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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구제의 숙원으로 완주 굽어보는 ‘영험불’

| | 2009-11-23 (월) 17:23

완주 수만리에 있는 거대한 마애불좌상. 사진=문화재청 제공 크게보기

완주수만리마애불좌상. 고려 11-12세기. 높이 5미터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84호.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

완주 대부산 복호봉(伏虎峯)에 있는 안도암(安道庵)은 편안히 수도한다는 암자 이름과 달리 험하고 깊은 산세의 정상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 암자 근처에 마애불이 있다. 경주 남산의 불곡이나 탑곡의 마애불처럼 산 입구에 있거나 혹은 마을 입구나 큰 절 부근에 있는 마애불을 제외하고는 쉽게 친견할 수 없는 것이 마애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곳 마애불을 찾아가자니 마치 오체투지의 고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참을 인(忍) 자를 수없이 되뇌며 찾아갔는데 혹시나 산 정상이나 계곡 같은 곳에 있는 작고 솜씨 없는 마애불이라면 심통분통 다 날 것이라는 생각도 슬며시 들었다.

안도암은 불교와 무속이 혼합된 여느 산골 암자와 다름없다. 살림이 넉넉지는 않아도 칠석날의 재 준비에 분주한 사람들을 보니, 오랫동안 꾸준히 이어져 오는 신앙지의 내력을 알 수 있었다. 암자에서도 오 분을 더 올라야 삼매중인 거대한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첫 눈에 들어오는 규모 하나만으로도 털썩 주저앉을 만큼 감동을 주는 마애불이다. 가파른 산중 암벽 앞에 협소한 평지를 이루며 신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산중 은자로서의 부처님을 대하는 듯하다.

마애불은 10미터에 이르는 천애의 거칠고 검은 벼랑에 남남서 방향으로 앉아 있으며, 중부조의 얼굴에 선각의 신체를 결합한 방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고려시대 마애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미이다. 둥글고 군살 없는 얼굴에는 백호가 선명하고, 반쯤 뜬 눈매는 활시위 같은 눈썹선이 타원을 이루며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양어깨에 걸친 법의는 도식화된 평행주름이고, 오른손에 걸쳐진 옷자락은 배 아래로 부드럽게 흘러내린 모습이다. 손의 자태는 오른손을 내려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의 수인이다. 연화대좌의 이중 꽃잎 표현은 거친 질감으로 선각의 묘미를 살렸다.

마애불 앞으로 100여 기의 작은 돌무더기 소원탑이 부처의 영험함을 짐작케 한다. 안도암에서 고개를 들어 시선을 옮기면, 완주군 일대의 험준한 산세가 한 점 장애도 없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결국 마애불의 시선이란 중생구제의 숙원을 지고 가는 대승불교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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