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은 우리나라 중부권의 신령스런 산으로 꼽힌다. 신라시대 이후에는 제관을 파견하여 국가적인 기도를 올린 곳이고, 고려 때는 산의 정령인 월악대왕의 힘으로 몽고군을 물리쳤다고 전해질 정도이다. 특히 월악산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의 설화로 유명한 곳이다. 덕주공주는 이곳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마의태자는 중원군 상모면 미륵리에 미륵사(지금의 세계사) 석불입상을 세웠다는 것이다. 묘하게도 미륵사 석불은 북향을 하고 있어서 남향의 덕주사 마애불과 일직선상에 마주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마의태자와 덕주공주는 꿈에서 관음보살을 만나 각각 절을 지었고, 이들을 따라 불가에 귀의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덕주골이고, 월악산 정상과 기슭을 에워싼 산성이 덕주산성이다. 덕주산성은 신라의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 병사를 훈련시켰던 곳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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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의 가장 깊은 계곡에 위치한 덕주사는 남매와 관련된 설화보다 훨씬 후대에 지어졌다. 암자가 두 곳에 분리되어 있어 상덕주사, 하덕주사로 불린다. 마애불이 있는 상덕주사는 6·25전쟁 때 폐허가 되어버려 지금은 마애불 앞 법당 터만 볼수 있을 뿐이다. 하덕주사는 1970년대에 복원된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건물의 돌기둥을 손질한 남근석이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는다.

덕주사 마애불은 월악산 정상인 영봉과 일직선상으로 솟아오른 삼각형 암벽에 새겨져 있다. 공중누각을 지었던 구멍이 불상 머리 주변에 남아 있어 꽤 웅장했던 과거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얼굴만을 약간 도드라지게 하였을 뿐, 신체는 선각이며 거칠다. 넓적한 두 손은 각각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가슴에 모은, 아미타구품인 중 중품중생의 수인이다. 도식적인 옷주름들이 어깨에서 발목까지 내려오고 두 다리에서 동심원처럼 말려 있다. 연화대좌 위에 벌린 두 발은 꽤나 투박하고, 발가락이 손가락처럼 길쭉하다. 이처럼 격식을 잃은 표현은 고려시대 석불과 마애불의 일반화된 경향이다.

그러데 이들은 모두 퉁명스러운 표정에 신체비례감이나 기법이 영 시원찮은 모습이다. 덕주사 마애불처럼 턱살이라도 축 늘어지면 더없이 맥빠진 조각이 되고 만다. 이 정도 크기의 불상을 새기려면 먼발치에서 여러 차례 비례감을 따져가며 작업했을 텐데, 그토록 못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상미를 실현하고자 했던 신라 귀족의 미의식에서 탈피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 즉 중원일대를 장악한 호족들이 시주하면서 자신들의 신성과 미감을 마애불에 반영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