벨을 놓지 못하고 쓰러졌을 때, 그리고 마침내 땅을 치고 일어설 때, 그 남자의 얼굴이 눈물로 뒤범벅돼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초연한 표정으로 일어섰고, 소리를 한번 지른 후 담담하게 무대를 내려왔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아! 저 미소, 저 미소를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공(空)하지만 허(虛)하지는 않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한순간에 받아들여 녹여버리는 그의 모습은 무념무상 그 자체였다. 최선을 다하였기에 실격에도 당당할 수 있는 그가 내 동포임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동안 눈치 빠른 독자들은 내가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역도선수 이배영.

은메달을 따면 패국노가 되는 한국사회에서 실격은 위로는커녕 용서받지도 못할 범죄(?)이다.

그래서 동메달을 따고도 죽을 때까지 소주를 마셔야 했던 선수들의 일화는 안타깝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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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시기에서 184kg을 들려던 이배영 선수는 왼발이 갑자기 심하게 뒤틀어지면서 그대로 주저 앉고 말았다. 2차 시기에서도 왼발의 통증으로 다시 실패. 3차를 시도하면서 클린조차 성공시키지 못한 그는 바벨과 함께 앞으로 쭉 미끄러졌다.

4년간 들어올린 무게가 산 하나를 넘을진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그 무게를 이겨냈을 것인데, 그의 마음속 상념들이 그의 손을 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도전에 도전을 실패한 뒤에도 바벨을 놓지 못하는 이배영 선수를 보는 순간 ‘또 한명의 죄인이 탄생했구나’라는 안타까움에 눈물이 쏟아졌다.

크게보기그런데 정작 본인은 박수를 치고 손까지 흔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의 얼굴에 스쳐지나가는 초연한 미소.

그 모습을 보면서 점수 1점, 2점에 온갖 욕설과 눈물과 환호를 내지르고 있던 내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갑자기 올림픽경기장이 길고긴 우주를 축소시켜 놓은 미니어처 같다는 생각이 지나갔다. 너무도 짜릿하고 너무도 감격적인, 그래도 더 슬프고 안타까운 순간들이 촌각을 다투며 지나가는 소우주.

“올림픽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질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실패는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실패를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승리를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님의 침묵을 올림픽에 맞추어 한번 읊조려 보았다.

이배영의 투혼은 대한민국을 감격시켰고,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명예를 그 어느 선수보다 높이 선양시켰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빛을 잃지 않는, 절망의 순간에도 웃음을 던질 줄 아는 당신을 '인욕보살 올림픽 대표보살!'로 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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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묘련 2008-08-22 21:38:14
답변  
올림픽을 보며 많이 마음이 아팠다. 신체적, 경제적인 여건땜에 금을 놓쳤다고 죄인마냥 고개를 떨궈야하는지. 우리선수들 잘해냈다. 특히 어려운 여건속에서 일군 남여핸드볼, 경기를 보며 눈물이 흘렀다. 작은 몸집으로 한골이라도 넣겠다고 높이 뛰어보고 버텨보는 그들, 그 등치에도 반칙으로 넘어트리는 서양인들, 반칙선언을 안하는 심판들,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인천공항에서 금매달선수들 환영식을 거창하게 하려는데 그럴려면 모든 선수들에게 기회를 다 줄것이지..... 아쉽다. 금매달위주로 차별하는 나라가. 요번은 안됐더라도 다음기회가있는데. 우리선수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힘든몸으로 열심히 버텨준 이배영과 왕기춘선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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